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와 일하는 대기업 부장의 혼술 4

"제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중요해요."

by 박성훈

나대리가 기획 보고서 초안을 올렸는데 회사의 피피티 양식이 아닌, 큰 이미지랑 감성적인 글귀로 구성된 자율 양식으로 만들었다. 나대리와 함께 나대리의 사수인 정과장을 자리로 불렀다.

“나대리, 이 보고서 초안 말이야, 피피티 양식이 이기 뭐꼬(이게 무엇이냐), 이거 우리 회사 스타일이 아니잖아? 이러면 내가 어떻게 수정하라고!(수정을 못하잖니!).”

“부장님, 이 기획안이 젊은 세대를 타겟으로 해서요, 양식도 좀 젊은 세대에게 맞게 분위기를 바꿔봤어요.”

“아니, 타겟이 누군지는 다 알아, 근데 보고서 양식은 회사 양식에 맞춰 와야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제가 이번 기획에 의도했던 분위기와 워딩(단어 선택)이 잘 살지 않는데요.”

“야, 지금 중요한게 그기 아이고, 이 기획 내용이 임원한테 전달이 돼야 될 거 아이가! 이래 큼지막한 이미지랑 글자 몇 개만 있어가꼬 상무님께 전달이 되겠냐고! 양식을 바꿔 와.”

“부장님,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어져서 동기가 떨어져요. 저도 제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중요해요.”

“존~중! 야,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한거는 이 보고서가 상무님을 통과하냐 못하냐야. 내가 나대리처럼 파격적으로 안 해본 줄 알아? 다 해봤어~. 근데 안돼~. 상무님을 절대 통과 못 한다니까. 상무님은 25년간 우리 회사 스타일 한 가지로만 피피티 보고서를 받아 보신 분이야.”

정과장이 끼어든다.

“부장님, 그런데요, 이번 기획 보고서는 젊은 세대에 맞춰서 마케팅 방법도 파격적으로 하려고 해요. 그래서 그 기획안도 나대리가 한 번 파격적인 양식으로 만들어 봤어요.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는데요, 그동안 저희 팀에서 시도해보지 않은 마케팅이라 저희부터도 분위기랑 형식을 파격적으로 변화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야, 정과장! 너는 충분히 알만한 연차에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노! 니가 중심을 잘 잡아야지. 과장이 말이야.”

나대리와 정과장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정과장이 소곤 소곤 나대리에게 뭔가를 얘기한다.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본다.

“나대리, 부장님이 20년 동안 한 가지 피피티 양식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오셨잖아, 다른 양식에 익숙하시지 않아서 그러시는거야. 내가 내일 한 번 더 말씀드려 볼게.”

“네… 감사합니다, 과장님.”

‘정과장 이 짜슥(자식), 지만(자기만) 좋은 선배가 되고 나는 나쁜 놈 만드네, 내가 다 상무님 통과를 잘 시킬라고 그러는거지. 쟤는 그걸 몰라.’

술이 땡긴다. 시계를 보니 곧 퇴근 시간이다.

퇴근길 만원 엘리베이터에 마침 정과장도 같이 탔다.

“정과장, 너 매운 거 엄청나게 좋아한다메? 너 마라탕, 훠궈 이런 거 좋아하냐?”

“어휴, 부장님, 없어서 못 먹지요.”

“그래? 그럼 나랑 저녁 간단히 먹고 들어갈래?”

정과장과 시청역 근처의 중국집 홀에 자리를 잡았다.

“야, 여기 삼선짬뽕 진~짜 맛있데이, 이따시만한(이렇게 큰) 쭈꾸미(주꾸미)를 통으로 올려준다니깐.”

“… 부장님, 훠궈 사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전 이 집이 언제부터 훠궈를 팔았지? 하고 있었는데…”

“야, 그건 내가 임원되면 비~싼 데 가서 사주께. 여기 짬뽕 진~짜 매워.”

“… 네… 저도 잘~ 알죠.”

삼선짬뽕에 고량주 중간 크기 한 병을 시켰다.

이 집 삼선짬뽕은 큼지막한 주꾸미가 짬뽕 위에 떡하니 얹혀 있다. 집게로 주꾸미를 집어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른다. 주꾸미 다리 하나를 국물에 푹 담갔다가 덥석 베어 문다. 탱글칼칼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고량주를 한잔 흡! 하고 한 번에 들이킨다.

“야, 정과장, 아까 말이야, 나대리랑 얘기한 거 내가 우연히 들었는데, 너 나대리한테 내가 뭐 ‘20년간 똑같은 양식으로 피피티 만들었다’고 하던데.”

“어? 제가 그런 얘길 했던가요? 기억이 안 나네요. 허허.”

“야, 니는 내가 뭘 20년을…, 야, 나도 그런거 파격적인거 다~ 시도해봤어. 근데 내가 상무님 대리 때부터 상무 되신 지금까지 20년을 쭉~ 사수로 모셨잖아. 그분이 그런 거 좋아 안 하신다니깐. 아무리 내용이 참신해도 보고서 양식은 회사 양식에 맞춰야 읽기 시작한다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한거지,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도 파격 좋아해.”

“네~ 네~.”

“이 짜슥이,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박사 딴 사람인데.”

고량주 잔을 채워 서로 쨍! 하고 부딪힌 뒤 한 잔 흡! 하고 한 번에 들이킨다. 그리고 짬뽕 국물을 한 숟갈 떠 마신다.

고량주는 독해서 소주처럼 쭉~ 음미하며 마시면 한 잔을 다 마시기 어렵다. 어차피 잔 크기도 소주잔보다 작으니 흡! 하고 순식간에 마시는 게 좋다. 순식간에 술이 입에서 식도로 넘어가지만, 그 사이에 향긋한 과일향, 느끼한 기름기를 씻어주는 깔끔함,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움을 동시에 느낀다.

아까 나대리와의 대화도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동시에 세 가지의 충돌이 생겼다.

첫째는 자율성(Autonomy)의 충돌이다. MZ는 본인의 일에 ‘자기 의도’, ‘자기 방식’을 반영할 수 있는 자율권을 중요 하게 여긴다. MZ는 자율권을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인식 한다. 결국 나대리와의 대화에서 나대리는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인식한다. 반면 우리 나이 때 부장은 ‘정해진 방향, 과정, 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부장에게 지시된 방향대로 움직이는 것은 곧 ‘책임’이다. 따라서 부장은 나대리가 ‘책임감이 없다’라고 오해한다.

두 번째는 유능감(Competence)의 충돌이다. MZ에게는 ‘성장할 기회’가 중요하다. MZ들은 시도할 기회가 있어야 유능해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대리는 본인이 성장할 기회가 보고서 양식을 변경함으로써 사라졌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부장에게는 ‘결과로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 부장에게 유능감이란 실행 후에 인정해 주는 것이다.

셋째는 관계성(Relatedness)의 붕괴다. MZ에게는 본인이 동료로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부장은 ‘일만 제대로 해라’는 늬앙스로 말한다. 이럴 때 나대리와 같은 MZ들은 본인이 동료가 아닌 보고서를 만드는 소모품처럼 쓰인다고 느낀다.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의 충돌을 구성원이 동시에 느낄 때, MZ는 ‘자기 결정권이 없다’라고 느낀다. 자기 결정권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 선생님과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 선생님이 1980년대에 발전시킨 이론이다. 1970년대까지 심리학계는 급여와 상벌 같은 외적 보상 중심의 동기 이론이 발전해 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선생님은 심리 실험을 통해 ‘외적 보상이 오히려 내적 동기를 약화할 수 있다’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라이언 선생님과 함께 ‘동기의 개념’을 체계화했다.

두 분 선생님이 정리한 ‘동기의 개념’에 따르면, 동기는 단순히 ‘있다/없다’의 이분법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동기는 외적 통제(외적 동기)와 내적 자율(내적 동기)의 연속 선상에 있다. 일종의 스펙트럼이다.

외적 통제에 가까울수록 직원은 (1단계) 강제에 의해서, (2단계) 보상 때문에 일을 한다. 혹은 (3단계) 인정 받기 위해 움직인다. 반면 내적 자율에 가까울수록 직원은 (4단계) 가치에 공감해서, (5단계) 즐거워서 일한다. 두 분 선생님이 주장한 것은 직원들이 4~5단계의 동기를 추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과 선생님께 누누이 들었던 얘기처럼, ‘시켜서 하는 공부는 오래 못 가는 법’이다.

두 분 선생님에게 직원들은 ‘단순히 성과를 만드는 기계가 아니라, 의미를 찾는 존재다.’ 마찬가지로 MZ도 4~5단계의 동기를 자연스럽게 추구하려고 한다. 나대리의 상황도 마찬 가지다.

하지만 이를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이 때 부장들은 뒷목을 잡게 된다. 부장은 이런 생각을 한다. ‘회사 일인데 ‘나다움’이 왜 그렇게 중요해?’, ‘일인데 왜 자기감정을 들이대지?’

그런데, 이 상황은 MZ 구성원들도 잘 못 한 게 아니다. 동기의 작동 방식이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부장이 회사와 상사의 방침을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길들여져 왔다면, MZ 구성원은 자기 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왕 자기 결정권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부장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후배들에게 맞춰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MZ 구성원은 자기 결정권을 일종의 기본권처럼 인식한다. 그런데 이 기본권을 표현하는 방식이 우리 나이 때 부장들에게는 낯선 방식이기 때문에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율성과 관련해서 MZ들은 ‘왜 이렇게 해야 하죠?’ 라고 표현한다. 부장이 이런 말을 들으면 ‘버릇없다’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반항이 아니라 MZ 스스로 ‘통제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부장도 ‘욱’ 하지 말고 ‘말투’를 가다듬어 대화해야 한다.

그 이유는 MZ들이 ‘내용’보다는 ‘말투’에 더 민감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MZ들에게 부장의 말투는 다음 세 가지를 동시에 해석하는 신호가 된다. 첫째, 나를 존중하는가? 둘째, 나를 성장시키려는가? 셋째, 나를 동료로 보는가?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부장의 말투에 따라 MZ 구성원들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인다.

짬뽕 그릇을 뒤적거려 주꾸미 다리 하나를 찾아 먹는다. 탱글칼칼하다. 고량주 한 잔을 흡! 마신다.

서울 사대문 안에 이 음식점과 이름이 같은 중국집이 여럿 있다. 모두 짬뽕이 주력 메뉴다. ‘OO이네’, ‘엄마 OOO’, ‘OO천국’이 각 메뉴의 느낌을 잘 살리는 이름인 것처럼, 짬뽕을 전문으로 하는 집의 이름도 그런 전형을 따르는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집도 모두 삼선짬뽕이 있지만, 이 집처럼 큼지막한 주꾸미를 통으로 올려주고, 그걸 손님이 집게와 가위로 직접 잘라 먹는 집은 못 본 것 같다. (물론 주부장이 사대문 밖에는 잘 나가보지 못해서 모를 수 있다. 강남 같은 술값 비싼 동네는 불러주는 분이 없어, 거의 못 가 봤다.) 어쨌든 이건 이 집만의 파격이고, 이것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손님이 줄을 선다.

파격이 먹히는 이유는 기본기가 탄탄해서이다. 짬뽕 국물은 밍밍하거나 텁텁한데, 큼지막한 주꾸미만 올라간다고 손님이 줄을 서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부장 대부분은 공통으로 MZ 직원들이 보고서의 내용도 제대로 채워 넣지 못하면서 형식적인 자율권, 결정권을 요구한다고 느낀다. 아직 업무에 미숙한 1~3년 차 사원급 직원 이라면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때는 지시를 따르고 배우며 성장할 때이다. 그런데 대리급쯤 되면 이제는 형식적인 부분에서는 자율권을 줄 때도 되었다. 그래야 후배들을 더 성장 시킬 수 있다. 반면 아직은 내용이 부족할 거라 내용에 대한 피드백은 계속 주어야 한다.

그래서 부장의 피드백은 ‘파격적인 형식’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라, 기본기, 즉 ‘내용’에 대한 피드백이어야 한다. 다만 이때에도 관계를 지키며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이게 최선 이야?’, ‘이 정도면 그냥 학생 과제 수준이잖아’ 이런 표현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표현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자. ‘전체적인 방향은 좋아. 다만, 이번 프로젝트의 성격상 조금 더 공격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 같이 다시 메시지를 잡아볼까?’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MZ 구성원의 자존감도 보호하고, 관계성도 유지하면서 실행력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했음에도 MZ 구성원이 ‘저는 지금 메시지가 더 좋은 것 같은데요’, 혹은 ‘왜 이렇게 바꿔야 하는 거죠?’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다시 한번 더 뒷목을 잡게 된다.

뭔가 더 앞단에서부터 꼬인 것이다. 내가 이 대화에 앞서, 혹은 이 프로젝트에 앞서 관계성을 해치는 발언을 한 것은 없는지 찬찬히 곱씹어 보고 다시 관계 회복을 시도해야 한다. 관계성이 회복되었을 때의 정상적인 반응은 ‘네, 저도 그 생각 했어요’ 혹은 ‘안 그래도 이 메시지 말고 이것도 생각 했었거든요, 이건 어때요?’ 이런 반응이다. 이런 반응이 나올 때까지는 내가 잘 못 둔 수를 복기해 수정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더 복습하자. MZ들은 부장의 말 한 마디에서도 세 가지를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나는 존중받는가? 나를 성장시키려는가? 나를 동료로 보는가?’

고량주 중간 크기를 각 1병(각 일병)씩 비웠다. 전라도에서 앳된 처녀 때 상경하여 무교동 유명 일식집의 홀을 50년 넘게 책임지신 홀 상무님이 내린 판정은 ‘각 1병까지는 반주, 그 뒤로는 음주’다. 무교동 근처에서 직장 생활을 한 부장은 그 홀 상무님의 룰을 따른다. 주부장과 정과장도 그 룰에 따라 짬뽕에 반주로 각 1병씩 깔끔하게 끝냈다. 그게 알콜 도수 40도의 고량주든 뭐든 말이다.

“부장님, 오늘 잘 먹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니도 고생이 많다. 내일 나대리 기획안 한 번 같이 보고 어떻게 상무님께 보고드릴지 전략을 잘 짜보자.”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정과장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괜히 심통 부렸나 싶다. ‘좀 비싼 거, 유산슬이라도 시켜 줄 걸 그랬나?’

내일 출근하면 상무님께 이번 기획안 보고는 형식이 좀 파격적일 거라고 미리 말씀드려야겠다. 그래야 25년 외길 피피티 양식만 고집하신 우리 상무님이 당황하지 않으시지.

어디 가서 맥주로 입가심이나 하고 집에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MZ와 일하는 대기업 부장의 혼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