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 갈무리, 두 번째
기억을 더듬는 여행기, 오늘은 터키로 찾아간다. 2013년 1월 이집트로 건너가기 전에 잠시 터키에 들러 교수님들을 뵙고, 함께 이스탄불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훑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교수님들보다 하루 먼저 이스탄불에 도착한 나는 귤하네와 술탄아흐멧 중간에 있는 동양 호텔에 짐을 풀고 곧장 동네 탐방에 나섰다.
#이스탄불의 첫인상
비에 젖은 이스탄불의 거리가 낯설다. 이곳의 사람들은 내 낯이 익나 보다. 지나는 이들의 구 할은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걸음을 옮긴다. 간혹 가다 어린 친구들은 나에게 “꾸리”냐고 묻는다. 그래, 난 꾸리다. 한국에서 왔다. 이 말을 들은 이들은 매우 반갑게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넨다. 여전히 터키의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혹자는 길을 안내해줄까 묻고, 혹자는 묵을 곳이 필요한가 묻는다. 신 교수님께서 한국 여권만 잘 간수하고 있으면 터키 어딜 가도 굶어 죽지 않으리라 하셨던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하기야 소피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지하 저수지 입구 부근에서 3, 4성급 호텔들을 여럿 찾을 수 있다. 매표소 너머로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식당들이 몰려있었다. 가만 보아도 타지에서 이곳을 찾은 이들이 모여 한적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예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을 수용하던 곳인지 호객하는 이들도 더러 보인다. 이들은 짧은 영어로, 혹은 스페인어로, 아까의 터키인들과는 조금 다른 속내로 다가와 가벼운 말을 한, 두 마디 날리고 사라져 갔다. 한번 가볍게 웃고 걸음을 옮긴다.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본다. 귤하네 역에서 술탄아흐멧 역 방향으로 약 5분가량을 걸었다. 비가 조금은 덜 개인 오후의 이스탄불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어스름 해가 넘어가다 구름에 번져가는 풍경이 새롭다. 하늘이 가까이 있는 이곳이 비로소 아시아와 유럽의 접점, 이스탄불임을 실감한다.
#하기야 소피아를 만나다.
술탄아흐멧 역 왼편으로 아야 소피아가 보인다. 내일 교수님들과 함께 둘러볼 예정이므로 오늘은 그냥 밖에서 구경하고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기로 하였다.
내부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억 겹의 역사를 접하기도 전에 아름다운 외관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뒤로 한다. 하나의 앵글에 하기야 소피아를 오롯이 담기가 쉽지 않다. 곰을 닮은 어느 총각의 모호한 뒷걸음질은 이내 그를 깊은 감동으로 이끌었다. 처음 구도를 잡았던 곳에서 열 걸음도 넘게 뒷걸음질을 치고서야 겨우 그럴싸하게 이스탄불의 상징을 오롯이 담아내었다. 4세기에 지어져 그간 겪어온 숱한 아픔은 온 데 간데없다. 걸음을 더 할수록, 각도를 달리 할수록 하기야 소피아의 자태가 면면히 드러났다. 마침 하늘이 열려 하기야 소피아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뒷걸음질을 치다 우연히 신구 세계의 접점을 꽤 그럴싸하게 담아냈다.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그대로 뒤로 돌아서면 바로 블루 모스크가 보인다. 뾰족이 선 첨탑의 날카로움만큼이나 내부가 화려하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블루 모스크의 내부로 들어가 보질 못하였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공원의 전경을 살폈다.
어느 화가에게로 눈이 닿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의 그림을 살피기를 대략 30분,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다들 호기심을 보이다가 이내 가던 걸음을 재촉함에도 그는 펜 사위를 이어나갔다. 진정 그림이 좋아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서 진정 자유인의 향기가 묻어났다. 자유로운 영혼은 자유로운 이들을 알아보는 법이다.
먼발치에서 아야 소피아를 다시 한 번 담고 걸음을 돌렸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이스탄불 탐방이 시작된다. 그럼 첫날의 기억 갈무리는 여기까지.
#이스탄불
#하기야소피아
#술탄아흐멧
P.S. "꽃보다 누나"를 보다 한참 혀를 끌끌 찼었는데 이제야 이유가 떠올랐다. 이승기가 첫날 헤맸던 곳이 바로 이곳, 시르케지 – 귤하네 – 술탄아흐멧 라인이다. 어쨌거나, 방송을 보고 남는 느낌은 여느 한국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승기가 마냥 부러웠다. 기회만 돌아오면 내가 훨씬 잘들 모실 수 있다는, 뭐, 그런 자신감 한 번 어필해보고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