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 말고 학교나 회사 경비로 좀 해줘요

알아요. 완벽한 일자리는 없다는 걸... 하지만,

by 이서명

나는 IT개발자였다. 20년 넘게 같은 분야에서 일해왔고, 내가 만든 시스템이 많은 회사에서 사용됐다. 하지만 기술은 빠르게 변했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하더니, 결국 내가 개발하던 시스템은 유지보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마침 내가 정년이 되던 시기였고, 그렇게 내 일자리도 사라졌다.


처음엔 다시 IT 관련 일을 찾아보려고 했다. 내가 해온 일이 있으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채용 공고를 봐도 나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50대 중반부터 불안하긴 했지만, 정말로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건 60세가 되면서였다.


지인의 소개로 취업센터를 찾았다. 상담사는 내 경력을 듣더니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IT 업계는 40대만 넘어도 자리 잡기 힘듭니다. 그나마 경비직 같은 보안 쪽 일이 적합할 것 같아요.”

‘경비라니…’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무 경비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파트 경비 말고 학교나 회사 경비로 좀 알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파트 경비는 정말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을 지키고 출입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민원, 갑질, 과도한 요구까지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경비원들에게 청소, 택배 보관 같은 일까지 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카메라가 곳곳에 있어 계속 감시당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학교나 회사 경비는 상대적으로 편하다던데요.”

상담사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말을 덧붙였다.

“그런 자리들은 경쟁이 심해서 경력이 없으면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아파트 경비는 그나마 자리도 많고, 연령 제한도 덜해요.”

나는 고집을 부렸다. ‘어디든 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에서 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우연한 기회에 회사 경비직을 구할 수 있었다. 급여도 괜찮았고, 근무 조건도 만족스러웠다. ‘그래, 이 정도면 버틸 만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나는 해고됐다.

이유는 황당했다. 회사 대표와 관리이사가 알력 다툼을 벌이는데, 엉뚱하게도 불똥이 나에게 튀었다. 대표 쪽 사람으로 분류된 나는 관리이사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잘려 나갔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저 성실히 출퇴근하며 경비 업무를 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싸움에 내가 휘말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시 취업센터를 찾았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든 장단점이 있어요. 회사 경비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아파트 경비라고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중요해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어디든 완벽한 일자리는 없다는 걸.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예전의 IT개발자가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이 무엇이든,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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