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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lip Jan 15. 2024

무섬마을 나들이

육지의 섬, 경북 영주 무섬마을


 분주한 삶 속에서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잃어간다 느낄 때마다 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지난 토요일의 짧은 여정은 한국의 조용한 마을, 영주에 위치한 무섬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시작하였다. 내 고향 동네, 예천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 동으로 동으로 향하다보면,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에 이르게 된다. 예천과 영주의 경계를 지나 문수면을 돌아흐르는 내성천의 건너편으로,물 위에 떠 있는 연꽃 모양의 마을, 무섬마을의 풍광이 펼쳐진다.



 ’수도리(水島里)‘, 무섬마을의 이름은 물 속의 섬과 같다 하여 수도리라 부르던 과거의 명명으로부터 비롯하였다. 무섬마을은 삼면이 내성천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로, 맑고 잔잔한 천이 태극 모양으로 산을 안고 휘감아 돌아 절경을 이룬다. 겨울이면 내성천의 넓은 모래톱이 드러나지만, 여름이 되면 천의 폭이 수십 미터가 넘어간다. 역사적으로 이 마을은 외나무 다리가 유일한 입구였던 한적한 곳이었다. 13대를 이어 350년 넘게 무섬마을을 지켜온 분들이 “외나무다리로 꽃가마 타고 시집와선, 죽으면 그 다리로 상여를 타고 나갔다”이를 만큼, 외나무다리는 그야 말로 무섬 사람들의 시작과 끝을 투영하는 삶의 메타포와 같은 존재이다.



 이 육지의 작은 섬마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조선 중기 17세기 중반에 입향한 시조인 박수(朴燧)와 김대(金臺)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이 마을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무섬마을은 일제 강점기 동안 항일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아도서숙이 위치한 곳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을 자체로도 전통적인 한국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폭의 풍경화와 같은 곳이다. 작은 한옥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있는 무섬으로 들어서는 순간 17세기로부터 그리 변하지 않은 풍광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입향한 선비들이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했던,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반상의 경계를 중히 두지 않고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였던, 시대를 관통하는 내 선조들의 가치관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함과 평온함에서 영감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무섬마을은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뿌리와의 연결감, 그를 통해 생채기난 자아를 회복하고자 하는 나에게도 무섬의 정취는 그 자체로도 위안이 되었다. 깊이 있는 통찰은 고요한 가운데 짧지 않은 삶의 맥락을 파악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나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 감내할 거리가 많은 어제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일, 그리고 오늘의 나를 오롯이 살펴 내일의 나에게 짧은 전언을 남기는 일, 본을 찾는 여행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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