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 일자리 없어요?

평생 해온 일이 생산직인데, 경비요? 청소요?

by 이서명

62세. 아직 일할 힘도 있고, 의욕도 있다. 평생을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일을 손에서 놓는다는 건 내 삶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행히 건강은 괜찮은 편이었다. 몇 달 쉬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35년을 일했다. 라인에서 시작해서 반장까지 올라갔다. 조립도, 검사도, 기계 세팅도 다 해봤다. 웬만한 기계는 손만 대면 알 수 있었다. 일손이 모자랄 때는 공장장이 직접 나한테 부탁할 정도로 인정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다시 일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공장은 당연히 나를 반길 줄 알았다.

“죄송합니다. 나이가 좀 많으시네요.”

지원할 때마다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과거에는 공장이 사람 구하기 힘들어 난리였다.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오히려 큰소리를 쳤지만 지금은 공장이 사람을 가려 뽑는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찾아보자, 하면 되겠지. 오래 다녔던 공장에 연락을 해봤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던 곳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이제 기계가 좋아서 사람 많이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젊은 직원들도 힘들다고 못 버티는 일인데, 형님은 더 어려우실 거예요.”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기계를 다루는 것도 사람이었다. 버튼을 누르고, 조립하고, 검사하는 손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계가 알아서 다 한다. 몇 년 새 이렇게까지 바뀌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모든 공장이 그런 건 아닐 테지. 다른 곳을 알아봤다. 몇 군데 면접을 보러 갔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곳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공장이었다. 임금이 낮고, 일이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생산직이었다. 자신 있게 말했다.

“이런 일, 30년 넘게 했습니다.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대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서요. 젊고 힘 좋은 사람들도 일하다가 힘들다고 나가는 곳이라… 선생님이 버티실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나보고 힘이 없을 거라고? 아직 팔뚝에 힘줄이 살아있다. 그 대표는 그런 걸 보지도 않았다. 그냥 나이를 보고 판단하는 거다. 결국 거기서도 떨어졌다.

몇 군데 더 지원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공장들은 사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나이 든 사람을 잘 뽑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실수가 잦아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한 회사의 임원은 나에게 대놓고 말했다.

“솔직히 60 넘으신 분들은 조금만 일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두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몸이 안 좋아지시면 산재라도 날까 봐… 부담이 좀 됩니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일할 수 있는 의욕이 넘쳐도, 몸이 멀쩡해도, 나를 ‘위험 요소’로 보고 있었다.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

결국 지쳐갔다. 더 도전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포기해야 할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나는 아직 일을 하고 싶은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게 억울했다.


한 날, 지인에게 연락이 해왔다.

“형님, 시설관리 일 해볼 생각 없어요?”

후배는 내가 공장에서 기계 다루던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설관리라면 완전히 낯선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급여도 괜찮고, 무엇보다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했다. 고민 끝에 지원했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생산직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하게 됐다. 익숙한 일이 아니라 배워야 할 것도 많았지만, 다시 출근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씁쓸한 마음은 남아 있다. 원했던 일자리는 아니지만, 결국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내가 평생을 바친 생산직도, 이제는 젊은 사람들과 기계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나이’ 하나만으로 모든 문이 닫히는 세상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길을 끝까지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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