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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l 18. 2023

눈은 떴는데 몸이 안 움직여.

멈춤.


  돈을 좇아 선택한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쯤 다른 제안을 하나 받았다.


  "나랑 같이 일 해보지 않을래? 내가 너 공장 책임자로 키워줄게. 만약 네가 원하면 사업체 하나 내줄 수도 있어."

  





  잘 알고 지내던 선배가 최근 개업했다. 인쇄업계에서 영업을 오랫동안 했는데, 기회가 생겨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란 게 다 그렇지만 초창기에 안정되기 전까지 온갖 것들이 다 속을 썩인다.


  선배가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옛 인연이 있어 자주 방문해서 도울거리를 찾았다. 내 일이 보험영업이긴 해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면서 수백 개 기업을 봐왔다. 대화 조금만 해봐도 뭐가 문제가 될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매출은 못 올려줘도 망하지 않게는 해줄 수 있다.




  선배네 회사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세 명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중에 선배의 주식 지분율이 높긴 했지만 온전한 의사결정을 하기에도 불안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것부터 조언했다. 사업할 때 동업은 잘 아는 사람하고 해도 나중에 문제 되기 일쑤다. 그런데 돈이 모자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공동 사업자가 됐으니 불 보듯 뻔하다.


  처음에는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네가 알아봐짜 얼마나 아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 달 정도 지나고 급하게 전화가 왔다. 같이 투자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했다. 결국 사업 시작하고 6개월도 안 돼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 문제를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고 실무까지 도와서 처리해 줬다.




  정리가 다 끝나자 선배가 나한테 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지분투자까지야 아니지만 직원으로 들어와서 사업을 같이 좀 키워보자고 했다. 대우는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보다 월등히 좋게 해 주겠다고 했고, 나중에 공장책임자 자리를 주든 사업체를 따로 내주든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안 그래도 지금 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받은 제안이다. 7월이라 바깥 날씨가 더워서였겠지만 카페 안이 더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 마! 갑자기 무슨 공장이야!"


  펄쩍 뛰면서 기겁했다. 계속 설득하자 말도 하기 싫다면서 문을 '쾅'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보험 영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조금 더 심하다.

   이번에도 아내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공장으로 출근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당연하게도 모든 게 불안정하다. 직원이 네 명인데, 그중에 한 명은 선배의 딸이다. 실제로 일하는 직원은 세 명이다.


  작업 물량은 영업 출신답게 안정적으로 가져왔다. 주로 치킨, 피자, 카페 등 프랜차이즈 회사의 포장지다. 근데 문제는 하루에 소화해야 할 물량이었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단가가 낮게 책정돼 있고 매출 대 비용을 맞춰서 수익을 내려면 하루 14~15시간 동안 기계를 돌려야 다.


  출퇴근 거리도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인데 작업계획이 그러니 주말, 휴일 없이 7시 출근해서 밤 8시, 9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주야간 교대조를 편성해서 돌리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기에는 인건비가 안 맞아서 할 수도 없다.


  게다가 공장장과 대표(선배) 사이에 마찰도 있다. 마찰의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근무 강도다.


  난 나이가 어린 축이고 인력도 부족해서 공장에서 현장직으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업무 강도와 인간관계, 둘 다 만만치 않았다. 3개월 만에 체중이 15kg이나 줄었다.


  결국 공장장은 그만뒀고 같이 일하던 직원 한 명도 공장장과 함께 그만뒀다. 처음 입사할 때부터 같이 일하러 온 팀이라고 한다. 인쇄 업계에서는 그렇게 팀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단다.


  새로운 공장장이 왔다. 이 사람은 팀이 없는 사람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인쇄소에서 일하다가 최근에는 자기 사업을 했단다. 나이도 60세 가까웠다. 급하게 사람을 구하다 보니 이런 거 저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덕분에 내 일은 훨씬 더 많아졌다. 선배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공장에 와서 현장일을 도왔다. 거래처가 안정적이라 당분간 영업은 안 해도 됐고 현장을 안정화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6개월 넘게 계속 됐다.


  인쇄공장 일이라는 게 앉았다 일어나는 일도 많고 벤젠, 잉크 등 화학약품들이 많다. 현장직이 하는 일도 웬만한 스케치북 서너 개 정도 크기의 원지백장, 이백 장씩 나르거나 일 톤정도 되는 팔레트를 작키로 옮기는 일이 주 업무다. 또 갯벌의 진흙보다 질퍽한 잉크를 손으로 퍼붓는 일, 떨어지면 발가락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쇠로 된 기계 부품을 옮기는 일 등 육체노동의 전형이다.




  그날도 물량이 많아서 야간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쇄판을 갈아 끼우느라 기계 위에서 앉았다가 일어서는 데 머리가 '핑' 돌았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순간 '휘청'하면서 기계 위에서 쓰러질 뻔했다. 체중이 줄어든 것을 포함해서 하루에 네댓 시간 자고 육체노동을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잠깐 종이 뭉치 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선배가 급하게 나한테 와서 전화 좀 받으라고 왜 전화를 안 받냐고 했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했는데 형수한테 전화를 받았단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서 가족 간에도 다 친했고 연락도 주고받는 사이였다. 아내는 나를 기다리다가 12시가  다 돼가는데 집에도 안 오고 전화도 안 받으니 답답해서 형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날따라 기계가 말썽이라 골머리 썩고 있었고 전화를 받을 상황도 아니었는데 일이 그리 된 것이다.  선배는 나 때문에 형수한테 한 소리 들었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작업을 중단하고 퇴근했다.




  다음 날, 평소처럼 5시 반 알람 소리에 깨서 눈을 떴다. 근데 몸이 안 움직인다. 손가락도 꼼짝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슴은 지금 막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난 것처럼 숨이 차올랐고,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온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아내가 깜짝 놀라서 겨우 날 부축하고 근처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 간호사 등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달라붙었다. 한바탕 소동이 나고 누군가가 아내에게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난 그제야 정신이 좀 들어서 주변을 살폈다. 응급실 천장과 중환자 리스트가 있는 전광판에 내 이름이 보였다.


  내가 공장에 가겠다고 했을 때 아내가 기겁했던 이유가 이거였을까. 만감이 교차한다.




  잠시 후 의사 한 명이 와서 몸이 좀 어떠냐고 묻는다. 정신이 좀 들어서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 검사 결과는 이상 없어요.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거든요. 근데 여긴 응급실이라 검사가 제한적입니다. 지금 상태를 봐서는 많이 괜찮아지신 것 같은데 혹시나 불안하시면 예약 잡고 심장외과나 신경외과로 가셔서 정밀검사해 보세요. 혹시 모르니까 응급약은 처방해 드릴 테니까 밑에서 약 받아가시고요. 링거 다 맞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협심증 약을 받았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다급하게 출근 가능하냐고 물었다. 현장 직원이라고는 두 명 밖에 없고 선배는 기계 조작을 할 줄 모른다. 내가 없으면 기계를 부장(공장장)님이 혼자 돌려야 한다. 몸이 좀 괜찮아져서 오후에 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미쳤냐고 했지만 회사의 사정을 생각하면 불편해서 안 갈 수가 없다.


  오후에 출근해서 못한 일을 야간까지 해서 마무리했다. 밤 9시에 퇴근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출근해서 퇴사 통보했다. 응급실까지 갔다 와서 못다 한 물량을 다 쳐내고 있는데 선배와 선배 딸은 오후 6시에 칼퇴근을 했다. 갓난쟁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인데. 응급실 갔다가 출근한 나를 두고.


  한 달 뒤 그 해 12월 31일. 퇴사했다. 눈이 왔다. 도로가에 쌓인 눈은 유난히 시커멓고 지저분해 보인다.


  퇴사하고 나서도 응급실을 한 번 더 갔고 심장 전문 병원에도 두 번 갔다. 한의원에도 가봤다. 아무 이상 없다.


  아내가 정신과를 한 번 가보자고 한다. 아무래도 겁이 난다. 고민 고민하다가 집에서 좀 떨어진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나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뭘 잘 못한 거지?




  모든 일을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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