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요'_Traunsee Lake, Austria

그문덴(Gmunden)의 천사

by 한성호

천만다행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일이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트라운 호수로 가는 기차 편은 10시 50분에 있었다. 나는 어디론가 이동을 해야 할 때, 목적지를 정하고 'Rome2rio'라는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내가 있는 곳과,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경로를(여러 차편 포함) 보여준다. 생각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 어플이 알려주는 대로 이동하면 큰 문제없이 잘 갈 수 있어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트라운 호수를 가는 데에 이 어플을 사용했다. 어플에선 10시 50분에 기차를 타고 'Vocklamarkt 역'까지 이동한 후에, 버스로 갈아탄 다음, 트라운호와 제일 가까이 있는 마을, 그문덴(Gmunden)까지 가서 조금만 걸으면, 트라운 호수에 도착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IMG_7028.png 'Rome2rio'가 알려준 그문덴까지 가는 경로


그러나 처음 가보는 길이니까 검증이 필요했다. 실제로 나는 'Rome2rio'라는 어플을 신뢰하면서도 한 번씩 검증을 하곤 했다. 실제로 기차가 존재하는지, 버스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Rome2rio'가 알려주는 여러 차편들 중에서 기차 편이나 비행기 같이 미리 티켓을 끊어야 하는 경우들은 확인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차 편들의 웹사이트를 통해서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스 편은 장거리 노선이 아닌 이상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다. 특히나, 마을버스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럴 땐 나는 구글맵을 이용한다. 구글맵에서도 'Rome2rio'처럼 경로를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어서 'Rome2rio'와 비교해볼 요량으로 종종 활용하곤 하는데, 이번엔 구글맵이 알려 주는 경로와 'Rome2rio'가 알려준 경로가 달랐다. 구글맵은 'Vocklamarkt 역'이 아닌, 'Attnang-Puchheim 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탄 다음에 그문덴으로 가라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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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기차역과 시간표


별 내용이 아님에도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적는다는 것은, 그래 맞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내가 구글맵으로 검증을 했을 때는 이미 'Vocklamarkt 역'까지 가는 기차표를 구매했을 때였고,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Vocklamarkt 역'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Rome2rio'를 신뢰하는 수밖에 없었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트라운 호수까지 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정신승리를 하며, 'Vocklamarkt 역'으로 이동했고, 'Rome2rio'가 알려준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그문덴까지 이동하는 버스가 없었다. 아니 있긴 있었는데 일요일이라서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쓰여있었다. 이번엔 구글맵이 맞았던 것이다. 역시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구글맵의 정보가 더 정확했던 걸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Attnang-Puchheim 역'까지 걷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 남짓 걸어서 구글맵이 알려준 'Attnang-Puchheim 역'으로 이동한 후에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Attnang-Puchheim 역'까지 걸어갈 생각으로, 다운로드하여둔 오프라인 지도를 보며 이동하는데, 문득 히치하이킹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할 것만 같았다. 만약 내가 히치하이킹으로 'Attnang-Puchheim 역'까지 가는 게 아니라, 직접 그문덴까지 이동한다면, 시간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히치하이킹을 성공하지 못 한 다면, 나는 그문덴까지 훨씬 더 긴 거리를 걸어야만 했다. '그래 까짓 거 걷지 뭐', '걷다가 지치면 돌아 오지 뭐!'. 나는 'Attnang-Puchheim 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과감히 그문덴 방향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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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1-08-25 오후 6.35.16.png 'Vocklamarkt 역'까지 가는 길에 만난 설경


나는 'Attnang-Puchheim 역'방향이 아닌, 그문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히치하이킹을 해보긴 했지만, 이번엔 혼자 하려니 굉장히 민망했다. 어느 타이밍에 손을 들어야 하는지, 어디서 어떻게 손을 들어야 하는지, 피켓을 만들어야 하나? 차도에 나와 있어도 되나? 온갖 고민들이 나를 집어삼켰다. 결국 처음 손을 올리는 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 동안 혼자서 눈치싸움을 하며 그냥 그문덴을 향해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감한 도전에는 좋은 결과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나를 보고 차를 세우는 일은 없었다. 수십대의 차가 무심히 지나가자 나는 금방 서글퍼지고야 말았다.


'왜 내가 이렇게 추운 날씨 속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지'

'왜 'Rome2rio'는 내게 이상한 길을 알려줬지?'

'그냥 걸을 걸 그랬나? 차라리 그게 나았으려나, 그랬으면 덜 추웠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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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문덴 호수의 풍경


나중에는 마음의 상처를 덜 입고자, 얻어 타는 주제에 내가 차를 고르기 시작했다. '왠지 저 차는 나를 태워줄 것 같은 차다' 싶은 생각이 들면 손을 들어보고, '누가 봐도 나를 태울 것 같지 않다'라고 생각이 들면 그런 차에게는 아예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손은 들고 있는데, 모든 차가 전부 다 그냥 지나간다면 이 추운 날씨 속에서 더욱이 가슴이 시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나, 봉고차 한 대가 드디어 내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이고요. 잘츠부르크에서 그문덴으로 가는 중인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태워주실 수 있으실까요?' 혹시나 금방 나를 지나쳐 버릴까 봐, 준비했던 말을 순식간에 쏟아냈다.

'음... 좋아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태워주셨던 분은 그문덴에 살고 계시는 한 할아버지 분이셨다.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서로 통성명을 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신 경험이 있으시다며 한국인인 나를 반가워하셨다. 또 요즘엔 추워서 그런지 히치하이커가 많이 없다며, 모처럼만의 히치하이커라고 아주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셨다. 평소에도 히치하이커들을 자주 태워주시는 천사 같은 분이신가 보다. 심지어 어디를 가려고 그문덴에 가는 거냐고 물어보시는 할아버지께, 트라운 호수를 간다고 말씀드리니, 트라운 호수 바로 앞에까지 태워다 주시겠다고 하셨다. 정말 그 할아버지는 천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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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운 호수의 풍경


할아버지의 부족한 영어와 나의 부족한 영어가 만나서 웃지 못할 어색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아주 편안히 트라운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의를 베풀어주신 이름 모를 할아버지께 이 자리를 빌려 정말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또 히치하이킹에 성공하다니. 이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나란 인간 정말 많이 성장했다. 이젠 진짜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도착한 트라운 호수를 하루 종일 걷다가 돌아왔다. 고작 해봐야 호수를 따라 몇 시간 걸었던 것 말고는 특별히 한 건 없지만, 그 적막감이 감도는 조용한 순간들이 참 좋았다. 트라운 호수에는 정말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나름 여름철에는 트라운 호수를 찾는 사람이 꽤 많은지, 요트 선착장도 있고, 산책로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혼자 걷다가 돌아왔다.


IMG_7176.jpg 물이 정말 투명해서 백조의 발까지 다 보인다


걷다 보니 혼자서 15km씩이나 걸었다. 이상하게, 나는 걷는 게 참 좋다. 걷다 보면 괜스레 생각에 잠기곤 하는데, 나는 이 생각에 잠기는 순간들이 참 좋다. 오늘은 또 무슨 생각을 했더라, 분명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깨달음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차분히 혼자 걸으며 다 정리를 했나 보다. 오래 걸은 탓일까, 성공적인 히치하이킹에 대한 뿌듯함 때문일까, 오늘 하루가 굉장히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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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운 호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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