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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Aug 07. 2019

무쌍난무에서 탈출하자

인정? 어! 인정

리더십에 대한 수많은 책과 지침서들이 있어.

우리가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조언하고, 강요하기도 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를 연신 되뇌기도 하지만, '레알? 진심?'이라고 생각하며 갸우뚱거리기도 해. 외부에서는 우리를 보고 뭔가 다른 존재, 뭔가 있는 사람으로 볼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꺼풀 벗겨보며 거기서 거기고, 도찐개찐이야.


"우리도 매일 겪는 하루가 처음 겪어보는 일상이랍니다."

매우 공감하는 워딩이야.


리더? 대표? 

그거 별 거 아냐. 처음에는 다 어리바리했고, 창업이라는 게 이 정도로 혹독하고 고난의 행군인지 뒤늦게 깨닫고 '아차차'하는 그런... 그냥 다 똑같은 레벨의 그저 그런 사람들이야. 

간절하게 면접 기회라도 잡으려던 취준생일 때도 있었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중독되어 출퇴근길의 고역을 감내하던 직장인이기도 했고, 이직이라던가 퇴사에 환상을 가지고 있던 철없는 사회인이기도 했어.


지금에 와서 딱 하나 다르다면, 앞에 혹은 뒤에 붙여진 그놈의 리더, 대표라는 단어에 무게감과 중압감이 너무 커서 평소에 나라면 피해 갔을 일에 마주 하는 책임감 정도? 그 작은 차이가 있고, 없고의 간격이랄까?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직원들도, 외주업체도 우리에게 뭔가 확실한 결정을 기대하는 눈치를 느끼곤 해. 

"이게 나을까요 아니면 저게 나을까요?"라며 똥그란 눈으로 날 바라보면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어어~~~)


인사이트(insight)니 동물적 감각이니 해박한 지식을 배경으로 단박에 두뇌회전이 풀 가속해서 떡~~ 하니 결정이 나올 것 같지? 대표니까. 그래도 뭔가 다를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 거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지?


기대와는 달리 제일 먼저 입 밖으로 나오려 했던 말은 '예! 그것도 좋네요. 요것도 좋은 거 같아요.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야. 무성의하게, 어쩌면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솔직히 지금 당장 그런 생각밖에 안 나. 

그렇다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지 않는 건... 결국 최종결정자는 나니까 책임자도 나라서 그래. 

결제로 올라온 상황에서는 승인을 내리는 순간 모든 건 빼도 박도 못하는 나의 업보가 되어버린다고. 그러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만약 결정장애로 고민만 주구장창 한다면, 그렇게 회피한다면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걸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몸소 체득했지.  그게 사실 더 겁나는 상황이긴 해.


어쨌든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그래서 조금만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벤치마킹할 게 뭐 없나 찾아보고, 때로는 답이 떠오르길 기대하며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지. 사실 크로스체킹 하고, 보내 준 응답에 대해 검토하고 조사해봐야 그나마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잖아. 그래서 '2~3일만 시간 주시면 논의 후에 결정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사는 거야. 우유부단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세심하게 따져봐야 하니까 말이야.



"사실은 우리도 그 선택이 최선인지 알 수 없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쿨한 듯 최종 결제에 승인 버튼을 눌러 버리지만 마음속에서는 이게 잘 한 결정인지, 이거 맞는 건지 계속 누군가 물어봐. 확신? 그런 거 없을 때도 많아. 그나마 다행히도 우리가 하는 사업에 대한 자신 신이 있다는 건 축복이랄까? 그것조차 없는 일들이 수두룩한걸. 


리더, 대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무슨 용한 점쟁이나 신들린 사람, 신탁을 받은 예언자가 아닌 이상은 미래를 확답하기 어렵거든. 


다만, 리더, 대표라는 사람들은 최선이 되도록 애쓰는 거야. 비록 그게 최악의 선택이었더라도 진행 과정 중에 최선의 수습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자위할 수 있게 말이야.




우리도 창업은 처음입니다.

우리도 그거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우리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겁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괜히 멘털이 강한 척을 하지. 초식동물 무리를 이끄고 있는 우두머리라고 늑대가 안 무섭겠니? 절벽이나 범람하는 강을 건너는 게 안 두렵겠어? 두렵지만... 먼저 걷는 거야. 내 평생 처음 경험하는 거지만 능숙하고, 별거 아닌 듯이 담담하게 보이려 애쓰는 거야. 속은 만신창이가 되어가면서 말이지.


그래서 대표도 멘털이 안드로메다로 훨훨 날아갈 때가 많아.

실수도 하고, 극도의 스트레스에 못 이겨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취하기도 하지.




무쌍난무(無雙亂舞)

: 혼자의 힘/역량/능력이 탁월함을 뜻함

 

초기에는 스타트업 리더 또는 대표가 이일 저일 다 손보고, 최대한 끌고 나가야 하는 것도 맞아. 하지만 역량의 한계에 다다르게 될 거야.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도 분산되고, 산만하게 일이 널브러져 있으면 제대로 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인정하고 가면 간단해. 대표가 다 잘할 수는 없어. 고집부리지 말고, 못 하는 건 잘하는 사람에게 넘겨. 일과 책임만 넘기지 말고, 권한도 주어야 해.  대표들이나 경영진에서 다들 일은 직원들에게 넘기되, 결정권이나 예산을 쓸 수 있는 권한이 없다보니 수동적으로 바뀌거든. 물론 계약이라던가 비중이 크고, 리스크가 큰 건에 대한 결정은 함께 논의해야겠지만, 스카치테이프 하나 사는데도 결제 올려 승인받아야 하고, 미팅을 가서 커피값을 법인카드로 써도 되는지 전화로 보고 하는 그런 류의 결정조차 막으면 어쩌자는 거야. 


자발적, 능동적인 직원을 원하면서 실제로는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만들어가는 건 바로 이런 것들이야. 스타트업은 항상 쪼들려서 살아가지만, 그렇기에 더욱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야 하고, 결과적으로 이런 소소한 걸로 위축시키지 말아야 해. 

믿지 않으려면 아예 중요한 일을 시키지 말고, 믿을 거면 확실하게 밀어줘야지.

여기까지는 대표자/경영진에게 쓴소리였어. 


역으로 직원 입장에서도 한 번쯤 고민해 봐. 스타트업이라는 작은 조직에서 경영진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자신에게 일을 주지 않는다는 건 아직 서로 간의 신뢰가 약하다는 반증이니까. 그 상황은 "아... 옆 자리 있는 분보다 덜 바빠서 좋다"라는 안도감이 아니라 그만큼 그 작은 조직 내에서도 뒤처지고 있다는 뜻이야.



대표 자체가 브랜드이자 최고의 역량을 가진 기업이 과연 몇이나 될까?

윤발 형님처럼 이쑤시개 물고 총을 막 후려갈기면 상황이 끝나버리는 상황은 영화니까 가능하지. 그럴 능력도, 깜도 안 되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그런 흉내라도 내면서 시작한 게 스타트업이잖아.(주윤발 형님은 총이라도 쓰지. 우리 총은... 총알이 안 나가서 던져야 데미지를 준다는...;;)


업무를 분담하고 권한을 나누는데 인색해지지 말자. 어차피 혼자 다 하려도 할수록 더 리스크가 커진다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건 인적자원도 마찬가지야. 신뢰는 그렇게 쌓이게 되는 거야. 그렇게 또 하나의 내가 만들어지는 씨앗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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