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상처받아?
나의 스무 살, 어렸을 적의 모습을 아는 직장 동료들 눈에는 수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나를 신입처럼 여긴다.
스무 살, 처음 약국을 입사해 3년 후 퇴사했다. 퇴사 시기 접수대 직원 2명이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임신 시기도 겹치고 말았다. 퇴사를 생각할 무렵, 점점 나를 험하게 대하는 것에 불만과 비슷한 날들의 연속으로 회의감을 느꼈고 어차피 1년에 휴가가 하루뿐이라 여행이 어려웠으니 퇴사 후 해외여행을 마음먹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 같이 여행을 계획했던 지인들에게 일이 생겨 결국 여행을 취소했고 중간에 일주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영부영 전 직장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탓인지, 출산으로 다른 쌤이 퇴사해야 하는 상황이라 3개월 만에 끌려가듯 재입사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퇴사한 곳은 다시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결국 비슷한 문제로 1년을 채우고 또다시 퇴사를 했고 다시는 내 인생에 재입사는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내가 근무할 곳이 약국과 콜센터뿐이라면 고민해 볼 테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약국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재난이 닥쳤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힘들어했다. 단순히 '힘들었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몇 년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나는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한 상태였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못 살겠다며 문을 닫았다. 일자리를 잃은 고졸의 나는 취업처를 구할 수 없었다. 간신히 공공 근로를 하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계약 기간 종료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00아, 잘 지내고 있냐'
4년 만에 주임님에게서 연락이 도착했다. 주임님은 내게 애증의 존재였다. 감사하고 추억이 가득하면서도 가끔은 미운 존재.
대표 약사님도 바뀌고 신입을 구한다는 연락인데 혹시 근무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나는 이미 코로나로 한차례의 생활고를 겪었다. 그래도 나이가 깡패라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취업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코로나로 불가능해졌다. 공공 근로 기간이 끝난다면 그 불확실함 속에서 얼마나 더 버티고 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은 나를 이성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했다.
내가 재입사 한 이후로도 새로운 신입들은 계속 들어왔다.
업무가 어렵다기보다 사람이 어려운 것이다. 접수대와 다르게 조제실은 분위기가 강압적이다. 일을 잘하지 못하면 언제든 나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대놓고 깎아내리는 말을 서슴없이 했고 '얘 왜 이렇게 멍청해?'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다.
뒷말을 하려면 당사자 없는 곳에서 해야 하는데,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주의를 기울이면 언제든 나에 대한 욕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신입들을 피 말렸다.
매번 이러니, 신입이 얼마나 버티겠나?
바쁘다는 이유로 곧바로 업무에 투입하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금방 탈출한다.
그래서 신입이 항상 귀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신입을 칭찬하고 아끼기 위해 나를 깎아내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번에 들어온 애, 일 잘하더라~ 00이 너만 잘하면 되겠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신입이 얼렁뚱땅해놓은 일을 뒤에서 조용히 수습하는 건 나였다. 짜증으로 손님을 대하는 건 신입이었다. 그로 인해 민원이 발생할 것 같으면 해결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신입은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했다. 빠른 속도로 '잘' 처리했다고는 안 했다. 신입이 그러한 속도로 할 수 없는 일을 빠르게 끝냈다. 그리고 그 신입이 말도 없이 퇴사한 뒤 수개월 후, 수십 건의 문제가 발생한 건 나중의 일이다.
신입을 추켜세워 고정 근무인원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샌드백 마냥 사용했다.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하겠고, 나는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네에~?!'라고 조용히 티를 냈다.
"우리 00이는 무던해서 상처 안 받잖아~"
내 주변 지인은 나를 잘 알고 있다. 나, 완전 프로 예민러라는 것. 엄마는 집안에서 내가 제일 예민하다며 피곤하게 군다고 말한다. 주변 지인들도 나를 섬세하다고 말하며 예민한 부분을 이해해 준다.
나를 무던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쌤, 저도 상처 받아요옷?!"
"그러냐? 전혀 모르겠는데"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딱히 티를 내지 않았다. 그냥 허허, 하며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를 함부로 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상처 안 받잖아?'라고 이야기한 것에서 상처를 받았다.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대해도 퇴사하지 않을 아이였던 것이다. 본인들이 어떻게 대해도 허허실실 웃어 넘어가는 아이라 여기며 함부로 대했던 것이었다.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이렇게 말해도 상처 안 받잖아.
사람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로는 재입사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입사를 반복했고 또 상처받고 실망했다.
마지막 퇴사를 기점으로 대표약사님을 통해 직원들로 인해 힘들었던 부분을 전부 토로했다.
나의 퇴사 소식과 함께 대표약사님으로부터 나 외에도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 이야기를 듣고 그간 미안했다며 연락이 왔다. 뭐랄까, 심성 자체가 악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을 대하는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 너무 많았을 뿐이었고, 나는 그에 대해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물론 그마저도 주로 힘들게 했던 사람은 끝까지 모르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나의 8년 근무는 여전히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2번의 재입사를 했던 미련한 과거의 나는 그 시절을 벗어났다.
나를 아낄 줄 몰랐던 20대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실수를 반복하며 나를 상처 입혔다. 그때 나를 조금 더 아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는 20대의 나보다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을 퍼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연소한 모습으로 나를 함부로 휘두르게 두지 않는다. 여전히 싫은 소리 대놓고 하지는 못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단호하게.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과도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