보편적 아름다움_Salzburg, Austria

나다운 게 뭔데?

by 한성호

폴의 품에서 벗어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넘어왔다.


폴과의 이별이 이렇게나 아쉬울 줄이야. 이제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의 말처럼 그가 언젠가 한국에 놀러 올 일이 있을까?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유럽에 오게 될까? 글쎄,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동남아시아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이별은 가까운 거리 때문에 영원한 이별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유럽 친구와의 이별이 가진 무게는 꽤나 무겁게 느껴진다.


'무슨 말을 건네면 한국 사람들이 좋아 할까? 나중에 한국에 놀러 가면 써보게!'


폴의 사촌 형 마커스와 대화를 나누던 중, 마커스가 내게 물었었다. 그때 내가 가르쳐 준 문장은 '고기 먹자'였고. 그는 '고기 먹자 later'이라는 말로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래.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이들을 만나고 싶다. 내가 받은 만큼 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꼭 다시 만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담아 소원 팔찌를 선물했으니, 그 팔찌가 끊어질 때쯤, 또 세계 어딘가에서 그들을 만나기를 바라본다.




잘츠부르크로 이동해 올 땐, 처음으로 카풀 서비스를 이용해 봤다. '블라블라카'라고 이미 유럽에선 유명한 서비스였다. 희한하게도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두 관광지인 비엔나와 잘츠부르크를 이어주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버스는 없고, 기차는 너무 비쌌다. '블라블라카'가 처음 이용해 보는 거라 상당히 겁이 나긴 했지만, 험악한 기차 값이 나는 더 무서웠다. 결국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블라블라카'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약속 장소에서 운전자를 만나지 못해 돈만 날리게 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 컸다. 그렇지만, 유럽 전역에서 사용하는 서비스인데... 앞으로도 종종 이용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왕이면 돌아갈 곳 (폴네 집)이 있는 비엔나에서 첫 경험을 해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과감히 '블라블라카'를 예약했고, 정말 다행히도 약속시간에, 약속 장소에서 운전자를 잘 만났다.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럽게 잘츠부르크로 왔다. 합승했던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인도인 린시에게 인도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고, 인도네시아 사람 안드레에게 내가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 말들을 자랑하기도 하며 유쾌하게 잘츠부르크로 왔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도 여태껏 기차와 버스에서 봤던 풍경과는 달랐고, 홀로 외로이 조용하게 버스 안에서 있던 예전과는 다르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렇게가 아니라면 느끼지 못했을 경험 말이다.


IMG_6955.jpg 카풀을 이용해 유럽의 고속도로를 달려보자


그러나 잘츠부르크의 첫인상은 100점만 점 중에 50점이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관광지고, 너무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기대가 많았나 보다. 아니면 내가 그동안 너무 예쁜 것들을 많이 봤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유럽 여행의 첫 시작이 잘츠부르크였다면 100점이었겠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그동안의 내게 이미 너무 좋은 풍경들, 너무 예쁜 거리들이 함께했다. 많은 경험을 쌓는 일이 스스로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지만, 그를 통해 찾아오는 무뎌짐이 이렇게나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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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의 밤


그런 잘츠부르크를 하루 동안 걸어 다니는데 '어쩌면 여행이란 게 커다란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커다란 미술관을 구경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걷다가 맘에 드는 장소, 맘에 드는 뷰는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처럼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풍경이 주는 어떠한 '느낌'을 애써 붙잡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공감을 하기도 한다. 작품들 사이사이가 멀어서 이동하는 데에 차를 타야 되는 아주 커다란 미술관이긴 하지만, 이처럼 여행은 미술관을 구경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 여행이라는 미술관에는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잘츠부르크가 그렇고 비단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들이 그렇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처럼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곳들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보편적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예술을 소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각자만의 예술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보편적이라는 게 어떻게 존재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 조차도 사람들이 많이 사진을 찍는 곳에서 사진을 찍게 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춰지는 데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니 이젠, 정말 보편적 아름다움이라는 게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를 철저히 경계할 생각이다. 솔직히 말해서 보편적 아름다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소속감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파노플리 효과랄까. 멋진 작품을 보는 것으로 예술을 소비하는 것이 그것을 소비할 것으로 여겨지는 계층 및 집단과 동일시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멋지다고 했으니까 본인 또한 억지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고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진심으로 물어볼 때가 됐다. 조금의 연습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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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잘츠부르크를 벗어나 근교에 있는 호수에 다녀올 예정이다. 할슈타트는 아니다. 폴도 그렇고, 폴의 사촌 형도 그렇고, 지금 호스텔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할슈타트를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찾는 탓에, 너무 상업적으로 변했다며 모두가 입을 모아 다른 호수, 트라운 호수를 추천해줬다. 물론 이 또한 다른 사람의 추천이 있었으니, 100퍼센트 나의 의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단순히' 모두가 가길래, 나도 모르게 파노플리 효과를 누리고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되었던 할슈타트 보다는, 트라운 호수를 가보는 것이 조금 더 나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사람들 눈에 휘둘리지 말고 조금 더 내 맘대로 하자.


내일은 조금 더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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