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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서른.

by 박성수

나에겐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나이 서른이 됐다.

20대엔 서른이 된다는 게 무섭고 두려웠다. 서른이 된다고 무언가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 이루어 놔야 하고, 무언가 깨달아야 하며,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 안정적인 인생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이루어 놓은 건 많지 않고,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지도 않다.

해보고 싶었던 유럽여행도 20대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년을 기약하다 보니 서른이 됐다.

이렇게 뒤를 돌아보며 아쉬운 것들을 찾으니 정말 아쉬운 선택들도 많았고, 용기 내지 못했음이 너무나 아쉽다.


하지만 모든 게 안 좋은 것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


아쉬운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그 인연은 나에게 큰 재산으로 남아 있다.

용기 내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그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었고, 가장 아끼는 친구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기에 그 시간들이 값진 추억들로 남아 있다.

물론 더 좋은 선택을 했다면 축구선수로서 더 좋은 위치에 가 있을 수 있었고, 용기를 냄으로 더 많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지 못했음에도 많은 것을 얻게 됐다.


살아가다 보면 많은 일들을 겪게 되는데 그 많은 일들을 이제는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을 볼 때도 장점이 단점이 될 수 있고,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듯,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이 안 좋게만 보이던 게 나중에 보면 좋았던 일이 될 수 있고 좋은 일인 줄 알았던 일이 오히려 아쉬운 결말을 가져오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겠다 생각을 하지만 쉬이 되진 않는다.

그래서인가 노홍철 씨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분의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


서른이 되며 한 가지 확실하게 느끼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나’를 더 잘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처음 스무 살이 됐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건 뭔지, 나의 가치관이 뭔지 잘 알지 못했다. 나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시끄러운 파티 같은 것보단 조용히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걸 더 좋아한다. 가족의 안정감, 친구들의 편안함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를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많이 놀아도 보고, 방황도 하고, 이런저런 상황에 사건사고를 겪으며 조금씩 알아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 느낀다. 아직 나도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


온전한 나를 위해.


축구밖에 몰랐던 나를 위해.


항상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나를 더 위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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