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가늘고 긴 유대관계

기아는 가을야구 아닌 가을야구 한다고?

by 오월

"혹시 10일에 시간 있어?"

1년에 어쩌다 한 두 번 연락하는 사이. 아니, 사실은 몇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사이.

연락의 빈도로만 본다면 결코 친하다 말할 수 없는 사이이지만 우리는 벌써 20년 지기 고향 친구였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오랜 시간이 흐르기 전이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물론 내가 또래보다 작은 키를 지녔지만, 나보다 머리 두 개가 더 있는 듯 큰 키를 보고 그 친구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언니라는 호칭에 친구는 "나도 1학년이야~"라며 웃으며 말했다.

밝고 리더십 있는 성격의 호탕한 친구는 누구와도 금세 친해졌다. 낯가림이 심해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친구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내내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영혼의 단짝처럼 붙어 다녔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친하게 지냈지만 별거 아닌 일로 어색하게 서로를 대했던 기간도 있었고, 성격이 다른 부분이 있어 같이 붙어 다녔던 친구들도 달랐다. 고작 한 학년에 반이 2개밖에 없는 조그마한 학교였기에 누가 누구인지 다 알지만 우리는 친한 듯, 친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나는 광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휴대폰이 보편화되었던 시기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나마 잘 사는 친구 한 명만 휴대폰을 소지했었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나 휴대폰을 지닌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기 급급했던 나는 휴대폰을 가지고 다닐만한 형편도 안되었을뿐더러, 작은 소도시에서 일정이야 뻔했기 때문에 휴대폰은 굳이 필요가 없었다.

남들이 소유한 것을 나만 없다는 건 상당히 외롭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기존에 쌓아두었던 인연을 다 버리고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년, 같은 동네, 집에서 5분 거리 위치, 동네 슈퍼집의 손녀딸.

당시에는 특정 건물명을 말하면 택시 기사님들이 알아서 위치를 찾아주셨다.

우리는 "바다슈퍼 맞은편이요"라고 말하면 알아서 척 내려주시는, 동네의 랜드마크와 같았던 곳이 바로 친구네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어쩌면 친구가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또래와도 금세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을 지닌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의 친화력 덕분에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고향친구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그 사이 휴대폰도 생기며 우리는 서로에게 가끔가다 연락을 남겼다.

연락이 되면 되는대로, 연락이 안 되면 안 되는대로. 각자의 현재를 살아가며 종종 안부를 남긴다.


분명 경기 보러 왔다가 우천으로 취소라니

광주와 군산의 중간지점인 전주에서 만나기도 하며, 각 지역에서 행사가 있을 땐 이 행사 갈거냐며 알려주기도 한다. 재작년, 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아 군산에 갔을 때에도 친구는 나의 갑작스런 연락에도 일정을 비워 나의 숨통을 터주었다. 나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때론 불편하기도 하지만 좋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멀고도 참 가까운 사이다.


최근 친구가 야구에 빠져 경기를 관람하러 광주에 왔다고 하여 반차를 내고 만났다.

1년 만의 만남, 5년 만의 만남, 6년 만의 만남.

친구와 나의 만남텀은 참으로 길지만 변함없다. 초등학교 입학날 당시, 그 모습에서 변한 것이라곤 딱히 없으니까. 이 가늘고 긴 유대가 서로를 편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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