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톤베리, 꿈의 페스티벌에 가다 #1

글래스톤베리 2017 리뷰

by 서성욱

모든 페스티벌 고어들의 로망인 글래스톤베리는 20만명의 관객, 축구장 800배 넓이의 부지, 100개가 넘는 스테이지가 어우러지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규모의 행사이다. 본 행사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이지만, 전야제와 전야제의 전야제가 있어서 사실상 수요일부터 5일간 열리는 축제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나오는 아티스트들은 너무 많아서 한 포스터에 다 담을 수도 없다. 관객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에게도 글래스톤베리에서 공연하는 것은 굉장한 영예이고, 여기에 출연한 밴드면 비록 인지도가 높지 않더라도 다른 웬만한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페스티벌이다.(*직접 들은 얘기) 올해는 전체적으로 페스티벌들의 라인업의 깊이가 평년에 비해 얕아졌다는 평이 많은데, 글라스토도 기대에 비해서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이름값 정도는 선방한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글라스토는 라인업이 좋고 나쁘고는 별 상관이 없는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glastonbury 2017.png 2017 글라스토 라인업. 다만 공연 시간 직전까지도 공개되지 않는 아티스트들도 여럿 있다.


런던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는 아침 6:30이었고 짐도 전날 밤부터 싸기 시작했기에, 밤을 거의 지새우듯 하면서 새벽 3시 40분에 방을 나섰다. 배낭을 맨 채 공항으로 향하며 혹시나 글라스토에 같이 가는 다른 독일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간에 무사히 런던에 도착했고 입국 심사장으로 향했다. 영국에서의 체류지를 적으라는 입국 심사카드에 "Glastonbury Festival, Worthy Farm"을 적고 나니 그제야 좀 실감이 나고 설레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하루 관광을 마치고 사우스햄튼으로 넘어와 예매해둔 코치 패키지에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왜 하필 사우스햄튼이냐면, 촌각을 다투는 예매 과정에서 출발 도시를 어디로 할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보니 심지어 스코틀랜드까지 올라갔다가 가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 글라스토에 가는게 중요하지 어디 들렀다 가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물론 다음번에 하면 좀 볼거리 많은 도시에서 출발하는 코치로 예매할거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정말 듣던대로 자기 몸만한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버스에 탄다. 나는 고작 20L 배낭에 보조가방, 그리고 급하게 Cider 1상자와 위스키만 구매해서 들고 있었는데 나처럼 널널하게 들고 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트롤리(카트)에 맥주 몇박스를 쌓아서 끌고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IMG_1494.jpg 다리 쯤 다쳐도 싸매면 되니까!


그리고 드디어 글래스톤베리로 향하는 버스 안. 출발하기 전에 이름을 부르며 글래스톤베리 티켓들을 나눠주는데 버스 기사도 승객들도 다들 벌써부터 들떠있다. 꿈의 페스티벌에 간다는 건 영국인들에게도 충분히 설레는 일인가 보다. 나도 옆자리 앉은 영국인과 신나게 얘기하면서 왔는데 동양인이 심지어 사우스햄튼에서 글래스톤베리 코치를 타니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내가 Ride와 Richard Ashcroft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very nice taste라고 신기해했다.

신나는 티켓 나눠주는 시간


어쨌든 나도 꿈에 그리던 티켓을 받았다!

모자이크티켓.jpg 안타깝게도 이 티켓은 워디뷰 입장할 때 회수해 간다.. 티켓을 사수하고 싶으면 일반 텐트로


두어시간쯤 달렸을 까. 전날 잠을 못자서 버스에서 자고 있었던 나는 갑작스러운 박수와 환호성 소리에 잠에서 깼다. 희미하게 텐트촌과 스테이지들이 드러나 있는 저 곳이 바로 페스티벌이 열리는 Worthy Farm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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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서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때는 영국 전체적으로 이상고온이 있던 시기였고, 그런 뙤약볕 아래에서 줄을 기다리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게다가 최근 영국에서 연이어 일어난 테러 때문에 security check가 강화되어 입장하는 데 더더욱 오래 걸렸다. 특히 나는 워디뷰(Worthy View)라고 하는 미리 설치된 텐트를 이용할 수 있는 텐트촌으로 예약을 했는데, 그곳은 페스티벌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입장하고 나서도 또 다른 셔틀을 기다려야 했다. 그 곳까지 걸어가는 데는 1시간이 걸리지만 셔틀을 기다리는 건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심지어 셔틀에서 내리고 난 다음에도 워디뷰 입장을 위한 security check에 또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명성대로 들어가는 것부터 개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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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입구. 저기 뒤에 보이면 텐트들이 많은데, 아예 어제 밤에 와서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일반 텐트의 경우 미리 지정된 지역이 없기 때문에 먼저 오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고, 그래서 명당은 첫날 오전 10시 이전에 다 나간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옆자리 영국인도 자기 친구들은 어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IMG_1529.jpg 마침내 받은 글래스톤베리 2017 팔찌

끝없는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팔찌도 교환하고, 마침내 텐트촌에 입성했다. 페스티벌 부지에 도착한게 오후 3시 30분이었는데 여기에 들어올 때는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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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디뷰에 들어와 내 텐트를 찾으러 가는 길. 이 곳에는 저런 형형색색의 텐트가 몇천개가 이어져 있고, 또 여기 안에는 온수 샤워시설과 상대적으로 깨끗한(?) 화장실 등도 있어 그나마 페스티벌을 쾌적하게 즐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언젠가 소개할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글라스토의 화장실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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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다시 워디뷰 입구로 나와 바라본 절경. 페스티벌 부지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왜 이름이 Worthy View인지 단번에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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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더 내려오면 한 눈에 다 담기지도 않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내가 진짜 글래스톤베리에 있다니! 부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숭고미를 느낄 수가 있다. 너무 예뻐서 여기서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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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을 둘러보면 다른 쪽에는 스톤 서클이 있다. 중앙에 보면 커다란 돌이 원 모양으로 있는데 보통 여기서 모닥불을 피워놓으며 밤을 새고 일출을 구경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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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티피 필드. 인디언 천막같이 생긴 이곳도 선택할 수 있는 숙소 옵션 중 하나이다. 다음번에 온다면 여기도 한번 이용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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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이니까 일단 무작정 걸어보기로 한다. 한 20분을 걸으니 스테이지가 하나 둘 씩 나온다. 아직 첫 날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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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하나 둘 켜지니 더욱 예쁘다. 새벽 내내 이런 분위기가 밤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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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에서만 보던 피라미드 스테이지도 찾아가봤다. 아직 열심히 무대가 올라가고 있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크지 않아 신기했다.


저 멀리서는 폭죽도 터트리고 있다. 첫 날 밤에는 불사조 모양의 목조 모형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한다고 하던데 아쉽게도 발견하지 못했다.




10년짜리 버킷리스트가 갑자기 실현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고생해서, 첫 날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글라스토의 압도적인 규모와 분위기에 놀라서 그냥 이렇게 얼떨떨하게 첫날을 보냈다. 처음 마주하는 광경에 설레고 놀라느라 사진도 많이 못 찍은 것 같다. 지산/펜타/안산/ETP/슈퍼소닉, 국내 페스티벌이긴 해도 그동안 10번 넘게 가본 경험이 있기에 달라봤자 규모의 차이정도겠거니 생각했던 나에게 글래스톤베리는 정말로 문화충격이었다. 단순한 음악 페스티벌이라기보다 그냥 5일동안 영국의 농장에 새로 생기는 마을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버스 시간이 바뀌어서 전날에 잠을 거의 하나도 못잔 탓에 일찍 들어간 내 체력이 아쉬운 첫 날이었다. 사실 조금 쉬고 나와서 스톤 서클에서 일출을 보려고 했는데, 눕자마자 다같이 기절해서 아침에 일어났다. 남은 4일동안은 체력을 허튼 곳에 쓰면 안되겠다는 다짐을 첫날부터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추웠던 텐트 속에서 새벽을 보내다 페스티벌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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