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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빈 Nov 18. 2019

그 친구 참 소신있네, <배심원들>

한국인이 말버릇 중 하나가 '~인 것 같습니다.', '~한 것 같습니다' 라고 한다. 확실하게 말하기 보다는 '~인 것 같다'라고 애매하게 전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요' 말하는 사람은 그냥 또라이일 뿐이고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며 아닌 것도 눈감아 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가끔 뉴스에서 소신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최후를 접하면 우리 사회에서 소신을 가지고 사는 건 참 힘든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 영화 <배심원들>을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8번 배심원으로 첫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단으로 참여하게 된 창업 준비생 권남우. 누가봐도 유죄가 확실하고 당연한 결과가 예상되었던 재판. 노련한 재판장 김준겸은 신속정확한 판결을 위해 재판을 이끌지만 8번 배심원은 자꾸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고 이의를 제기한다. 어쩌다 보니 배심원이 되었고 망설이며 이의를 제기하는 권남우를 보면 볼수록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끝끝내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도 '잘 모르겠다' 며 선택을 미루는 권남우. 태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는데 그 친구 참, 요즘 보기 드물게 소신있단 말이야.


 

SELLING POINT. 유머와 서스펜스, 감동을 잘 버무린 영화.

서스펜스와 적당한 유머 코드, 주요 배경이 법정인 영화 치고 지루하지 않게 진행된다. 사건을 재현하며 긴장감을 주다가, 적절히 치고 들어오는 유머로 전체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영화.

특히 배심원들의 케미가 웃음을 유발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심판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보통 사람들, '첫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에 너무나도 잘 맞는 사람들이다. 8번 배심원을 중심으로 서툰 그들이 투닥거리고, 협력하면서 최종 결정을 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첫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의 '첫 결정'을 통해 재판장 김준겸은 자신의 처음을 떠올린다. 재판을 이끌어왔던 재판장이 배심원들을 통해 자신의 처음을 되새기는 장면은 새삼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분위기는 가볍지만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김준겸과 권남우의 첫 만남, 김준겸은 권남우에게 말한다.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누군가의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중증 결정장애인 것 같은 8번 배심원, 권남우가 소신을 지킬 수 있던 이유도 법의 무게와 의미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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