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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l 13. 2023

돈과 적성, 우리에 갇힌 소가 아니라 주인이 되면?

돈이 최고!!

  진로적성검사를 받고 나서 심리 검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교수님의 말도 그랬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에도 거부감이 생겼다. 한참 흥미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던 심리학도 재미 없어졌다. 그때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게 있었다.


  14년 장교 생활을 마치면서 전직교육을 받았는데, 과정 중에 경제교육이 있었다. 흔히 보험, 상조, 은행 같은 데서 하는 상품 가입 권유는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원리, 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국제정세나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투자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2시간 교육이 다 끝나고 나서 깔끔하고 무심한 듯 교육장을 떠나는 강사의 태도에 매력을 느꼈다.


  경제에 대해 더 듣고 싶었다. 진로적성검사에서는 한계점과  인정하기 싫은 내면의 약점을 직면했고, 답 없는 질문만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심리학, 철학도 그렇다. 근데 경제교육, 돈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바로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강사에게 추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려면 아내와 함께 와야 한다고 했다. 가족이 경제관념이 맞지 않으면 투자에 대한 자문이나 교육을 해도 실행이 안 된다는 명목이었다. 이것도 신뢰가 가는 듯했다. 그래서 삼성동 사무실로 아내와 함께 갔다.


  1시간 정도 교육을 듣고 다시 연락드리겠노라고 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아내가 그랬다.

  "저게 왜 관심이 가? 뻔한 얘기 같은데? 옷 잘 입고 시크해 보이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왠지 싼티나, 경제 교육받는 건 좋은데 기왕하려면 다른 데도 알아봐."

  6월 말 날씨인데도 무척 더웠고, 운전하는 내내 기운이 없었다.

  교육은 접고 독학으로 경제, 돈에 대한 공부를 했다. 가지고 있는 돈 약간으로 주식 투자도 시작했다. 금리, 환율, 경제동향, 각 금융사의 상품 구조와 굴리는 원리 등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이었다. 군 장교로 직장생활과 국가에 대한 헌신, 충성 같은 것들에만 빠져 살다가 이제야 사회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역하면서 진로도 전직이었던 군 관련 직종만 알아봤었다. 예비군 중대장, 군무원, 방위산업 관련 기업으로 입사를 준비했다. 군무원은 면접도 보러 다녔다. 근데 경제교육을 받고 나니, 이제는 우리 안에 갇혀 사는 소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본주의에서 직업은 자본가/투자자, 생산자, 전문직, 직장인 등 4가지로 구분된다고 했다. 유튜브, 블로그 같은 매체가 활성화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직장인,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결국 생산자를 통해 자본가/투자자가 돼야 한다고 설파했다. 홀랜드, MBTI, 버크만, 디스크 등 각종 심리검사와 진로 교육 보다 현실적이고 막지 못할 흐름인 듯했다.

  난 생산자를 거쳐 투자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방법을 찾았다. 생산자는 결국 사업을 해야 한다. 아내에게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업은 아무나 하냐? 군대에만 있었던 사람이, 직장 생활 좀 해보고 뭘 할지 말지 정해야지. 처음부터 사업하는 사람이 어딨냐?"

  대꾸할 수 없었다.

  "또 쓸데없이 주식 투자 같은 거 할 생각 하지 마!"

  신 내렸나. 아내는 혹시 모를 경고까지 덧붙였다.


  군 관련 일은 하기 싫었고 사업 경험을 간접적으로라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나이 마흔 다 된 경력도 없는 사람을 뽑질 않았다. 이력서를 계속 넣어도 기업에서는 감감무소식이고, 보험회사, 상조회사, 택배 배달원 같은 곳에서만 연락 왔다. 그중에 보험회사는 오지 말라는 데도 집 근처까지 찾아와서 감동의 성공스토리를 들려주면서 꼬셨다. 사람은 사고 싶지 않은 물건이나 갈 생각도 없었던 여행지라도 계속  접하면 사고 싶어지고 가고 싶어 진다. 이런 걸 세뇌라고 하나.


  일주일에 한 번씩 연락 오는 보험회사에 한 번만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하는 일인데 뭘 못하겠냐 싶었고, 어찌 보면 성과에 따른 보상이 확실한 영업직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찾아가서 설명을 들어보니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이라 일반 개인 고객을 상대하는 보험영업보다 재미있고 배울 점도 많다고 했다. 30분 정도 설명을 들었는데 사업하기 전에  중소기업의 생리를 경험하고 영업 방법도 배우고 일 한만큼 성과를 얻는 모든 측면이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슨 보험이야! 자기하고 안 어울려! 어머니하고는 상의해 봤어?"

  아내는 황당해하면서 반대했다. 고향에 계시던 어머니까지 올라오셔서 무슨 보험을 한다고 하냐며 설득했다. 결국 둘 다 설득에 실패했고, 난 보험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적성이나 성격보다는 돈을 선택했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선택이었기에 3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이었으니까 보험은 물론이고 세법(세금), 노동법(노무), 상속/증여세법, 부동산 투자, 기업 인증 등 공부도 많이 했다. 기업의 오너 일가들이 관심 가질만한 것이면 다 공부했다. 때로는 직원을 구해주는 일까지 했다. 그들과 만나기 위해 공단 지역에 가서 무작위로 방문하는 개척영업도 했고, 전화 영업, 우편물 영업, 각종 협회, 모임 등을 통한 영업도 했다. 그 결과 성과도 나름 있었다. 억대연봉까지는 못 갔지만 월 천만 원까지 벌기도 하고 회사 내에서 고성과자에게 주는 상도 받았다.


  그런데 3년 차가 되고 어느 날 탈이 났다.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


  반년 넘게 일을 못하고 나니 경제적으로는 처음보다 안 좋아졌다. 공허감이 몰려왔다.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선택해서 열심히 했고 돈도 벌었지만 가슴속이 비어갔고 반년만에 다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또 허무해졌다.


  돌이켜보면 돈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답이 아닌 것 같다. 돈에 대한 결핍, 자본주의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것을 잡기 위해 살았지만 돈은 다 없어졌다.


  이제는 뭘 추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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