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가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의 조건
살아남는 게 익숙했다.
물 없는 땅에서도,
누가 길을 알려주지 않아도 잘 버텼다.
그렇게 살아남은 날들이 쌓여,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살아남기보다
진짜 자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문제를 발견하면 실험하고 싶어진다.
가설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확인하고
그 결과로 다음 액션을 도출하는 과정이 즐겁다.
이제는 데이터를 보여주면 공기부터 조용해졌고,
실험을 제안하면 눈빛이 먼저 말리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도 손을 놓을 순 없었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이니까.
누군가의 피드백 없이도,
유저의 행동과 숫자로 답을 찾아갔다.
살아남는다는 건 그런 식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 보다는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항상 새벽 1시가 되어야 퇴근하면서도
자꾸만 허전했다.
성과는 내고 있지만
성장한다는 감각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게 최선이었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었는지
물어볼 사람도, 함께 고민할 동료도 없다.
그래서 요즘 자꾸 상상하게 된다.
이런 질문들이 허락되는 환경을.
"이 실험, 한 번 해볼까요?"
"지표를 보니 이 구간이 병목인 것 같아요."
"유저 경험상 B안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지난 여름, 한 컨퍼런스에서
[PO가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의 조건] 세션을 들었다.
"PO의 성장은 제품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됩니다."
그 한 문장이,
내 안의 결핍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주었다.
버티는게 익숙했던 나를,
함께 자라기 위해
부딪힐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가끔은 불안해지기도 한다.
같은 주니어 PM이라도
누군가는 좋은 환경에서 크게 성장을 했을 것이다.
이런 내가 그들 앞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보일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다.
애초에 물조차 없던 땅바닥에서,
스스로 물을 찾아 헤매며 살아남은 개구리다.
그건 내가 버텨온 시간이고
나를 증명해온 기록이다.
이제는 그 시간 위에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싶다.
비옥한 토양에 옮겨진다면
더 빠르게 자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