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고집_Arles, France

고집불통 똥싸개

by 한성호

고흐는 아주 멋진 고집쟁이다. 그런 고흐가 머물렀던 아를에서의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아비뇽에서 머물고 있을 때, 뭘 하면 좋을까 검색을 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 아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나는 아를이라는 도시를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아를은 어떤 곳인가 살펴보기 위해서 검색창에 '아를'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하니, 그와 동시에 반 고흐의 작품들이 등장했다. 맞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를은 반 고흐가 머물렀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고흐를 멋있게 인생을 산 사람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게 있어서 고흐는 좀 특별하다. '고흐처럼 멋지게 살다가 죽으리라'하며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곤 했기 때문이다. 참 부끄러운 의미로 특별한 고흐가 머물렀던 곳이라니, 이런 내가 아를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IMG_7689.jpg
IMG_7694.jpg
아를의 풍경


사실 나는 고흐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고흐에 대해서 잘 모른다. 고흐가 멋있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의 가치관과 생애가 멋있어 보일 뿐, 고흐의 작품이 뭐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른다. 심지어는 지난번에 비엔나의 미술관에서 어떤 그림을 딱 보자마자 '이야, 이거 누군진 모르겠는데 고흐가 그리는 거랑 비슷하게 그렸네'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작품은 고흐의 작품이었다. 이렇게나 난 고흐를 잘 모른다. 하지만 아를에 왔으니 이제라도 그와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고흐의 발자취를 쫓고자 숙소에 짐을 던지듯 놓고 곧바로 길을 나섰다.

아비뇽보다도 훨씬 작은 도시니까 더 발걸음을 늦춰 걸었다. 아직 1월인데, 벌써부터 프랑스 남부에는 봄이 찾아왔는지, 아비뇽에 머물 때부터 굉장히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덕분에 한참을 걷다가 힘들면 어디든 앉아서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천천히 아를을 돌아다니며 고흐의 캔버스에 담겼던 아를의 모습들을 우연히 마주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난 고흐의 작품을 잘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작품은 있다. 바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아를에서 그려졌을 테고, 론 강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곧장 론강을 찾아 가봤다. 론강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당시의 고흐가 어디쯤에서 그림을 그렸는지 찾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그렇게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침내 이쯤이겠다 싶은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 서서 고흐의 구도와 똑같이 론 강을 바라보려고 이쪽저쪽으로 몸을 옮겨가며, 론강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283a674945294.jpg
IMG_7846.jpg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사실 이쯤이겠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리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과 함께, 안내 표지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고흐의 발자취를 쫓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고흐 작품의 배경이 됐던 곳들을 모아서 코스로 만들어 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스에는 순서도 정해져 있었는데,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이 이 '고흐 코스'의 1번 스팟이었다. 그곳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지도도 받아서 더욱이 쉽게 아를을 구경했을 테지만, 그 지도가 없었기에 '오늘은 어떤 아를을 캔버스에 담을까?' 고민하는 우울한 화가가 된 것처럼 아를을 방황할 수 있었다.


IMG_7854.jpg
IMG_7875.jpg
고흐의 <노란집> / <아를 공원 입구>


마치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꿈꾸는 삶이 있다. 너무나도 포괄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그 일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예컨대 지금 내가 좋아서 쓰는 이 여행기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어떠한 금전적 수익을 낼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나의 꿈이라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그걸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현실은 녹록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먹고살기 위해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한 번은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곤 한다. 하지만 고흐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죽음이 눈앞에 찾아온 그 순간까지, 끝까지 고집했다. 나는 그래서 고흐가 멋있다. 죽음과도 바꿀 수 없었던 그의 그림을 향한 고집이 존경스럽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의 고집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죽고 나서야 성공했다. 살아 있을 땐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욱 멋있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가 더욱이 오래 살면서 생계와 타협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본인의 스타일을 포기한 채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만을 그려냈다면, 그렇게 본인의 고집을 꺾어 내렸다면 그는 아마 기억되지 않는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도 살아생전에 본인의 그림을 팔려고, 본인의 스타일을 인정받으려고 크고 작은 타협들을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꺾이지 않은 그의 고집이, 그리고 결국에는 (죽은 다음에서야) 인정받은 그의 고집이 참 부럽다.


IMG_7890.jpg
IMG_7905.jpg
IMG_7915.jpg
<아를 병원의 정원> /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 / <트랭크타유 다리>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예전에 난 내가 고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고흐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려고 하는 나만의 고집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가 고흐와 다르게 대중들에게 선택받고, 내 고집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까지 했다. 심지어 나도 고흐처럼 일찍 요절하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생각이 참 치기 어린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참 웃기게도, 난 사실 그렇게나 고집부릴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고흐처럼 나만의 붓터치, 나만의 색깔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물을 바라보는 나만의 독특한 심미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선택받을 자신이 없으니까, 그리고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 것을 고집했을 뿐이다. 내 걸 포기하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 자신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BDA72932-E63C-4014-99BB-3D57D30D1EFA.jpg
IMG_2740.jpg
<밤의 카페 테라스>


나는 사실 아직까지도 남들이 주무르는 대로 살아서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고집하고, 그 고집이 선택받기를 원한다. 쉽게 얘기하자면 밥벌이보다는 꿈을 좇겠다고 표현하면 되겠다. 그리고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이 글들이 대중들에게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아주 열심히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고흐처럼 나만의 붓터치를 만들고, 나만의 독특한 심미안을 기르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표출할 뿐, 어떠한 미적 요소가 담겨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대중들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음은 예술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선택받기 위해, 아니 선택을 받고 말고 하는 순간 이전에 내실을 키워야겠다. 아직은 나만의 스타일이 없으니,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라도 해야 고집부릴게 생길 테니까 말이다.


내 글이 똥이라면 똥이다. 하지만 똥도 안 싸 본 놈보단 싸 본 놈이 더 잘 싸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똥을 싼다.


근데 진짜 스스로 고흐라고 생각했던 거 너무 쪽팔려. 으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