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푸딩 먹어보고 싶어
원래의 계획은, 휴대폰 없이 정처 없이 걸음이 이끄는 대로 그저 걷다가 발견하는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무(無)의 상태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 취향의 공간을 발견하고,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리뷰를 샅샅이 훑고, 조금이라도 나쁜 평이 있다면 망설이는 태도를 버리고 싶었다. 우연히 발견한 행운은 계획된 행복보다 더 큰 행복으로 자리하니까.
핑계를 대자면, 피부가 아릴 정도로 뜨거운 햇볕 아래서 그 계획은 무용지물이었다.
집 내부 공기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웠지만, 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는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졌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풍경은 그저 예쁘기만 했다. 눈으로만 담아야 예쁜 풍경이었다. 그늘 속에 있어도 더위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그래, 다 내가 즐겁자고 하는 기획인데 본질을 잊고 사소한 부분에 아득바득 우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집 주변 설정을 해두고 가까운 카페를 찾다가 익숙한 곳, 새로운 공간이 눈에 띄었다.
매장 이름을 눌러보니, '새로 오픈'이라는 문구가 나를 반겼다. 이런 조그마한 동네에 이런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가 생겼다고? 오늘의 카페는 너다!
설레는 걸음으로 매장으로 향했다.
매장 내에서 글을 작성하려 했지만, 가족단위 단체 손님으로 노트북을 펼칠 수 없는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문 매대로 향했다.
매장에 오면서 머릿속으로 열심히 생각하던 메뉴들 몇 가지를 떠올렸다.
요즘 말차코어가 유행이던데 말차라떼를 마셔볼까? 약하긴 하지만 나 우유 알러지인데 괜찮을까? 맥파이앤타이거 호지차도 판매하네? 익숙한 브랜드명에 혹해서 호지차를 마셔볼까 싶다가 역시 근본은 아메리카노 아니겠는가?
아메리카노와 함께 호지 푸딩을 주문했다. 리뷰에서 누군가 호지 푸딩이 맛있다는 글을 보고 꼭 먹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경험했던 푸딩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달달한 푸딩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언제나 푸딩이 등장한다. 탱글탱글한 연노랑 몸체에 윗부분에 뿌려진 연갈색의 달달한 시럽. 항상 맛있게 푸딩을 먹는 모습을 보며 일본 여행에 대한 로망도 소소하게 하나 추가되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사 먹은 푸딩은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분명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행복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던데, 이게 그 정도 맛인가? ..별로인데?
푸딩은 그저 애니메이션에서나 맛있어 보이는, 그런 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목욕탕에서 목욕 후 마시는 바나나 우유와 같은 맛? 추억 보정한 맛이 아니었을까.
카페에서 판매하는 디저트로 푸딩은 흔치 않았기에 속는 셈 치고 주문했다.
적어도 편의점 푸딩보다는 맛있겠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호지 푸딩 하나요"
주문을 마치고 잡아두었던 자리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아직은 마무리 짓지 못한 걱정들을 뭉텅이로 꺼내어 한 자 한 자 적었다.
"저기... 푸딩 만드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다른 디저트로 변경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푸딩 먹고 싶었는데. 당황스러움과 아쉬운 마음으로 매대로 갔다.
"혹시, 일반 커스터드 푸딩도 안 되나요?"
"재료 상태 보고 해 볼게요! 혹시 안될 수도 있으니 다른 메뉴도 추가로 말씀해 주세요. 금액은 저희 실수니까 차액은 안 받겠습니다."
푸딩 다음으로 궁금했던 말차 테린느를 골라 자리에 돌아와 착석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약간 밝아진 표정이 보였다.
"다행히 커스터드 푸딩은 되더라구요! 금액 차이가 조금 있어서 이건 서비스로 드릴게요"
몇 백 원 차이는 취소 후 재결제도 복잡해서 더 비싼 쿠키로 대신해 주셨다.
힘든 사투(?) 끝에 탱글탱글한 푸딩을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열심히 담아냈다.
진짜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푸딩과 똑같았다. 숟가락으로 떠먹으려 하자 단단하고 쫀쫀해서 미끈하게 벗어났다. 다시 푸딩을 떠서 입에 넣어보았다.
시원하면서도 달달하고, 진한 우유맛과 같은 고소함이 느껴졌다. 진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래서 주인공들이 푸딩 먹을 때마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구나.
적당히 달달하면서도 쫀득 탱글한 식감이 입에서 느껴졌다. 커피는 순간 잊고 계속해서 푸딩을 먹다 보니 어느새 절반밖에 남지 않은 푸딩이 쓰러질 동 말동 애처롭게 있었다.
카페에 있는 내내 푸딩 맛있다는 예찬론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집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이런 디저트 먹어본 적 없을 텐데.
예전에 sns에서 스치듯이 본 내용인데, 아빠가 퇴근 후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는 날은 커서 생각해 보니 유난히 직장에서 힘들었던 하루였다는 내용이 생각났다. 비록 힘든 하루였지만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가족들 생각으로 다시 하루를 이기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던 내용이었다.
복잡하고 힘든 요즘, 내가 맛있게 먹었던 푸딩을 엄마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마음속으로 '다음번에는 호지푸딩이다'를 외우며 집으로 향했다.
엄마, 혹시 푸딩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