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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효샘 Dec 19. 2017

2. 그 시절 나를 사랑했다면

다이어트, 자존감부터 다시 쓰다

그 몇 해 전 나는 심한 스트레스에 겹겹이 둘러 싸여 있었다. 항암 투병 중이었던 아버지는 2주에 한 번씩 서울로 수혈을 받으러 가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에 가기를 여러 번, 어떻게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직장을 옮기고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눈치가 보이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은 아무도 나처럼 연가를 내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나처럼 집에 사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그들은 아무도... 마음속으로 그런 내 처지를 투덜거리고 불평하곤 했다. 


아버지는 집 근처 병원으로 입원을 한 다음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 옆에서 24시간을 지키는 엄마도, 엄마를 지켜보는 나도, 암과 싸우는 아버지도 다 같이 지쳐갔다. 나는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매일 갈등했다.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이기는 날에는 어김없이 병원에서 엄마와 아버지의 불평을 번갈아가며 들어야 했다. 


‘느이 엄마가 음식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병실에서 밥을 먹는다. 내가 이러니 살겠냐. 앞으로는 네가 병간호해라.’


‘느이 아버지가 나를 잡들이해서 못살겄다. 이러다간 느이 아빠보다 내가 일찍 죽지.’


나를 붙들고 우는 엄마의 어깨가 야위어 있었다. 엄마가 빠진 살이 다 내게로 와서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병상에 누워서도 아버지는 음식을 끝없이 요구했다. 버섯을 따와라, 딸기를 먹고 싶다, 탕수육을 만들어와라, ... 그런 아버지의 요구에 엄마는 늘 순응했고 아버지는 엄마가 만들어온 음식을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이미 받아들이지 못 하는 몸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묘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이 느껴지고 안 먹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직장에서 상사가 눈치를 주면 그날은 밖에 나가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혼자서 식당에 찾아가 밥을 먹는 날이 잦았던 그때, 나는 고슴도치 같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고 다친 마음을 어디선가 위로 받고 싶었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없을 때 다른 무언가 위로를 대체할 것을 찾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게 내겐 음식이었다. 맛있고 달고 쓰고 짠 음식. 게장을 비벼서 먹고 탕수육을 먹고 비빔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식당 안 그 누구보다 빨리 많이 먹었다. 그렇게 몇 분 안 걸려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 시절 그 음식들이 없었으면 어디에서 위안을 얻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됐다. 그때 나는 나를 벌주고 싶었다. 아버지는 저렇게 누워있는데 너는 뭐 하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고, 그 전 직장이 더 좋지 않았냐고 스스로에게 따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름답고 건강한 내가 아닌 낯설고 어색한 나를 만들어가는 데 한껏 노력하고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좀 더 나를 사랑했더라면 분명히 나는 음식도 나 자신도 그렇게 막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치 쓰레기통에 음식을 쓸어 넣기라도 하듯이 먹어대면서 죄책감을 갖고, 먹은 다음엔 다시 배고파하는 일을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나를 아프게 하고 싶었고 벌주고 싶었고 될 수 있으면 건강하지 않고 싶었다. 그게 내 몸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생채기였다는 걸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인간의 몸은 지극히 미묘하고 복잡하면서도 한없이 단순하다.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원리는 단 하나다. 아끼고 사랑하면 그만큼 건강해지고, 미워하고 손가락질하면 그만큼 약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정신은 연결돼 있기에 인간의 정신이 나약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면 동시에 몸도 약해진다. 그뿐 아니다. 내 자존감이 낮아지고 한없이 자아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쇼핑을 하면서 위로를 얻곤 했다. 이 모든 게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이렇게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제대로 보게 됐다. 그걸 그 시절에 알았으면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없이 주저앉아서 울거나 내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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