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대신 인사를 건넸다

현실과 온라인의 거리감

by 오월

“도대체가 쟤들은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냐?“

엄마의 목소리엔 짜증이 가득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계단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인사를 했는데 돌아온 건 떨떠름한 대답뿐이었다고 한다.


위층에는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집이 산다.

엄마가 먼저 인사를 건네야만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하는 아이.

같은 층의 어른들도 비슷하다.

나 역시 몇 번 인사를 해봤지만, 돌아오지 않는 인사에 어느 순간부터는 입을 다물게 됐다.



어린 시절, 우리는 주택에서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달동네 같던 곳이다.

젊은 부부보다 노인들이 훨씬 많았고, 엄마는 예의를 유난히 강조했다.

친구 집에 외박을 청해도 “불편하실 거야”라며 허락하지 않던 분이었다.


아침이면 담장 너머로 옆집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슈퍼에 콩나물과 두부를 사러 가면 슈퍼 할머니께 인사를 했다.

등교 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방에 들러 인사하고

하굣길엔 노인정 앞 어르신들께 또 인사했다.


그땐 인사가 하루의 일과였다.

모르는 어른에게도 먼저 인사하는 게 당연했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버릇이 없다’며 혼나던 시절이었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같은 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게 오히려 어색해지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보면 “경찰에 신고하세요”라고 알려주라 교육하는 시대가 됐다.

씁쓸하지만, 안전이 예의보다 우선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얼마 전 심야영화를 보러 가기 전 친구네 집에 방문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허리쯤 오는 키의 초등학생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낯선 듯 조그마한 목소리였다.

순간 나도 어리숙하게 “아, 안녕…” 하며 대답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에야 아쉬움이 밀려왔다.

‘조금만 더 크게 인사할걸.’

내 대답이 작아서, 혹시 아이가 무시당했다고 느끼면 어쩌나.

그 아이의 인사엔 커다란 용기가 담겨 있었을 텐데.



친구와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사람이 많은 극장에서 누군가 “죄송합니다~” 하며 조심스레 지나갔다.

엄마, 형, 그리고 막내로 보이는 남자아이.

그 아이가 나를 스치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혹여나 본인이 지나가면서 폐를 끼칠까 봐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요즘엔 모르는 아이에게 인사받는 일이 낯설다.

하지만 그 짧은 인사 하나가 마음을 흔든다.



온라인에서는 서로를 향한 혐오가 넘쳐난다.

여성은 남성을, 남성은 여성을,

성인은 아이를, 아이는 어른을 비난한다.

나이, 성별, 출신지, 학력, 정치, 종교 —

모든 것이 혐오의 이유가 되는 시대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화면 속 혐오의 대상이, 현실에서는 따뜻한 존재였다.


오늘, 나는 조그마한 인류애를 채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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