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와 일하는 대기업 부장의 혼술 2

"AI 활용은 꼼수가 아니라 실력이에요."

by 박성훈

나대리에게 맡긴 보고서 초안이 예상보다 빨리 올라왔다.

“나대리, 이 보고서 와이리(왜 이리) 빨리 끝냈노(끝냈니?). 니 ChatGPT 돌린 거 아이가(아니니?)”

“네, 부장님. 초안은 ChatGPT로 잡았는데요, 제가 다시 수정했어요.”

“진짜? 야, 보고서에 정성을 들여야지, AI로 대충 써오면 어떡하노.”

“… 부장님, 대충 쓴 거 아니에요, 작성 방향도 제가 정했구요, 제가 수정도 다 했어요.”

“야, 그래도 요즘 AI가 뻥을 많이 친다카는데, 여기 데이타 이런 거 잘 못 되면 큰일인데.”

“… 제가 다 점검했습니다.”

“그래? 확실해? 그래도 업무시간 줄일라고(줄이려고) 너무 꼼수 쓰는 거 아니가.”

“… 부장님, 요즘 AI 활용은 꼼수가 아니라 실력이에요.

“아니, 내가 AI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고…”

소주가 땡긴다.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이다.

종로구청 옆 순대국집에 들어섰다. 가게 안 열기에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린다. 이미 여러 테이블에 직장인들이 오소리감투(돼지 위) 수육과 술국, 혹은 뼈 해장국에 술 한 잔을 하고 있다.

“사장님, ‘특’에 소주요.”

항상 서빙 하시는 이모님을 사장님으로 불러드려야 한다. 그래야 다진 양념 그릇이라도 한 번 더 챙겨주신다.

“소주는 뭐로 드릴까요?”

“제일 많이 남은 거로요.”

항상 이 농담을 할 때마다 이모님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순대국밥을 시킬 때는 고기만, 순대만, 고기와 순대 모듬을 취향대로 시킬 수 있다. 소주 안주로는 당연히 고기와 순대 모듬이다. 거기다가 ‘특’을 시키면 안주하기에 양도 딱 좋다.

깍두기를 접시에 덜고 있자니 순대국밥이 나왔다. 이 집은 기본간만 되어서 나온다. 가게 벽에 ‘순대국 맛있게 먹는 법’이 붙어 있다. ‘마늘 1스푼, 대파 적당히, 들깨 큰수저 2스푼, 양념 다데기 1스푼, 새우젓 조금.’ 그 밑에 ‘미세먼지에는 순대국이 최고’라는 글귀도 적혀 있다. 오랜 경험에서 나왔을 법한 그 비법을 따라 순대국을 제조해 본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니 순대국밥이 딱 좋은 술국으로 변했다. 오소리감투를 하나 꺼내 밥뚜껑 위에 얹고 새우젓을 조금 올려 먹는다. 오독고소한 맛이 좋다. 소주 한 잔을 쭉 들이키고 국물 한 숟갈을 떠먹는다.

“내가 명색이 인사조직 박산데….”

순대국밥에 오소리감투가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순대국밥을 시키면서 순대를 빼달라는 사람도 봤다. 저마다 취향이 다르니 주문할 때 고기만 시키는 사람도 있고, 순대만 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도 알아야 할 것은 순대국을 끓일 때 오소리감투며, 순대며, 돼지 잡뼈와 머리 고기가 다 들어간다는 점이다. 어떤 것은 오래 끓이고 어떤 것은 물러 터지기 전까지 잠깐 끓이는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부위가 다 들어간다. 그래야 국물이 시원~하게 나온다.

구성원들이 업무에 AI를 활용하면서, 점점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부분만을 발라내기가 더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소위 ‘손과 발’을 써서 규정집과 통계집을 직접 찾고, 전문가에게 물어서 보고서를 썼기 때문에 그 과정도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과정을 AI가 순식간에 대신해준다. 결국, AI를 쓰든 쓰지 않든, 점점 과정의 다양성은 인정하고 전체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있다. 순대국밥의 건더기는 오소리감투든, 고기든, 순대든 따로따로 취향껏 취할 수 있지만, 국물 맛은 이 모든 걸 다 넣고 얻은 결과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나이 때 부장들에겐 직원들이 업무에 AI를 쓰는 것이 아직 낯설다. 우리 나이 때 부장들은 어린 시절에 전자오락을 하려면 전자오락실에 가야 했다. 물론 부잣집에는 전자오락 외에 아무 기능이 없는 컴퓨터도 있었지만, 대부분 전자오락실에서 오락을 해야 했다. 뽀빠이, 1945, 더블드라곤, 이소룡, 방구차 같은 전자오락은, 기계는 한 대밖에 없는데 인기는 많아 동전줄을 세워 놓고 기다려야 했다. 반면 MZ는 줄 설 필요 없이 컴퓨터로 원하는 게임을 했다. 우리 때에는 교수님이 칠판에 적는 것을 노트에 손글씨로 받아 적었다. 잘 필기한 노트는 시험 때 인기가 많았다. MZ는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펼쳐 필기도 하고, 인터넷도 찾아봤다.

이런 MZ들이 회사에 들어와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나이 때 부장들은 이 상황이 못마땅할 수 있다. 후배들이 업무에 정성을 들이는 것 같지 않고 꼼수를 부리는 것 같다. AI는 거짓 정보도 진짜 정보 처럼 찾아준다는데 혹시 잘못된 정보가 보고서에 들어갈까 걱정되기도 한다. 더 못마땅한 것은 후배들이 AI를 활용해서 만들어 온 보고서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관점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회사 안에서 내 위치가 점점 사라질까 불안하다.

이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때다. 구성원들이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나대리가 ChatGPT를 활용해서 보고서 초안을 일찍 만들어오고, 보고서에 부장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관점이 담겨 있다면 이 점은 분명 칭찬할 일이다. AI에 맡겼을 때 걱정되는 데이터의 사실 여부도 나대리가 꼼꼼히 점검했다면 그것도 잘한 일이다. 따라서 나대리가 직접 한 부분만을 나대리의 성과로 인정할 게 아니라 AI의 도움까지 포함한 전체 성과를 봐줘야 한다. 술국의 맛처럼 말이다.

소주 한 잔을 쭉 들이킨다.

“내가 명색이 인사조직 박산데…”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이란 개념이 있다. 폴 허시(Paul Hersey)와 켄 블랜차드(Ken Blanchard) 선생님이 만든 개념이다. 폴 선생님과 켄 선생님이 말한 좋은 리더란, 민주적 리더도 아니고 카리스마형 리더도 아니다. 상황에 맞게 행동을 바꿀 줄 아는 리더다.

이 개념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 미국의 기업에서는 더 이상 산업화 시절에 유행했던 ‘지시형 리더십’이 통하지 않고 있었다. 사무직과 전문직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산업화 시절의 단순 노동이 아닌 사무직의 업무 현장에서는 직원의 역량도 제각각이었다. 폴과 켄 선생님은 ‘부하의 역량이 제각각일 때, 리더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고, 그 답이 바로‘상황에 맞는 리더십’이다.

상황적 리더십의 핵심은 ‘구성원의 상태에 따라 리더십의 유형을 정하라’는 것이다. 구성원이 신입이라 과업 이해도도 낮고 자신감도 부족한 R(Readiness)1 단계(능력 부족, 의지 낮음)라면 지시형(Directing) 리더십을 써야 한다. 할 일을 세세하게 알려주고, 절차와 기한을 명확히 해줘야 한다. 이때에는 주로 한 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구성원이 신입인데 의욕은 넘치는 R2 단계(능력 부족, 의지 높음)라면 코칭형(Coaching) 리더십이 필요하다. ‘할 수 있어, 내가 방향을 알려줄게’와 같은 말로 지시와 격려를 동시에 해주면서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이때에는 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이뤄진다.

구성원이 중급자 수준으로 스스로 잘하지만 확신이 부족한 R3 단계(능력 있음, 의지 낮음)라면 지원형(Supporting)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시는 줄이고, ‘네 판단을 존중해, 내가 도울게’와 같은 말로 동기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때에는 의사결정을 같이 하는 형태이다.

마지막으로 구성원이 숙련자 수준이고 스스로 문제 해결이 가능한 R4 단계(능력 있음, 의지 높음)라면 위임형(Delegating) 리더십이 필요하다. 권한을 대폭 위임하고, 최소한의 점검만 해야 한다. 이때에는 신뢰를 기반으로 결과 중심의 관리를 해야 한다.

나대리쯤 되는 연차의 직원들은 대부분 중급자 수준 이상의 업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ChatGPT에 보고서의 기획 방향을 일러줄 만큼 업무의 틀을 잡을 수도 있다. GhatGPT가 만든 초안을 수정하고 스스로 오류도 검증할 수 있다. 그러면 최소한 R3 이상이다. 그럼에도 주부장은 R1 수준의 직원들에게나 할 법한 지시형 리더십을 보였다. 나대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원형 혹은 위임형 리더십이다.

순대국밥에서 순대 하나를 집어 밥뚜껑 위에 놓고 그 위에 새우젓을 조금 얹는다. 순대를 한입에 넣고 소주 한잔을 쭉 들이킨다. 그리고 뚝배기를 들어 국물을 한 모금을 마신다.

이 집의 순대는 분식점에서 파는 순대가 아닌 수제 순대 형태이다. 유튜브의 창업 채널에서 본 얘기인데, 요즘은 수제 순대도 공장에서 만들어 배송해주기 때문에 누구나 ‘수제’, 혹은 ‘전통’ 이름을 단 순대국집을 열 수 있단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집이 순대를 사서 쓰는지, 직접 만들어 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 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가게 밖 문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기본간만 된 순대국이 벽에 붙은 양념 비법에 따라 순식간에 마늘 향 가득한 술국으로 변신하는 것은 이 집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기꺼이 술값을 낸다.

수제 순대를 사서 쓰든 만들어 쓰든 관계없듯, 구성원들은 얼마든지 AI를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을 죄스럽게 생각하고, 상사에게 숨기는 조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꼼수 아니냐’, ‘정성이 부족하다’, ‘AI가 뻥을 친다던데’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부장의 이런 반응은 구성원들에게 ‘AI 활용을 들키면 비난받는다는 신호를 준다. 그 순간 구성원들의 학습은 멈춘다. 효율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높일 기회가 사라진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실수를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개념은 1990년대에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son) 선생님이 주장했다.

에이미 선생님은 단순한 학자의 삶을 살지 않았다. 유명 건축가의 수석연구원으로, 매킨지컨설팅의 컨설턴트로 경력을 쌓고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조직 심리학을 공부했다. 이때 에이미 선생님은 병원 의료팀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어떤 의료팀은 다른 팀보다 더 많은 오류를 보고한다. 그런데 오류 보고 건수가 많을수록 오히려 환자 안전은 높아졌다. 에이미 선생님은 그 이유가 ‘실패가 많아서가 아니라, 말할 수 있어서’임을 알게 되었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이 더 많은 오류를 보고하고 그것을 수정 하는 것이다.

점차 업무는 예측 불가능해지고, 소위 말하는 ‘짬밥’만으로 이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경영 현장에는 20년차 부장도 예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위험과 기회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대리가 시도한 AI 활용이라는 새로운 방법은 조직 학습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부장은 비난 대신 구성원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정보 공유를 요청해야 한다. 또한 ‘무엇이 위험한가’를 함께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 AI의 실수 가능성을 부정하지 말고, 조직의 공개적인 탐색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도록 연습해보면 좋겠다. ‘이 정도면 초안을 아주 빠르게 만들었네, 잘했어’, ‘어떤 기준으로 오류를 검증했는지 알려줄래?’, ‘네 방식도 인정하는데, 우리 팀의 검증 기준을 함께 정해볼까?’ 이렇게 말이다.

남은 국물에 밥과 깍두기까지 말아서 한 그릇 싹 비웠다. 소주도 반병만 마시려 했는데, 한 병을 다 비워버렸다. 가게 문을 나서니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줄 선 거 안 아까울 낍니다(줄 서신 것 아깝지 않을 거에요).”

분명 줄 선 사람들에게 말을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고 모두 각자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젠장…, 등산을 하러 가면 하산하는 사람한테 ‘얼마 남았습니까?’ 물어도 보고, ‘다 왔습니다’ 말에 속아도 주는 게 묘미인데….’ 언제부턴가 순대국집 앞은 스몰 토크에 ‘안전’하지 않고 각박해졌다.

바바리 코트 깃을 세워 머쓱해진 표정을 덮고 거리로 나선다.

‘내일부터 나도 AI 그거 좀 배워야겠다.’

박사과정을 마치며, ‘내가 다시는! 공부 안한다!’고 맹세를 했는데, 다시 공부해야 하는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어디 가서 맥주 한 잔으로 허한 마음을 달래고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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