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지 않는 작업실

by 오월

우연히 집에 꽂혀있던 생활기록부를 보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기록물을 잘 보관하는 능력이 없지만, 엄마의 보관능력 덕분에 수십 년이 지난 A4용지에 기록된 나의 과거를 살펴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변화무쌍했다. 나도 이때는 세상 철없고 풋풋했구나...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기다 익숙한 단어에 멈춰 섰다.


나의 장래희망, 작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꿈은 작가였다.

잊고는 지냈지만 마음속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꿈이 작가였나 보다. 현실의 나는 잊고 있었지만, 과거의 나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마음 한 구석에 품어온 꿈을 잊지 않고 계속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나는 브런치에서 '작가님'이란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은 그칠 줄 몰랐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그러한 글들은 내가 닿을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해 보인다. 나는 특출 난 것도, 특이한 이력을 가진 것도 없다. 나의 불행으로 글을 쓰기엔 누군가에게 배부른 불행에 불과했고, 좋아하는 것으로 글을 쓰기엔 열정적으로 사랑을 베푼 적이 없었다.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하였는데, 내가 느낀 감정들을 상대에게도 와닿게 할 만한 표현은 글을 발행하는 매번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그런 부족한 글에도 찾아와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브런치는 10주년을 맞이했지만, 나는 이제 고작 1년 차를 넘긴 작가이다.

한 해, 두 해, 브런치 대상작은 평소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야기가 가득했고, 점차 더 풍부한 장르의 글을 발행하는 작가님들이 늘어났다. 나도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는 작가의 모습에 한 발짝 더 가까운 모습이 될까? 지금보다 조금은 더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종종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보다는 감정에 솔직하고, 모나지 않은 다정한 나. 현재까지 나의 글이 우울감이 배어 있다면, 미래에는 애정이 밴 글을 쓰는 나.


주택이 늘어선 조용한 동네에 조그마한 카페를 연다. 매장 가득 은은하게 퍼지는 원두 향으로 코를 취하게 하고, 머리맡에 내리쬐는 햇살에 글을 쓰다가 꾸벅 졸음이 쏟아진다. 저녁에는 살짝 기분만 들뜰 정도의 칵테일을 만들어 홀짝인다.

조그마한 카페는 나의 작업실이 되어주고 그곳에서 마주한 소소한 일상을 기록해 가는 장소가 되어준다. 속도는 중요치 않다. 그저 나만의 속도로, 나다운 글을 써나가면 되는 거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나의 조그만 작업실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글을 써간다.


아,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행복하다.

비록 지금의 나는 발 동동거리며 일하기 바쁘고, 방 한구석에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고 있지만 언젠가 이 꿈이 내 손에 움켜쥘만한 거리에, 작가란 호칭을 민망함이 아닌 애정으로 품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