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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Mar 25. 2024

엄마도 내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니 이야기

엄마가 살고 있는 집의 등기가 올바로 처리됐단다. 그 집은 내가 대학에 다닐 때쯤, 그러니까 이십여 년 전에 어렵게 자가로 마련한 두 동짜리 소형 아파트 단지에 있는 집이다.


'맨션'이라 불리는 오래된 아파트였고 그나마 5층까지 밖에 연결 안 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일 년 정도 6층을 걸어 올라 다녔다. 그걸 작년에 새로 설치했다. 이왕 설치한 김에 한층 더 올려서 6층까지 해달라고 했더니 우리 아파트가 속한 두 번째 동 이름이 달라서 이번에는 못한다고 했단다. 시청에는 "00 아파트 2동", 부동산 등기에는 "00 맨션 B동"이라고 표기돼 있단다. 등기를 바꾸든 시청에 신고된 이름을 바꾸면 될 것을, 입주자 대표가 시청에서 공무원 생활하다가 퇴직한 어르신이라는 데도 그건 주민들 동의를 다 받아야 하는 건데, 자기는 못한다고 발뺌을 했단다.


엄마는 집집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다 만났다. 알고 보니 등기 문제 때문인지 입주자의 상당수는 10년 이상 오래된 세입자들이 많았고 집주인들은 팔고 싶기만 해서 동의 서명하는 것도 귀찮아했다. 엄마는 일 년여에 걸쳐서 사람들을 쫓아다녀서 결국 등기의 이름을 바꿨다. 세입자들은 그제야 주인들한테 시원하게 집을 매입했단다.


행정적 실수는 바로잡았지만 연장시키고 싶었던 엘리베이터는 결국 기존 그대로 5층에서 멈췄다. 다만 뜻하지 않게 알게 된 행정착오로 주택연금 받는 게 문제 될까 걱정했던 부분은 해결됐다.  


엄마는 항상 이렇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혼자 살고 계신 집에 오랜만에 내려와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마음이 놓인다.





"성민아, 저기 엄마 와 있어."

학교 갔다가 야간자습 끝나고 집에 오는데 이모를 만났다. 평소 같으면 반찬 몇 가지 가져다 냉장고 채워놓고 청소 좀 해주고 가셨을 텐데, 오늘은 늦게까지 남아계셨다. 게다가 모르는 아주머니 한 명을 데리고 오셨다.


엄마는 옛날에 돈 많이 벌어와서 맛있는 거 사주겠다며 갔는데, 멀리 보이는 실루엣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라면 그립고 보고 싶고 그렇게 기다렸던 사람인데, 이 낯 선 느낌은 뭘까? 떨떨한 나와 달리 동생은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 콧물 흘리면서 난리가 났다.


그때가 내가 중3 겨울방학쯤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아침, 저녁 자율 학습에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왔다. 대학을 가면서 완전히  집을 나와서 군생활하고 결혼할 때까지 쭉 떨어져 살았다.






엄마가 태어난 곳은 고흥 바닷가 시골마을의 초가집이다. 매년 지붕에 볏짚을 갈아줘야 했고 벽은 황토인지, 진흙인지 모를 흙으로 보수를 해가면서 살았다. 외할아버지는 하체가 불편해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고 외할머니가 집안 식구들을 챙겼다. 엄마는 아래로 동생이 셋이었고, 셋째 동생은 아들이었다. 나에게 반찬을 가져다줬던 둘째 이모와 엄마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를 도와 일을 해야 했고, 중학교도 못 다니고 공장, 식당 같은 곳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광주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외할머니가 불렀다. 벌교 시장의 친한 사람이 중매를 서기로 했다며 결혼을 하라고 했다. 엄마는 21살에 결혼을 했다. 그렇게 결혼해서 밤골마을에 와서 살았다.


남편은 잘 생겼고 중국집 주방장 기술도 있어서 돈도 잘 벌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몇 달 일 하다가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서 술에 취해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돈 없으면 어렵게 둔 논이며 밭이며 소를 다 팔아다가 써버렸다.

하도 답답해서 아이들을 처가에 잠깐 맡겨두고 돈을 벌러 갔더니, 일주일도 안돼서 시어머니한테 연락이 왔다. 어디 남의 귀한 장손을 남의 집에 맡겨두냐며,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자식은 자기가 키워야지 남한테 맡기면 못쓴다며 집으로 들러오라고 호통을 치셨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발이 묶이니 아이 둘 데리고 쫄딱 굶어 죽게 생긴 것이다.

어쩔 없이 시부모님한테도 아이들한테도 거짓말하집을 나갔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서울로 가서 공장, 식당, 보험판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어쩌다 보니 10여 년이 지나가버렸다.


둘째 동생(이모)한테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겠다며 빨리 와서 아이들 챙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아와 보니 아들은 고등학교를 가야 되는데 등록금 28만 원이 없어서 중국집 배달 알바를 알아보고 있었다. 딸은 옷을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저분하게 입고 다니고 있었고, 막 생리를 시작했는데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학교 담임선생님한테 얻어서 쓰기 시작했단다. 다시 앞이 캄캄해졌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집에 빨리 돌아와야 했지만, 맨날 술만 처먹고 다니는 전남편과 한 집에서 살기가 겁났다. 일단 몇 개월만 있으면서 아이들을 챙겼다. 아들 고등학교도 등록하고, 딸 생리대도 충분히 사주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알려줬다. 옷, 학용품, 도시락 등 필요한 것들도 다시 사서 깨끗하게 해 줬다. 이제 남은 것은 전남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어서 아들과 딸에게 엄마 따라서 가자고 해봤다. 아들이 못 가겠단다. 갈려면 딸만 데리고 가란다. 자기는 알아서 하겠다고.

어쩔 수 없이 전 남편에게 술을 안 먹겠다는 각서를 받고 다시 살기로 했다. 직장이 없으니 자그만 가건물로 된 공간을 빌려서 중국집도 열었다. 일 년 정도 안정적으로 돼 가는 듯했다. 근데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남편이 술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으로 열었던 중국집도 폐업했다.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붕어빵 기계와 오뎅 솥을 사서 장사를 시작했다.


남편은 결국 다시 이혼해서 갈라섰지만, 아이들은 잘 커줬다. 아들은 군 장교가 돼서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이고, 딸은 공부 잘해서 국립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아왔으니 자식들한테 줄 재산은 없지만 아들, 딸 모두 결혼해서 자식들 낳고 잘 살아가는 듯했다.


어느 마흔 살이 넘은 아들이 실직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게다가 정신과 약을 먹는단다. 며느리에게도 미안하고 아들한테도 미안하고 딸은 괜찮은지 걱정도 된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엄마가.


"힘 내고, 가장인데 어떡하겠냐. 빨리 일어나야지."

아들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프다는 아이한테 책임감을 더 실어버렸다.


한스럽게 자책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나도 내 엄마가 원망스럽다.

지지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고, 사춘기 어린 나이부터 공장에서 일을   수밖에 없었다. 꽃다운 스무 살을 넘어 결혼했지만 남편집도 가난해서 내 자식들도 같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10여 년이 지나고 서른 후반에 다시 아이들 키우려고 재혼했는데, 그놈의 술 때문에 다시 이혼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제대로 된 직장 구해서 우리 때보다는 잘 사는 것 같았다. 난 여전히 혼자지만.

근데 아들놈이 아프다. 나 때문인 것 같다. 근데 어쩌겠나. 나라도 노후에 걱정 안 끼치고 잘 살다가 죽어줘야 된다. 그래야 아들이 고 나서라도 잘 살 수 있다.


요양원에 모셔 둔 90세 가까이 된 엄마는 혈색이 점점 좋아진다. 친구들과 놀다가 웃기도 하고 밥투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 나 엄마를 많이 원망했어. 아무리 힘들었다고 해도, 우릴 그렇게 오랫동안 버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네가 아프다고 하니 엄마도 내 엄마가 원망스럽더라."

엄마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듯했다.


어느 정도 치유가 되고 난 후에 이런 말을 들어서 다행이었다. 아들이 엄마한테 바라는 것은 무조건적 지지와 공감이다. 엄마니까. 그런데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목구멍에 뭔가가 걸려서 빠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엄마는 살기 위해 어린 나와 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가는 선택을 했듯이, 항상 이렇게 현실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엄마를 혼자 두고 나와 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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