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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gwon Nov 30. 2020

엄마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고생한 우리 엄마를 위한 헌정글

첫 번째 퇴사

대략 7살 때쯤, 그러니까 동생이 4살 때쯤 엄마는 처음으로 퇴사를 했다. 엄마는 그전까지 은행에서 근무했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교는 가지 못했지만, 공부를 잘했었기에 상고 출신으로서 그 당시 잘 나가던 제일은행에서 근무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엄마 출근하지 말라고 떼쓰는 동생 때문에 엄마는 출근할 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다행히도 첫째인 나는 엄마 가지마라고 울부짖는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의 변화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이상한 성격이다. 나는 그 당시 TV 보느라 엄마가 나가던 말던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엔 태양의 기사 피코가 저 검으로 어떻게 악당들을 해치울지, 꾸러기 수비대가 도대체 언제 헤라(악당 고양이)를 쓰러트리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땐 입덧하나 하지 않고, 주는 대로 다 먹었고, 울지도 않고 잘 누워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키우기 쉬웠을지 상상이 안 간다. 억울하게도, 그래서 뒤통수가 살짝 납작한 것 같다. 조금 땡깡 좀 피울걸

어쨌든 그날도 동생은 엄마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 그 정도가 심해서 그 난리에 관심 없이 티비를 봐왔던 내가 '쟤 왜 저래' 하고 지켜볼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악!' 소리와 함께 동생이 기절을 했고, 그 이후로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가정 주부로서 삶을 이어갔다.

대략 이 나이 때쯤이었을 거다.
두 번째 입사

거의 20여 년을 가정주부로서 두 아들과 남편을 지원해주는 일을 해왔던 엄마는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뭐, 두 아들이 글로벌 탑 티어의 회사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도 아빠의 퇴직이 불안함을 가져왔나 보다. 

나는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겠다는 말에 적극 찬성했다. 솔직히 돈이야 두 아들이 생활비를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별다른 취미가 없는 엄마가 집에서만 인생의 반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자라왔기에,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찬성을 했다. 하지만 너무 힘든 일을 갑자기 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근무시간이 길지 않고, 일이 힘들지 않은 아르바이트를 찾았으면 했고, 결국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에 4시간씩, 일주일에 6일씩 일하며 엄마는 1년 간 동네 마트에서 그 날 판매할 야채를 정리했다.


두 번째 퇴사

1년 간 아침부터 야채를 정리하던 엄마는 오늘부로 다시 백수 1일 차가 되었다. 어깨도 아프고, 일 하기도 싫다는 게 퇴사 이유이었다.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던 엄마의 두 번째 사회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엄마에게 이제 그럼 뭐할 거야?라고 물어봤더니, 전업투자가가 되겠다고 한다. 그동안 월급을 착실히 모았고, 몇 번의 수익을 통해 시드머니를 어느 정도 마련했다고 한다. 될 것 같은 종목에 신용매수까지 끌어모아 영혼의 한 방으로 천만 원씩 벌고 나오는 엄마를 보며, 귀여운 수익률을 보이는 나의 펀드상품을 매니징 하는 펀드매니저에 대한 원한이 생겨날 뿐이다.

어쨌든 엄마가 이제는 다 커버린 아들들 보다는 조금 더 자기 인생을 케어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 주식으로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만 사주면 더할 나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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