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여기가 제일 평화롭긴 해

카페에 있다 보면 줍는 말들

by 오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사람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지금껏 나는 스스로를 '집순이'라고 칭하며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유튜브나 SNS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나에게 '쉼'보다는 '죄책감'만을 안겨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딱히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없어 먼저 사회인이 되고자 했다. 나이에 비해 경력은 꽤나 쌓여갔지만 정작 퇴사 후 공백 시간이 생기면 죄책감에 시달렸다.

몸이 편하니 좋다는 마음과 더 이상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하는 그런 마음.


집에만 있으면 온갖 나쁜 생각들이 찾아왔다.

몸은 편하지만 결국 마음이 편하지 않아 두통, 식체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곤 했다. 결국 아프지 않기 위해 집 밖에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고민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집 근처에 공원도 있었고 도서관이 있어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도 어디에 갈까 고민할 필요는 딱히 없었다.

나이를 먹은 탓인지, 학생 때보다 주머니 사정이 살짝 넉넉해져서인지 선택지가 넓어졌고 그에 대한 행복한 고민도 이어졌다.


고등학생 시절 난생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시험공부를 목적으로 동네 카페에 방문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내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카페를 방문하면 공간을 가득 채운 원두향과 보기만 해도 단내가 나는 허니브레드. 그 위에는 생크림이 높게 쌓여있었다.

당시 10cm의 아메리카노는 매장마다 흘러나왔다. 하지만 쓰디쓰다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용기는 나지 않았고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이름부터 단내가 느껴지는 '화이트 초코 모카'에 휘핑까지 야무지게 추가했다.

아메리카노의 맛은 궁금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그 궁금증은 묻어두어야만 했다. 성인이 되고 연차가 쌓여가면서부터 커피에 대한 나의 환상은 깨지게 되었다.

일잘러 직장인의 필수템인 아메리카노가 현실은 그저 피로를 유예하는 자양강장제일 뿐이라고. 학생 때에는 꿈에도 몰랐다. 쓰다며 도전조차 하지 않았던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2~3잔씩 물처럼 마시게 될 것이라고는.


처음 혼자 카페에 가서는 무엇을 할지 몰라 그저 창 밖만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창이 없는 곳에서는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의 모습, 저마다 하는 일을 구경하곤 했다. 마치, 누군가의 평화로운 일상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나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방관자로 타인을 관찰했다.


조용한 카페를 찾아가 커피와 함께 책을 읽거나, 일정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어떠한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글로 정의를 내리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을 이끄는 공간을 발견하면 저장을 해두고 순수하게 그 카페를 방문하기 위한 여행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보통 큰 창과 우드톤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나는 창 밖이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곤 했다.



집 바로 밑에는 내 취향을 담은 카페가 존재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내 취향의 공간은 내 걸음을 인도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가방 안에 다이어리와 필기류, 책 한 권을 담아 들고 카페로 향했다.

혼자 방문해도 부담스럽지 않을 공간에서 일기를 쓰기도 하며,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노트에 기록하기도 했다. 늘 지나쳐가는 집 앞 동네 풍경이지만 가만히 앉아서 외부를 구경하는 느낌은 또 달랐다.


여느 때처럼 카페를 방문해서 개인 시간을 보냈는데 사장님과 지인분의 대화가 내 귀에 들려왔다.


금주까지만 영업을 하고 새로운 곳으로 매장을 옮긴다는 이야기였다. 지인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어디로 갈 것이냐는 대화가 오고 갔다. 여러 동네가 후보군처럼 올라왔다.


"내 감성은 남구야"

"하긴, 남구가 제일 평화롭긴 해."


별거 아닌 두 분의 대화가 내 마음에 박혔다. 그 말을 잊고 싶지 않아 서둘러 메모했다.

이사하고 새로운 구로 이사를 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딱히 좋은 감정을 가지지도 악감정을 가지지도 않았다.

어릴 적에는 놀거리가 전혀 없는 동네에 따분함을 느꼈다.

그런 따분함을 누군가는 평화로움으로 봐주는구나.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로운 곳에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