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9월부터 나의 일상에서 어떠한 지점이 변화하기도 했지만, 특히 근 한 주간은 악재와 악재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생활 패턴이 달라지게 되어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출근길 급정거 사고가 있었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가뜩이나 몸이 좋지 않은 시기에, 별 거 아닌 급정거 사고는 내 몸에 생각 외로 무리를 주었다. 나도, 상대측 차량도 운이 나빴을 뿐이다.
내 인생에 큰 변환점은 아니다.
그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올해까지만 다니게 될 텐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지극히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약국 다니는 애들은 결국 약국으로 오더라
과거 주임님이 했던 말이 마치 나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도 결국 돌고 돌아 약국이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보내는 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돌고 돌아 원래 다니던 곳으로 오게 되었으니까.
그 저주 같은 말을 벗어나고 싶었다.
뻔히 적성에 잘 맞지 않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간호조무사 자격증이라도 취득해야 하나..' 마음이 든다.
비슷한 직종이라 하더라도 약국만큼은 가기 싫어서. 추후에 자격증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차라리 내 인생에서 그나마 가장 어릴 때 자격증을 취득해 두자.
마음은 먹었지만 현실적인 고민이 뒤따른다. 앞으로 1년여간 생활비는 어떻게 하지?
풍족하게 살아본 기억은 없다. 언제나 '아껴야 해'라는 말만 들어온 삶이긴 했지만 날것에 가까운,
"... 어떻게 살지?" 근본적인 질문이 튀어나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계산기 두드려본 적도 없으면서 지금 모아둔 돈으로 1년을 버틸 수 있을지 계산을 해보지만 가능할 리 없었다. 이미 모아두었던 돈은 생활비로 사용된 지 오래였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투잡이라도 뛰는 것이었다.
주 1회, 직장도 주말 개인 시간도 유지할 수 있는 금요일 야간 근무였다.
하지만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근무 패턴과 생활고, 게다가 타이밍 안 좋은 사고까지 악재에 악재가 겹쳐 번아웃으로 다가왔다. 나는 토스트에서 벗어나 번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던 나의 다짐을 담아낸 알고리즘들은 그저 영양가 없는 오락성 영상으로 가득했다. 마음 다잡고 자기 계발 영상 하나라도 시청해 볼까 싶어 눌렀다가도 채 5분을 보지 못한 채 꺼버렸다.
도서 구독 서비스도 돈만 착실히 내고 단 한 권도 완독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제일 심각한 건 나의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뭔가.... 의미가 있나?'
글을 쓰는 것도 재미도 없고 의무감마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도 끝은 내야지.
처음 내가 생각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꾸역꾸역 밖으로 나갔다.
새로운 공간을 찾기 위해 노력도 해보고, 나름 우울감 속에서 허우적 팔을 휘젓는 시늉이라도 했었다.
원래 가고자 했던 카페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차선책으로 알아두었던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좋아하면서도 커피가 지겨워지던 차에 발견했던 말차 전문점.
주문대에서 뭘 마실지 고민하니, 사장님이 천천히 골라보고 이야기해달라 하신다.
중년의 사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곤, 여러 도구를 가지고 휘휘 말차를 만들어내셨다.
뭐랄까, 단순한 그 일련의 과정을 괜히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
조금은 자축하는 기분이라도 내려고 평소에 마시지 않는 색다른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했다.
처음 이게 맛있을까? 하는 조금의 설렘을 안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본다.
그 선택이 나쁘지만은 않다.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들을 적어갈까, 싶다가 이내 펜을 잡고 다른 것을 슥슥 써본다.
당장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내가 해치울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내 지금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선물 같은 순간들은 기억해 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