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코드는 '사랑'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사랑을 꼽는다.
말이 좀 오그라드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정말 진심이다. 사랑이 이 세상의 모든 가치들 중에서 가장 우선시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노래는 사랑을 노래하고, 세상의 모든 그림은 사랑을 그리는 것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게 여러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연인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친구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반려동물과의 사랑, 심지어는 본인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기애'까지,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어디든 존재하니까, 이 세상에서 최고 가치로 평가받는지도 모르겠다.
아비뇽은 대한항공의 광고도 광고지만, 세계 연극 축제 덕분에 알게 된 곳이라, 연극을 전공했던 학생으로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물론 지금은 연극 축제 시즌은 아니다. 연극 포스터가 길거리에서 간혹 보일 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었다. 대신 아비뇽엔 예쁜 거리들이 넘쳐났다. 미로 같은 골목길, 그리고 들쑥날쑥 지어진 건물들, 심지어는 기울어지고 있는 것 같은 집들도 많이 보였는데, 이런 모습에서 프랑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 꽤나 잘 나가, 그러니 저런 널리고 널린 아름다운 건물들은 관리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런 곳에서 연극 축제가 열린다니 다음엔 그 시즌에 맞춰 꼭 다시 와야지.
그런 아비뇽을 또 하루 종일 산책했다. 그냥 지도도 보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루 종일 걸었다. 걷다 보니 아비뇽 교황청이 보이길래 흥미를 느끼고,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아비뇽의 골목길들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길이 워낙에 미로 같이 되어 있어서 이미 걸었던 길을 몇 번이고 다시 걸어야 했는데, 나는 그냥 그게 좋았다. 걷는 게 뭐가 그렇게 좋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글쎄, 뭐라고 답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골목마다 다른 느낌을 줘요’,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재밌어요’ 같이 흔하디 흔한 답을 내릴 수야 있겠지만, 사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다. 그냥 걸으며 이런저런 구경을 하는 일이 참 좋다.
아비뇽의 드레스코드는 '사랑'이었다. 그만큼 아비뇽은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올 것 같은 비주얼 때문이었을까, '사랑'을 입지 않고 아비뇽에 서있는 게 괜히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파티 장소에 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물론 나는 자기애로 가득한 사람이었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다가 '내 얘기를 하는 건가?'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래 바로 당신 말이다. 당신과 함께 걷고 싶었다. 요 근래 날씨가 따뜻했으니 당신은 추워 하지도 않았을 테고, 발걸음을 맞춰 걸으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 꽃을 피웠을까. 그냥 벤치에 앉아서 좋아하는 노래도 실컷 듣고, 때 맞춰 노을도 구경하러 가고. 당신이 있어야 이렇게나 아름다운 아비뇽의 순간들이 완성이 될 텐데, 문득 아쉽다. 그리고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다.
아비뇽뿐만이 아니라 내가 거쳐온 모든 도시들을 다음엔 누군가와 함께 다시 가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보고 싶다. 정말 할 말이 많을 테다.
'저기에 내가 앉아 있었어',
'저 케밥집 진짜 맛없는데 아직도 장사하네'
아, 너무 자랑 같아 보이려나.
아무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