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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Apr 21. 2024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까?

글을 연재한 이유


  매주 일요일 저녁이 되면 똑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살고 있는 걸까? 한 때는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거침없이 삶을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삶이 왜 이리 고단하고 비루하게 느껴질까? 내 꿈은 세탁기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꾸깃꾸깃해져 있다.


  한 공장에서 청소를 하고 계신 칠십 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어르신을 만났다. 영업하느라 자주 왔다 갔다 하던 회사라 잘 보이려고 꼬박꼬박 인사드렸더니 친해졌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시원한 물이나 한 잔 마시고 가라며 붙잡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도 한 때 공장에서 기계 돌리면서 열심히 일해서 관리자까지 했고, 그걸로 조그만 사업도 했어. 나이 육십이 되고 어느 정도 살만해지니까 집사람이 먼저 하늘로 가버리더라고. 몇 개월 안 돼서 아들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어. 그러니 마흔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집에서 폐인이 돼 있어요. 당신도 영업하느라 진땀깨나 빼고 돌아다니겠지만,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청소일 하고 있는 거에 비하면 고상한 거야. 이런 말 하는 내 인생도 참......"

  출입 좀 편하게 해 볼 셈에 인사 좀 했더니, 별 영양가 없는 늙은이가 시간만 잡아먹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마지막 말이 자꾸 머리 속을 멤돈다.

  "인생도 참......"

  



  


  우연히 어머니와 식사를 하다가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도 시집와서 처음에 시골에서 살 때 들었던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알고 있다면, 증조할아버지가 전라감사 직책을 맡고 있었더라는 말을 했다. 작은 아버지들이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어 만날 때마다 조상묘를 한 군데로 모아야 하네,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하네 하는 이야기들이 다 그것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우리가 자랄 때는 매일 술만 먹고 다니고 돈도 한 달 벌고 말고 한 달 벌고 말고 그랬지만 젊었을 때는 마을에서 잘 생기고 착실한 청년으로 유명했었단다. 어릴 때는 집안이 가난하니 한두 해씩 '남의 집 살이'를 했고, 집에 돌아올 때 논이나 밭을 하나씩 받아와서 우리 집안이 먹고살았단다. 작은 아버지들도 그 덕에 국민학교, 중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 기억에도 아버지는 시골에 있을 때는 동네 궂은일은 거의 도맡아서 했고, 도시에 살 때도 손이 항상 거칠어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갔다 올 때면 니베아크림을 사다 드렸었다.


  난 내가 군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장교가 된 후에는 망한 집안의 자랑으로 우뚝 서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그 덕에 10년 넘는 군 생활 하는 동안 가족이 아닌 부대원과 함께 한다는 명목으로 명절날 집에 내려간 것은 딱 두 번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고, 살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후배 한 명과 믹스커피에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과 약을 먹은 지 수년이 됐다고 했다. 다음 해에 내가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치료 중인 사람이 많았다. 책에서나 봤던 말이 사실이었다. 요즘 우울증 약은 감기약 같은 거라고.


  약 처방을 받고 나서 원망을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도대체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지 궁금해졌다. 어디서부터 못된 것인지 찾아보다 보니 증조할아버지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면 알겠지만, 누구도 대충대충 살아간 사람은 없다. 나도 그랬고, 내가 그렇게 원망했던 부모님들도, 조부모님들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고,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만약 똑같은 조건에서 다시 살아보라고 해도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 망한 게 누구 때문인가?'

  지금껏 누구 때문인가를 찾았다. 찾다 보니 전제가 잘 못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도 잘 못 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내 인생 망한 게'아니다. 불행이 넘치는 듯 느껴지는 게 망한 인생이라 느꼈을 뿐이다. 인간에게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한다.


  매주 일요일 밤만 되면 떠오르는 내일에 대한 걱정과 인생에 대한 허망함, 답답함 같은 것들이 없다면.

  한 주가 지나가다가 수요일 저녁쯤이 되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애절한 마음.

  그런 게 없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들은 인생이 망해가는,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고, 하나의 과정이다. 희로애락을 거쳐가며 스토리가 풍성해지는 영화처럼, 불행도 내 인생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일부이다. 행복을 위해 살기보다 불행도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임, 그게 어렵지만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모순 / 양귀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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