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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l 07. 2023

현실과 진로 적성 검사, 진짜 내가 그런 사람인가요?

도살장 끌려가는 소

  집에서 20분 거리에 설악산이 있는 집에 살고 있는데, 일 년 동안 한 번밖에 못 가봤다. 설악산 초입에 있는 케이블카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데 아내와 아이를 태워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나도 안 타봤다. 그래서 오랜만에 주말에 가족들 전부 설악산으로 놀러 갔다. 가을이기도 해서 단풍이 아름다웠다. 아이는 이제 막 돌 지난 상태라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내도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출이라 그런지 기분 좋아 보였다.


  케이블카도 타고 단풍도 구경하고 산 입구의 불교용품점에서 무료로 주는 차도 마시고 시원한 그늘을 따라 산책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자고, 아내가 툭 쐈다.


  “그렇게 힘들었어? 뭔 한숨을 그렇게 쉬냐! 속초로 이사 오고 처음 설악산 구경 왔는데 기분 좀 좋게 갔다 오면 안돼?”


  “응? 내가?”


  아내는 아이 출산하고 나서 허리디스크가 생겨서 아이를 함부로 안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오면 유모차에 태우거나 내가 안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미안해했다. 그런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기에 내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수시로 살폈고 허리가 안 좋아서 안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보이기라도 하면 처음에는 장난투로 받아주다가 나중에는 부부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내가 나에게 툭 쏘는 말을 하기 전까지 난 종일 행복했고 기분 좋았었다. 그런데 한숨이라니. 그런 게 아니라고 차분하게 변명하고 나서, 내가 진짜 그렇게 한숨을 쉬었냐고 되물었다. 아내는 내가 아침에 집에서 외출하려고 준비할 때부터 계속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정리하고 아이까지 재우고 나서 아내가 맥주 한잔하자고 했다. 그녀는 복숭아향 나는 캔맥주만 마신다. 집 앞 편의점에서 복숭아향 맥주 한 캔과 만 원에 4캔 묶음 하나를 사 왔다. 한 캔씩 들었다.

 

  “자기, 요즘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은 아니고 진급 떨어지고 나서 의욕이 없어져서 그래. 계속 얘기했잖아. 군 생활 나한테 안 맞는 것 같다고……”


  아내는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온몸이 다 빨개졌지만, 머리와 말투만은 매우 이성적이었다.


  “자기 그러면, 이거 교육 한번 가볼래? 진로 적성 검사 자격 따는 교육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손꼽히는 전문가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거거든. 교육 받으면서 상담도 받아볼 수 있고 심리검사 자격도 따고 좋잖아.”


  난 아내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그거 알어? 자기 결혼하기 전부터 나한테 얘기했던 게, 언젠가는 전역할 거라고 했어. 설악산 갔을 때 계속 한숨 쉬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자기 결혼하고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최근에는 출근할 때 표정이 소 도살장 끌려가는 것 같았어. 나도 그런 거 보기 싫어. 정 못하겠으면 전역해. 난 괜찮아. 좋게 보면 이제 이사 그만 다녀도 되는 거잖아. 그건 우리 아빠도 원하는 거야. 지난 번에 집에 갔을 때도 언제까지 이사다닐 꺼냐고 물었잖아. 그치? 대신 전역을 하더라도 아직 2~3년 정도 남아 있으니까 준비를 좀 잘해서 하자. 일단 이거 교육 가서 자기 적성이나 성격도 좀 알아보고 나서 다른 것도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


  이제 곧 마흔 살이 되는데, 이 시기에 안전한 울타리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처음 직업군인이 됐을 때부터 하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기에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성공해보자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 한 선택이다 보니 고비가 하나 생길 때마다 예전에 포기했던 것들이 다시 떠올랐다. 최고의 선택이라고 계속 주지시켰지만, 억지로 교육시키는 것들이 다 그렇듯이 머리속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자꾸 튕겨 나간다. 마음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근데 나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는 떠오르지도 않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반발심만 더 커진다. 그렇게 꾸역꾸역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마흔 살이 다가오고 진급 실패라는 계기가 마련되니까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길을 모르겠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아 보기로 했다. 아내가 추천한 진로 적성 검사 교육을 받으러 갔다. 군인이라 주말 교육이라도 휴가 보고를 해야하는데 "나를 찾으러 교육받으러 갑니다."하면 바로 “전역(퇴직)하게?”라고 반응이 나온다. 그러면 곤란해진다. ‘친지 방문’이라고 보고하고 휴가를 냈다.


  진로 적성 검사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여와서 지금까지 발전시키고 직접 교육까지 한다는 교수님께 교육받았다. 아내와 친분도 약간 있어서 남편이 교육받으러 간다고 이야기 해뒀다고 한다. 남자는 나 혼자라 바로 식별 가능이다.


  이틀 동안 교육받았는데 내용은 정말 좋았다. 사람의 적성 / 성격 유형을 RIASEC이라는 약자로 표현하는데, R(실제형), I(탐구형), A(예술형), S(사회형), E(리더형), C(관습형) 등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해서 설명해줬다. 한 가지 유형만 가지고 보지 않고 가장 높은 수치의 두 가지 유형을 확인한다. 난 탐구형과 실제형(IR형)이다. 탐구형은 공부하고 연구하기 좋아하는 유형이라 나와 맞는 듯하다. 실제형은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적극성을 갖고 하는 활동을 좋아하는 유형이라 군 생활하고 있었던 상황을 비춰서 역시 유사하다. 군내에서는 고급장교나 정책형 장교 유형, 군 밖에서는 연구원, 고등교육자, 교수 같은 직업 유형이다.


  교수님의 유형별 특징에 대한 설명도 들어보니 IR형이 딱 맞는 것 같았는데, 의문점이 있었다. 이것과 유사한 검사는 여러 번 해봤다. 군에서도 조직관리를 하니 상담 교육을 전문적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이 받는다. 각종 심리검사도 많이 해본다. 그때도 들었던 생각인데 모든 문항을 내가 체크한다. 얼마든 조작 가능하다. 또 검사 당시의 직업과 환경에 따라 나의 심리적 상태도 달라진다. 그러면 결과는 또 달라질 것이다. 이게 과연 진짜 나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교수님과 점심때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어서 아내 이야기와 함께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에 의문점 보다 더 크게 실망했다.


  “적성도 있는데 어떻게든 연금 나올 때까지 버텨! 자네 전역하고 연금 한 달에 190~200씩만 받는다 쳐도 10억, 20억 받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걸 왜 포기해? 어떻게든 진급하려고 노력해야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라는 회사에서 조사한 결과를 봤는데, 2022년에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나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검색량이 24배(2,402%)나 늘어났다고 한다. 내가 하는 고민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평생 풍족하진 않아도 살만한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내가 장교가 된 것처럼.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해야 할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사는 거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이지?” 이런 고민을 마흔 살이 다 돼서야 하게 됐다. 몇몇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설령 그 시절에 고민하고 답을 내렸을 지라도 지금쯤 다시 생각이 난다고 했다. 문제는 당연히 더 어려워졌다.


  교수님이 교육을 해줬던 내용과 개인적으로 대화하면서 해줬던 말 사이의 갭과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뭘까, 라는 것에 대한 답을 심리검사와 그 검사의 기초이론을 공부함으로써 찾을 수도 있지만 결국 현실과 부딪힌다. 거기서 어떻게든 버티면 얻을 수 없는 큰돈을 왜 포기하느냐, 는 말이 몇 년 지난 후까지도 잊혀지지 안았다. 큰돈끼지는 아니더라도 당장의 집담보 대출,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등을 생각하면 월급이 끊기는 도박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결국 전직이나 이직,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싶어도 기존에 받던 급여, 처우를 포기하지 못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세월만 흘려보낸다.






  우리에서 키워지는 소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나 죽기 싫은데, 내가 도살장에 끌려가서 죽는 게 당연한가? 난 왜 태어났지? 난 밭을 갈 수 없는 건가? 등에 물건이라도 실어서 나를 수 없을까? 송아지를 낳을 수도 있고 그러면 더 많은 소가 생기니까 주인도 좋지 않을까?


  주인은 이런 생각을 하겠지. 논밭은 기계로 갈면 되고, 물건은 차에 실어 나르는게 더 편해, 송아지 낳으면 사료 값이 더 나간다. 넌 여기서 죽기 위해 태어난거야. 죽는게 당연한거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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