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의 얘기를 할 때다."
박근혜 정부 때 노동법 개정을 통해 60세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보호막이 생겼다. 몇 년 후, 같은 부서에서 선배로 모셨던 부장님들 중에 정년퇴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년퇴직자를 위한 회식은 명예 퇴직자 회식과 달리 회식 장소로 가는 내 발걸음도 가벼웠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사오정(사십오 세 정년)’, ‘오륙도(오십육 세에는 회사에 도착하지 못한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드디어 내 청춘에도 유통기한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의 압박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지방 으로 전근을 하고, 면(免)팀장을 당하고 후배 밑에서 팀원 으로 일하고,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면 적어도 60세까지는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이런 선택지도 없는 중소기업도 많은데 대기업 부장은 얼마나 복 받은 것인가.
그렇게 정년퇴직한 선배들은 공인중개사를 딴 형수님이 임장을 다닐 때 운전을 해주거나, 형수님과 분당에서 케이크 집을 차리거나, 프리랜서로 컨설팅을 해주거나 각자 준비한 대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덜컥, 하루아침에 받는 해고 통지가 아니므로, 적어도 품위를 지킬 준비가 가능했다.
이제 정년 연장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 나이 때 부장들에게 정년 연장 논의는 환영할 일이다. 국민연금 수령 때까지 다닐 직장이 있다는 고마움이 가장 크다. 자식들도 독립이 점점 늦어지는데, 2~3년의 연장은 소중하다. 반면, 이렇게 힘들게 다녔는데 몇 년을 더 다녀야 한다는 허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있을 수 있다’라고 표현한 건 저자의 속마음은 ‘아직도 배가 부르구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년이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그 출근길이 순탄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 산업전환을 하는 기업이 많아져서 한순간 우리 회사의, 사업부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 바뀐 주인이 내 자리를 보장해 준다는 법은 당연히 없다.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한 저탄소 산업으로 전환할 때는 현금 흐름이 좋은 사업부를 먼저 처분한다. 그래서 ‘우리 사업부는 괜찮을 거야’라고 안심하고 있다가, 우리 사업부가 외국계 펀드에 팔려나간 것을 출근길 전철 속 모바일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때도 있다.
결국,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생존을 위한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모시던 상무님 밑에 착 달라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 껌딱지가 되어야 한다. 끝끝내 나를 버리고 가시려면 ‘즈려밟고’ 가시라고 드러누워야 한다.
그런데 생떼만 쓸 게 아니라 임원에게 내 존재가치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 아마도 그중 하나는 ‘MZ의 역량을 잘 끌어내는 부장’이다. 혹은 ‘AI를 잘 다루는’, ‘글로벌 역량이 있는’ 부장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배움과 연습이 필요하다. 골프 연습만 할 게 아니다. 혼나 가면서 피피티와 엑셀 쓰는 법을 배웠듯 AI도 배우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절로 궁금해지는 게 있다. 우리 아버지들은 어떻게 이걸 버텨 내셨을까? 어머니들은 어떻게 아버지들을 내조했을까?
매일 야근에, 토요일까지 주6일 근무에, 일요일도 온갖 경조사에, 직장 상사의 취미에 맞춰 등산, 낚시, 바둑, 골프, 나를 위한 시간은 1도 낼 수 없는 직장생활을 어떻게 버텼을까? 그렇다고 재테크와 노후준비를 돕는 유튜브 채널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어떻게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내셨을까? 그래서 우리 아버지들이 그 좋지도 않은 희석 소주를 그렇게도 많이 들이부으셨나 보다.
이제는 우리의 얘기를 할 때다.
2~3년의 연장 기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느냐가 아마도 우리의 노후를 완전히 바꿀 것이다. 이 책이 직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팁을 주는 책이라면, 이제 이 책을 다 읽고 뒤이어 시작해야 할 것은 ‘직장을 떠났을 때’를 위한 준비다.
오늘도 혼술을 하고 있다면, 이제 후배들이 아닌 나를 위해 잔을 들자.
“부장님, 오늘도 고생 많았습니다. 몇 년 더 나를 위해 열심히 달려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