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사소한 거에 의미를 두는 나만의 자랑
어제 지방 출장 가서 찜질방에서 잠들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연이은 미팅을 위해 뛰어다니다가
느지막이 밤이 돼서 전화 한 통이 울렸어.
"지금 어디야?"
"이제 막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중!"
"오호! 그럼 화정 맥주 한 잔 콜?"
"그래 좋다! 콜"
집에 가는 경로에 일산 "화정"이라는 곳은 우리의 소소한 일상의 마무리 장소야.
친구와 나는 둘 다 업무에 치이는 삶이다 보니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어쩌다 어쩌다 퇴근시간이 맞아떨어지면
때로는 2주, 때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퇴근길 맥주 한 잔의 권리를 외치지.
그 날따라 배도 출출하니 감자탕에 맥주가 땡겼다(갠적으로 난 소주를 안 좋아한다, 아니 싫어한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올라가는데...
오른쪽 양말 엄지발가락 꼬투리가 구멍이 났더라구.
"워~~! 양말에 구멍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나 봐!"
친구 녀석이 추켜세우는 말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자부심이 생겼어.
'그래. 나 열심히 살고 있구나.'
구멍 난 양말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면,
구멍 난 양말은 나에게 부끄러움이었거든.
아침 등교를 준비하다 구멍 난 양말밖에 없다는 사실에 어머니께 투정을 부렸던 게 기억나.
혹시나 구멍 난 양말이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친구 생일에 초대받고도 구멍 난 양말 때문에 차마 따라가지 못했던 기억.
그때는 부끄러움이었어.
고등학생쯤 되니까 구멍 난 양말은 그리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
우리 부모님은 항상 맞벌이를 하느라 새벽에 나가셔서 새벽에 들어오셨지.
그 흔한 양말도 새로 사기 어렵던 형편이었고,
항상 고단했던 어머니가 구멍 난 양말을 꼬매고 꼬매도
발이 커서인지, 아니면 걸음걸이가 문제인지
이내 쉽게 해져버렸지만
더 이상 구멍 난 양말은 딱히 나의 일상에 걸리적거리지는 않았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아직 포장을 안 뜯은 양말도 여벌로 있고, 집에 잘 안 들어가다 보니 양말과 속옷은 서랍에 꽤 많이 챙겨놨어.
그냥 지나 칠 수 있는 정말 사소한 양말 구멍이지만...
나 혼자만 정의 내리는 양말 구멍은 잠시나마 오늘의 내가 뿌듯하게 느껴지게 만들어주었어.
부끄러움이 아니라 부지런함의 근거가 되어준 오늘의 양말에게
수고 많이 했다고, 고생이 많았다고 인사 나누고 편히 보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