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가 개인의 업무라면, 약국은 공동의 업무였다.
콜센터에서는 개개인의 역량이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급여도 내가 전화를 몇 건 받았느냐, 영업 실적이 어떻게 되느냐, 친절콜은 몇 건 받았느냐.. 이런저런 명목의 인센티브를 챙겨 받았고 당연스레 나의 실수도 고스란히 내가 책임져야 했다. 내가 실수한 것을 상사가 대신 책임져주거나 도와줄 수 없었다.
하지만 약국은 공동의 업무였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함께 일하는 동료가 실수를 바로잡아 줄 수 있다.
서로 다른 근무환경에 처음엔 엄마뻘 상사분이 나의 실수를 대신해서 고쳐주고 도와주시는 부분에 감사함을 느꼈다. 공동의 업무에 있어서 분명히 문제점이 존재할 테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런 것을 느낄만한 여유는 없었다.
막내, 꼼꼼한 업무처리 능력. 지금껏 덜렁댄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완벽주의에 더 가까웠다. 실수를 해서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올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납쌤의 까칠한 성격으로 더더욱 처방전 접수 후에도 결제로 넘기기 전에 다시 한 번 검토했다.
"이거 누가 이렇게 했어?!"
까칠하고 높은 수납쌤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수납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범인이 누구냐고 소리는 쳤지만, 이미 나로 확정 짓고 잘못을 추궁하려는 말투였다.
"왜, 무슨 일인데? 으잉? 이거 왜 이렇게 해놨대?"
주임님이 수납쌤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냐며 상황을 살폈고, 난 주임님의 말씀을 듣고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배신감을 느꼈다.
"어우, 손님 죄송해요. 신입이라 실수했나 봐요, 다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주임님은 신입의 실수라고 둘러대며 나의 잘못으로 여겨버렸다.
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주임님은 내게 왜 실수했냐며 차후 교육을 진행하려고 했다.
"주임님, 전에 제가 이 부분으로 어떻게 하냐고 여쭤봤을 때 주임님이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저희 다 같이 이야기했는데;"
"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
"난 그 이야기 들은 기억이 없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 선조들은 역시. 삼인성호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은 왜 그리도 쉬울까? 단체로 빽빽 우겨대면 끝나니 말이다.
내가 손님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얻어먹은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상처만 남았다. 지금껏 잘 챙겨주시고 업무를 도맡아 열심히 근무하시던 주임님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마치 항해하던 배의 선장이, 순식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함께 일하는 장에서 누굴 믿고 근무를 해야 하는가. 본인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우기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이 조그마한 약국에서도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고 그런 적 없다 우기며 책임을 회피하는데, 사무직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할까?
외부 진상들도 싫지만, 함께 근무하는 동료를 믿지 못한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참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