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로 가기 전의 나로 존재하는 시간
이제 퇴사한 지 2주 정도 지났다.
퇴사, 면접, 이사, 축가
나의 큰 이벤트들이 어제부로 끝났다.
회사 일정도 없고
집 정리도 거의 끝냈고
누군가 앞에서 잘 보여야 할 이벤트도 없다.
이제 다시 나를 중심으로 호흡이 돌아오는 시점이다.
지금 상태는
도망친 것도 아니고
멈춘 것도 아니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냥 큰 파도를 하나 넘고,
잔잔한 수면 위에 올라온 상태이다.
그래서 지금은
뭔가 더 성취해야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쉬어도 되는 것 같지도 않은
어느 애매한 언저리에 있다.
근데 그 애매함이 나를 제일 불안하게 만든다.
전시 상태가 익숙한 사람은
더 이상 긴장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안하다.
아무 타이틀 없이,
다음 단계로 가기 전의 나로 존재하는 시간
비어있는 캘린더가 낯선 만큼
이 시간이 생각보다 힘들다.
나를 평가하던 시선을 잠시 내려놓는다는 건
정체성이 비어버리는 것과
자존감이 흔들리는 상태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는
생각보다 어렵다.
2025년 크리스마스를
불편하게 보낼지도 모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줘야지
"이 여백을
불안으로 채워도 되고
또 다른 준비로 채워도 되고
잠깐 숨으로 채워도 돼
어떤 선택을 해도
너는 충분히 잘 해낼 거야
조용해진 지금이
무섭게 느껴지면
그건 네가 그만큼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야
오늘은 그냥
그 조용함이 옆에 있게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