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가 내게 남긴 것
초등학생 때 처음 만들었던 싸이월드.
내 마음대로 꾸미는 미니미와 미니룸. 도토리만 있다면 남들과는 차별화된 미니홈피를 만들 수 있었다.
힘든 가정형편에 미니홈피를 꾸미기 위한 문화상품권 5,000원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화폐가치였다.
가끔 생겨나는 문화상품권이 있다면 언제나 떨리는 마음으로 문화상품권을 충전했다.
뭔가 죄짓는 듯한 마음을 안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도토리 충전을 했다.
50개로 늘어난 도토리를 보며 뿌듯하기도 하며 어떻게 꾸밀지 설렌 마음을 안고 샵을 살펴본다.
그 어린 시절에도 가성비를 생각했는지, 처음엔 기간제 미니홈피 배경과 메뉴바를 구매했다가 어느새 사라지지 않는 움직이는 미니미, 배경음악을 구매했다.
그 당시에도 알게 모르게 남들과는 차별성을 두고 싶었던 나의 욕구였나 보다.
인생의 가장 암흑기라고 볼 수 있는 중학생 시절.
요즘 인스타에서는 모두에게 행복한 모습 중 한 컷을 보여주었지만 당시 싸이월드에서는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었다.
당시 인터넷 소설에서는 새드엔딩, 희귀병,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을 다뤘고 세상에 억눌렸던 불만을 표출하는 글귀가 가득했다. 딱히 내가 크게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싸이월드에서는 모두가 불행하니, 나도 그 불행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인 '얼짱' 사진을 보며 연예인처럼 동경했다. 그들은 지금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흑역사와 동시에 추억을 안겨주기도 했다.
사진첩에는 '좋아요~♡'가 페이지 수를 넘어가며 찍혀있었고 그 사진포즈들은 유행처럼 돌았다.
나는 싸이월드와 함께 웃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첩에는 친구들의 셀카, 학급 쉬는 시간에 찍은 친구들의 사진, 슬픈 글귀가 적힌 이미지와 얼짱 사진들.
그중 몇 없던 나의 사진까지도.
미니홈피 첫 대문에는 일촌평을 걸어두어 전학 갈 때 이전 학교 친구들이 적어준 소중한 메시지, 일촌명은 멋들어지게 지어보고 싶었지만 네이밍 센스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에게는 흔한 관계 정의가 고작이었다.
방명록에는 친구들과의 시시콜콜한 일상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내게 첫 휴대폰이 생기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무렵으로, 늦게 생긴 편이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소통할 창구는 싸이월드와 집에 있던 인터넷 전화 메시지가 고작이었다.
평소 친한 친구들과 소통하던 창구였던 싸이월드는 하루 방문자가 고작 스무 명 내외였다.
그랬을 터인데 내 눈을 믿지 못할 일이 생겼다. 하루 방문자 수가 100명을 훌쩍 넘긴 숫자였다. 분명 이럴 일이 없는데 설마... 하는 생각들과 함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싸이월드는 가입자가 아니더라도 익명으로 이름과 내용을 작성해서 댓글을 달 수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싸웠던 무리의 친구 중 한 명이 익명으로 나의 사진과 다이어리 글에다 지극정성으로 악플을 달아두었던 것이다.
나 같은 소시민이 연예인이나 경험할 법한 악플을 경험하다니, 황당하기도 하고 이렇게 순수한 악의는 처음이었기에 기분도 너무나 상했지만 눈물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던 것은 내가 적었던 다이어리 글에 달린 내용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글이었지만 그때 그 아이가 남겼던 댓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경제적으로 힘든 집안이었고 나에게는 그 무엇 하나도 쉬운 것이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다녔던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었고 교과과정과 관련된 수업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최대한 학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배웠고 당시에는 이사 후 자리잡기에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하다못해 근교여행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생활이었기에 '해외여행 다녀오고 싶다'는 그 말 한마디 적은 다이어리 글에 달린 못된 댓글은 절대 가족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으~ 아직까지 해외여행도 못 가봤냐? 거지냐?'
물론 13년도 더 지난 이야기니까 정확한 표현은 아닐지 몰라도 내포하고 있는 뜻은 다름이 없다.
그 아이는 나를 조롱함과 동시에 우리 집을, 엄마를 조롱한 것이었다.
내 사진마다 지극정성으로 못생겼다는 댓글을 달았을 적에도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다. 냉정히 말해서 외모지적은 그 친구가 나에게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 남자친구라 주장하며 등장한 익명의 댓글 때문에도 머리가 아파 외모지적은 큰 타격이 없었지만 다이어리 글에 적힌 댓글은 아직까지도 마음 한켠에 꼭꼭 숨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당시의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면서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우리 집의 형편이 그 친구와 너무나 비교되어서. 결과물만 놓고 말하자면 없는 집이 맞으니까 할 말이 없는 분함에 너무 슬펐다.
한동안 나에게 싸이월드 금지령이 내려졌다.
때마침 방학이라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분이 너무나 다행이었고 반응 없는 내가 재미없었는지 끈질기게 달리던 악성댓글도 점차 뜸해졌다.
사람들을 대하기는 어려웠지만 굳이 먼저 다가온 인연까지 내치기는 어려웠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에게서 친구신청이 도착했다.
나와 같은 동네, 비슷한 환경에 처한 언니였다.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나는 당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에 즐거움을 느꼈다.
나보다 3살 정도 많았으며 사고 쳐서 임신 상태인 언니. 나와 비슷하게 따돌림을 당한 상처가 있던 언니는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베풀어주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누군가 신분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 사람이 실존인물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허심탄회하게 나의 생각과 상황,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소중했을 뿐이었다.
싸이월드를 하는 동안 큰 좌절감을 경험하기도, 동시에 새로운 인연을 경험하기도 했다.
끔찍한 기억을 심어준 것도 싸이월드였지만 나는 이 녀석을 버릴 수 없었다. 소중한 인연과 기억도 담긴 매체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인스타그램이 등장했을 때에도 싸이월드 시절 느끼던 감성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소소한 행복을 불행으로 겹겹이 포장했는데 이제 인스타를 보면 모두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싸이월드가 복구된다는 소식이 돌자 수많은 사람들이 복구를 기다렸다.
잠들어있는 나의 흑역사들의 방출을 막기 위해,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물론 전자의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때의 흑역사도 나름의 추억 아니겠는가.
얼마 전 인화해 둔 지 10년도 더 된 사진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진을 확인했다.
그 시절 감성,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일그러진 화질, 얼굴을 가린 스티커, 촌스러운 옷차림과 머리.
더 이상 보기 괴로워 정리도 못하고 그냥 박스채 다시 고이 묻어두었다.
몇 년 전 복귀되었다던 싸이월드가 떠올랐다.
복귀 당시 잠시 훑었던 사진들을 이제 다운받아 두자, 생각하고 검색했지만 이제는 나의 미니홈피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아픈 추억, 흑역사라도 확인할 길이 있어야 남는 법인데.
그저 흘러 보내기에는 모두 순간은 아름답다. 그리고 영원하지 않다.
그렇게 모든 순간들을 기록해야지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