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혼자 일하고 싶어요."
신규 마케팅 프로젝트의 기획 회의를 끝내고 다들 자리로 돌아갔다. 나대리가 쭈뼛쭈뼛 주부장 자리로 온다.
“부장님, 이번 프로젝트 말인데요, 각자 역할을 어떻게 나누는 건가요?”
“어? 뭔 소리고(소리니?). 뭘 나눈다고(나눈다는 말이니?). 이번 프로젝트는 팀 프로젝트야, 다 같이 머리 맞대고 하는 거지.”
“그건 저도 아는데요, 그래도 각자 역할은 나눠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런 건 하다가 자연스럽게 정리하면 되지, 팀워크, 모르나(모르니?).”
“… 그럼 성과 평가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당연히 팀 성과지, 잘 되면 다 같이 잘한 거지.”
“그럼 제가 맡은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야, 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그런거 따지노(따지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런 프로젝트는 혼자 일하고 싶어요.”
“야, 뭔 소리고. 니가 밑에 후배들도 챙겨야지, 혼자 일한다는게 말이 되나.”
“…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얘기에요.”
‘참 답답~하다. 대리까지 단 애가 혼자 일하고 싶다니….’
술이 땡긴다.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이다. 오늘 외주사 대표와 저녁 약속이 있는데, 대표님이 감사하게도 이번 이벤트에 쓸 영상을 직접 마무리하고 오시기로 해서 시간 여유가 있다.
종각역 근처 일본 상사가 입주한 건물의 단골 이자카야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일본인 종업원이 일본어로 인사하고 바 자리로 안내한다.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저녁 식사 전에 배부르지 않고, 한 시간 정도를 책임질 임팩트 있는 안주 하나를 딱 고르라면, 무조건 ‘우엉튀김’이다. 일본산 생맥주도 함께 주문한다.
우엉튀김은 이자카야 안주 중 가장 과소평가된 팔방미인이다. 우엉튀김은 제대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우엉튀김은 일당 백의 안주다. 우선 맛이 좋다. 우엉 특유의 흙내와 구수함, 튀김옷의 단맛, 소금 양념의 짠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배가된다.
여러 술과의 호환성도 좋다. 아삭구수한 맛 때문에 생맥주와도 잘 맞다. 우엉의 흙내음이 쌀 향과도 잘 맞아 사케와도 어울린다. 뿌리채소의 구수함 때문에 고구마와 보리로 만든 일본 소주와도 궁합이 좋다.
맛이 강하지 않아서 단독으로도, 다른 안주 사이의 완충재로도 좋다. 술자리 안주의 주인공도, 조연도 될 수 있다. 또, 한꺼번에 수십 가닥이 나오기 때문에 혼술 안주로도 좋고, 단체 술자리의 안주로도 좋다.
그런데 의외로 사대문 안의 이자카야 중에는 우엉튀김을 파는 곳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우엉튀김은 성의가 없으면 바로 티 나는 안주이기 때문이다. 우엉은 손이 많이 가는 재료다. 아린 맛을 제거해야 하고, 자체의 구수한 맛을 살리려면 간을 적절히 해야 한다. 우엉을 튀길 때는 아삭한 맛을 살리기 위해 두께나 튀김 시간을 다 신경 써야 한다. 냉동 완제품과 직접 손질해 내놓는 것의 맛 차이도 크다. 그래서 우엉튀김을 파는 집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우엉튀김은 이자카야의 철학에 최적화된 안주다.이자카야의 어원은 ‘머무르다(居)’는 뜻의 단어다. 앉아서 술과 식사를 하고, 천천히 즐기는 술자리가 이자카야 철학에 맞는 술자리다. 서서 빨리 마시고 가는 선술집(타치노미야)과완전 반대의 철학이다.
우엉튀김은 술을 오래 마시게 하는 안주다. 우엉은 수분이 적고 섬유질이 많아, 튀기면 바삭함이 오래 유지되고 눅눅해지지 않는다. 식어도 먹을만하다. 배도 어느 정도 차면서 질리지 않는다. 너무 기름지거나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자카야의 정신에 잘 맞는 안주다.
우리 MZ 직원들이 우엉튀김처럼 일당 백의 팔방미인이면, 우리 부장들은 얼마나 좋을까? 혼자 일할 때는 혼자 일하는 대로, 같이 일할 때는 같이 일하는 대로 제 역할을 잘하면, 직원들 걱정은 할 게 없을 것이다. 나만 잘해서 임원만 달면 된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나대리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부분의 부장들은 ‘MZ들이 협업을 싫어하는 개인주의’라고 오해한다. MZ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갈등의 원인은 MZ의 태도가 아니라 팀의 목표 설계가 잘못된 것이다.
목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MBO) 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유명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선생님이 오래전, 70년 전쯤 제시한 이론이다. 조직과 개인이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고, 성과를 측정가능하게 관리하는 방식이다. 피터 선생님이 제시한 핵심 원칙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명확한 목표 설정(Clarity of Objectives)이다. 둘째, 참여적 목표 설정(Participation)이다. 셋째, 측정 가능성(Measurability)이다. 넷째, 정기적 평가와 피드백(Periodic Review)이다. 다섯째, 성과와 보상의 연계(Linking to Reward)다. 이 다섯 가지 원칙은 소제목만 읽어도 어떤 건지 감이 온다. 이 이론은 만들어진 지 7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에서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같은 형태로 진화해서 활용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론이자 기법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부장이 실제 팀에 적용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그 어려움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부장의 목표 관리가 실패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우엉튀김 하나 씹고.
첫째, ‘팀 목표다’라고 선언하면, 다 알아서 돌아갈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각자 역할은 모호하고, 각자 책임은 문제 생기면 그때 판단’하게 되면, 절대로 알아서 돌아가지 않는다. 목표 관리 이론에 따르면, 목표의 귀속성(Ownership)이 없어진다. MZ 직원 누구도 목표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둘째,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보려 한다. 중간 점검을 위한 기준과 지표가 없기 때문에, MZ들의 중간 기여가 평가 되지 않는다. 협업 과정에서는 중간 조율, 지원, 보완 등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것들이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 ‘보이지 않는(했으나 하지 않은) 노동’이 되어 버린다. 이 상황에서 MZ들은 협업을 회피하게 된다.
MZ들은 이미 이런 협업 실패를 경험한 후에 회사에 입사했다. 그들이 겪은 협업 경험은 대부분 대학 수업 시간의 팀 과제다. 별의별 애들이 다 있다. 너네가 알아서 하고 나는 술 사겠다는 복학생, 첫날 연락되고 연락 끊긴 애, 얼굴 믿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애, 얼굴 믿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애를 여신처럼 떠받들어 주는 애. 누군가 목표 관리를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협업은 거의 대부분 실패한다. 이런 실패 경험을 안고 회사에 들어왔기 때문에, ‘팀 과제’라는 부장의 말에 거부감부터 드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서도 협업 실패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MZ의 ‘혼자 일하고 싶어요’는 협업 거부가 아니라, 목표 관리를 제대로 해달라는 요청이다.
그렇다면, 부장은 어떻게 목표 관리를 해야 할까? 우엉튀김 한 가닥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총 일곱 가지 팁을 준비했다.
첫째, 목표 설정에 MZ를 참여시키자. 강제로 목표를 주는 게 아니라 협의하는 것이다. 참여감이 높으면 ‘부장이 강제로 시킨다’는 거부감이 줄어든다. ‘목표를 내가 정했으니 내가 책임진다’는 주인의식도 생긴다. MZ가 목표를 정할 때, ‘아무거나 목표를 잡아 올까 봐’ 걱정되는 부장이 있다면, 부장이 목표의 초안을 제공하고 MZ가 수정/보완하게 하면 된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이 목표를 달성하면 네 경력에 어떤 도움이 될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좋다. 동기부여가 되어 더 높은 목표에 합의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목표를 시각화하고 구체화한다. 추상적 목표는 오해를 부른다. 그래서 정량적이고 시각적 지표를 활용해야 한다. KPI와 같은 달성도 목표를 잡을 때는 달력, 진척률 차트를 활용하면 좋다. 결과를 목표로 잡을 때는 숫자나 마일스톤, 체크리스트 형태를 활용하자. 이런 시각화 자료를 통해 진행 상황이 한눈에 보이면, MZ는 자기 역량을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중간 점검을 해야 한다. 한 번에 믿고 끝까지 맡기면, 무조건 품질은 떨어진다. 적절한 중간 점검 단위를 합의하고, 그 사이 업무에는 자율성을 유지하게 한다. 점검 후 개선에 대해서도 자율적 권한을 부여하는 게 좋다. 그래야 MZ는 중간 점검을 통제가 아니라고 인식한다. 만약 MZ가 중간 점검을 ‘성공 확률을 높이는 안전 장치’라고 인식하고 점검 때 스스로 애로사항이나 지원 요청사항을 얘기한다면 성공한 것이다.
넷째, 피드백은 과정 중심이어야 한다. MZ는 결과 비판에 민감하다. 결과를 비판하면 방어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과정 중심으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 예를 들면, ‘논리 구조가 좋네, 근거 2개만 더 보강하면 완성도가 확 올라갈 것 같아’라거나 ‘이 부분은 아이디어가 좋은데 회사 통념에 안 맞을 수도 있으니 데이터로 방어할 필요가 있겠어’와 같은 표현을 연습하자. 결국, 지금까지의 결과가 아닌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과정 피드백이어야 한다.
다섯째, 개인 목표는 공개해야 한다. 특히 팀 목표가 같이 병기해서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MZ가 혼자 일하더라도 전체 목표와 본인 목표의 연결성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때에 중요한 것은 ‘공개해서 비교하자’가 아니라, ‘공개해서 협력하자’이다. 다른 직원의 목표도 함께 보면서 나와 협력할 지점을 찾자는 의미이다.
여섯째, 목표는 도전적으로, 성공 경험은 작은 것부터 해야 한다. 너무 쉬운 목표는 아무 쓸모가 없다. 반면 너무 어려운 목표는 좌절과 거부감을 들게 한다. 그래서 도전적이지만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때 핵심 성과를 3~4개로 제한해, 달성 경험을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 성공 경험이 축적되면 성취감이 쌓이고,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더 도전적인 목표에 몰입하게 된다.
일곱째, 마지막 팁이다. 평가는 ‘인정’을 통해 이뤄진다. 목표 관리는 팀장의 피드백을 통해 이뤄지고, 피드백의 가장 큰 무기는 ‘인정(Recognition)이다. 부장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목표 관리를 ‘성과 평가를 잘해서 금전적으로 보상을 주자’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건 다른 영역이다. 물론 금전 보상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목표 관리에서 할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전 보상과 목표 관리를 연결한 것은 1970년대 이후 기업규모가 급격히 비대해지면서 생긴 ‘성과 기반 보상 시스템’ 이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관리자가 일일이 피드백을 줄 수 없어서 만들어진 기법일 뿐이다. 원래 피터 선생님이 1950년대에 얘기한 목표 관리의 본질이 아니다.
피터 선생님의 목표 관리에서 말하는 평가는 ‘인정’이다. 금전 보상이 아닌 인정을 통해 학습과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
이 과정은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개인 평가를 팀 목표와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장이 연습해야 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이 팀의 목표에서, 네가 책임지는 부분은 OOO이고, 그 성과는 OO으로 평가할 거야’라는 문구다. 이 문구는 일종의 관용어구라서 영어 관용어구 외우듯 외워 버리고, 관용어 공부하듯 한 부분씩 뜯어서 분석해 보자.
‘이 팀의 목표에서’는 어떤 역할일까? 전체 맥락을 공유 하는 역할이다. 맥락의 공유가 필요한 이유는, MZ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알아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문구를 좀 더 응용해보면, ‘이번 분기 팀 목표는 신사업 기획안 완성이고’ 혹은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객 전환율 개선이고’와 같은 응용이 가능하다.
‘당신이 책임지는 건 OOO’ 문구는 어떤 역할일까? 목표의 소유권을 귀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이 역할 때문에 ‘내 일’이 명확해지고, 협업의 불안이 사라지게 된다. 응용 문장의 예를 들어보면, ‘이 중에서 너의 책임은 시장 리서치 정리다’ 혹은 ‘당신은 수익 모델의 가설 설계를 맡아요’와 같은 문장이 있다.
‘OO 기준으로 평가합니다’의 역할은 ‘기여와 평가의 연결’이다. 단순 결과가 아니라, 기여의 질이 평가 대상이 된다. 이를 통해 MZ는 중간 과정에도 충실하게 된다. 평가 기준이 될 만한 것을 예로 들어보면, ‘자료의 깊이와 논리성’, ‘의사결정에 실제로 쓰였는지 아닌지’, ‘기한 내 완성도’ 등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팀 목표와 연결한 개인 평가’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연결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팀 목표-개인의 책임-평가 기준을 잘 연결하더라도 협업을 꺼리는 직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간의 협업 실패 경험이 너무 세서 그렇다. 협업 실패를 세게 경험한 직원에게 처음부터 전폭적인 몰입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경우 부장은 해당 직원이 단계별로 몰입을 늘려나가도록 지원하면 좋겠다. 처음에는 이렇게 말해 주는 게 좋다. ‘당신 몫은 여기까지고, 우선은 그 부분만 놓고 평가할게요.’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 신뢰가 생기면, 점점 협업 강도를 높여 나가면 된다.
중간 점검을 할 때는 최대한 감정 없이 피드백을 하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연습해 보면 좋겠다. ‘지금까지 팀 목표 중에서, 당신의 책임 범위는 이 정도까지 충족되었고, 평가 기준으로 보면 OOO은 충분하고, OO은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해요.’
최종적인 성과 면담을 할 때는 협업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쓰면 좋겠다. ‘팀 성과가 잘 나온 이유 중 하나가, 당신이 맡은 OOO이 OO을 가능하게 해줬기 때문이에요’ 이런 표현이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별로 좋지 않다. ‘다 같이 고생했어’, ‘팀워크가 좋았어’,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야’ 이런 영혼 없는 표현은 아무 쓸모가 없다. 오히려 ‘이 결과는 네가 맡은 OO 덕분이야’ 혹은 ‘네가 팀 목표의 이 지점을 완성시켰어’ 이런 표현을 쓰면, 다음 협업을 위한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생맥주를 석 잔이나 마셨다. 감자튀김을 주문했다면, 지금쯤 눅눅해져 버렸을 것이다. 우엉튀김은 끝까지 아삭구수하다. 너무 기름지지도 않아 질리지도 않는다. 외주사 대표를 뵈러 갈 시간이 되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사장님, 이거 좀 남기놔(남겨 놓아) 주세요. 제가 저녁먹고 다시 와서 먹으께요.”
10년 단골만이 할 수 있는 뻔뻔한 요청이다.
오늘은 에피타이저 혼술과 디저트 혼술까지 풀코스다. 나중에는 우엉튀김을 사케랑 먹어봐야겠다. 외주사 대표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빨리 회 대접하고 집에 보내드리야지(보내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