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입을 다물고

직장인의 미덕은 가식인지도 모르겠어.

by 오월

이것은 서른이 된 내가, 스무 살의 수많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야



어른들의 "사회 나가봐라~ 학교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한 거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코웃음을 쳤어.

그 말의 진위 여부 따위는 중요치 않았어. 학교도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었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나에게 어른들의 별것 아니라는 듯한 무심한 조언은 때로 상처가 될 때도 있었거든.

어른이 된다는 걸 마냥 쉽게 생각한 건 아니야. 직장 생활을 만만히 여긴 건 더더욱 아니고. 하지만 나의 학교생활이 마냥 쉬웠다고 할 수도 없었거든.

내가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도 아니었기에 수능이란 일생일대의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를 날려버렸지만 실업계고의 생활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특성화 학교로, 지역 내 나름 명문으로 불리던 실업계고였어.

과거의 영광이 빛나는 학교라고 해야 할까?

실업계 고등학교치고는 높은 등급컷, 실업계고라서 혹시 분위기를 해치는 '일진'이 있을까 두려워했는데 인문계고의 느낌도 있었어. 나름대로 괜찮은 회사에 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분위기였지. 인문계고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였던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금융권에 많이 취업을 했기에 어른들의 인식에는 아직도 "오? 거기 명문이지" 하는 분위기가 남아있었어.

어찌 보면 이전 선배들이 길을 잘 터주었기에 자녀뻘의 후배들에게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었던 거지.


처음 학교에 입학했던 당시, 선생님들의 말버릇은 "실업계라고 쉽게 여길 수도 있는데, 우리 학교는 만만한 학교가 아니다" 였어.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어. 첫 시험을 치르기 전이었지만 아무리 명문이라고 해도 실업계는 실업계지_ 라던 자만심이 깔려있었어. 나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많았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나의 이 자만심은 1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어.


전교 50등 언저리.

처음에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 전교생 300명이 훌쩍 넘어가서 그래도 나름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나는 적어도 20등 내외는 들 것이라 생각했거든.

아_ 선생님들의 말씀이 맞았구나.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어. 그 이후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30등 이내로 들어가기가 마냥 쉽지 않았어.


일반계고 3학년이 수능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면, 실업계고 3학년은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해.

나는 3학년을 벼르고 있었어. 집에 돈이 없는 끔찍한 생활을 탈출하고 싶었거든. 나도 내 힘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눈치 보고 않고 친구들 사이에서 당당히 내 한몫을 해내고 싶었어. 당시 나의 용돈은 한 달에 5만 원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기 위해 돈 쓰는 부분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부담스러워하기도 했거든. 친구들은 몰랐겠지만 당시의 나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열등감을 숨죽여 키워가고 있었어.

3학년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융권 취업처가 계속 올라왔어. 결과는?

계속해서 쓴 고배를 마셨지. 나름 자소서도 잘 썼다 생각했지만 결과는 계속된 서류 탈락.

어쩌다 한 두 번의 탈락이 아닌 연속된 탈락이었어. 어떤 금융기관의 공채에 서류 합격, 면접 합격까지 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탈락하고 말았어. 인적성 검사에서 탈락했는데, 나는 그때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어.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솔직해지지 말자. 라고 말이야.


누가 인적성 떨어지냐? 라는 글을 많이 보았지.

나도 알아. 적성검사 문제가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거든. 다만 금융권은 일관성을 보는데, 당시의 난 상황에 맞춰 달라지는 나의 대답을 가감 없이 적어냈어.

이건 아까 나왔던 문제와 같은데? 상황이 아주 조금 다르네?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의 양심을 무시하고 처음 적었던 답을 밀고 가면 되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그리고 탈락했지. 공채 탈락과 동시에 나의 여름방학도 끝이 났어.

그리고 1학기 내내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2등급을 유지하던 성적이 5등급으로 수직 하강하고 말았어. 이 성적을 가지고 도대체 어디를 지원할 수 있었을까.


나는 도망치듯 콜센터에 지원했어. 어쨌든 돈은 벌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업무가 맞지 않아 새롭게 약국에 입사하게 되었고, 잘 알다시피 이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었지.

콜센터에서는 사실상 사내 왕따나 다름없었기에 약국에서 만난 직장동료들이 보이는 관심이 좋았어. 콜센터 때와는 다르게 챙김 받는 기분이 들었거든. 그래서 나를 다 드러내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 거야.

그게 몇 년간 나를 붙잡고 흔드는 무기가 되는 줄도 모르고.


스무 살, 자녀 뻘 되는 나이로 입사를 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

그냥 어물쩍 넘어가도 되었을 텐데 그때의 난 인적성 검사 문제를 마주했던 순간을 또 경험했어.

"아, 두 분 이혼하셔서 엄마랑 동생이랑만 지내고 있어요"

이혼 사유까지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것조차 속없이 다 드러내고야 말았지. 멍청한 실수였어.

부모님의 이혼은 차후 몇 년 동안 나를 계속 붙잡고 늘어졌지. 심지어 수년이 지난 후 코로나 시기에도, 나의 퇴사 시기에도 말이야.


"너 혼자 벌고 있는데 퇴사하면 어쩌려고?"

"집에서 너밖에 돈 벌 사람 없잖아"

나를 걱정한다는 포장으로 나의 치부가 사용되었어.

치부라고 여겼던 건 나의 학생 시절이 끝이었는데. 요즘 이혼은 흔하디 흔해서 흠도 아니라는 말도 있잖아.

입에서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때 생각했어.

앞으로 새로운 직장을 가게 된다면 나에 대한 것을 꽁꽁 감추겠다고.


나는 지금껏 진솔하다는 게 강점인 줄 알았어. 그래서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무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솔직함을 담아 이야기하려고 노력했어. 애초에 거짓말을 잘 못해서 티가 나는 점도 나의 솔직함을 부추겼던 것 같아.

나의 솔직함이 누군가에게는 쥐고 흔들 수 있는 무기가 되리란 걸, 사회 초년생이었던 난 몰랐던 거야.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선 나를 감추는 미덕도 필요한 것 같아. 나를 다 드러내지 않는 것. 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 미숙함을 보이지 마.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두서없이 적어봤어.

아무리 인터넷에서 ~부분은 밝히지 말라, 하는 내용들이 있지만 막상 어린 나이, 사회초년생들이 그 상황을 맞닥뜨리면 머리가 멍해지고 그냥 입이 나불대더라.

나도 머리로는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지.. 하지만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는 않더라.


이것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에 정답이 될 수 없어.

서른이 된 나도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는데, 스무 살의 내가 얼마나 노련했을까?

하지만 내가 꼭 하고픈 말은,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 것. 무조건적으로 나를 탓하기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반성과 개선으로 끝내고 나 자체는 아껴줄 것.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타인이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건 사실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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