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자신감은 열정이나 용기가 아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
소위 근자감!
아... 이거 뭐라 말하지?
창업 초기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자랑하는 분을 만났다.
자기한테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전부라고...
지금 쥐뿔도 없다는 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는 자부심이고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창업하였노라~~~!
친목 도모하는 자리의 특성상 딴지는 못 걸었지만,
참 위험한 사상일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갓 창업한 우리들에게는
매우 매우 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매우 매우 약이 되기도 하겠지?
양날의 검과 같은....
이야기를 해보련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만약 고객이라면,
내가 만약 투자자라면,
내가 만약 협력사라면,
근거가 없는데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할 수 있다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조금만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스타트업 창업자의 스토리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자신감 하나로 지금까지 달려왔다는
디즈니 세계관 식의 홍보랄까, 자랑이랄까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그렇다고 다 갖추고 나서
시작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청년 창업가들의 가장 큰 장점은
패기, 열정, 도전정신이라고들 하는데....
(대한민국의 청년창업가라는 기준에
아직도 난 포함되는 나이니까
은근슬쩍 나도 청년에 묻어가야지)
좀 지나 보면 굳이 젊은 나이 때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창업가들은 다 패기, 열정, 도전정신이 있더라.
조금의 차이라면...
가끔은 더 무모한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 생각이다.)
이런 말 하는 나조차도
어떤 때는 매우 나답지 않게
결과의 성패를 떠나서
밀어붙일 때가 있다.
나도 무모한 창업가 기질이 있는 걸까?
하긴 창업했다면,
이미 시작부터 무모한 사람이란 증명 이지 뭐.
자신감, 자신감 하는데...
스타트업 창업가로서의
자신감의 근원에 대하여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1. 근거 있는 자신감
어떤 분은 젊으니까 자신감이 넘칠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지식이 있어서 자신감이 있겠지.
어떤 분은 모아 놓은 넉넉한 자금이 이유가 되겠고....
하지만 전적으로 사업에서 말하는 근거는
고객에게 전권이 주어져 있다.
고객이 제 값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가
오직 근거일 뿐이지 그 외에는 근거라기보단
그냥 보조해주는 희망 정도?
고객이 확실하게 오케이 해줄 것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든든하다.
이런 경우를 예를 들자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미 고객(또는 사용자)이
이걸 필요로 하더라라는 것을 몸소 깨우치고
창업하는 경우다.
특히 B2B 비즈니스 분야에서
도드라지게 보인다.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다가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하는 다른 고객을 관찰하고
근거를 찾은 창업자도 있더라.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장이지만,
독과점인 시장이며, 변화가 없었던 쪽을
찾아내어 혁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케이스들을 보면서,
신박한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말이
큰 결함으로 느껴졌다.
"고객이 원하는" 아이디어가 진짜 아이디어지.
2. 근거 없는 자신감
처음 창업 준비할 때, 근거가 있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직장생활을 통해 작지만
확실한 시장을 보고 창업을 하였다.
근데 처음부터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초기 시설 투자비가 제법 부담되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붙잡고
여기저기 뽈뽈거리며 진행해보았지만
결국 전체 사업계획을 뒤엎어야 했다.
순서를 바꾸는 것!
말이 쉽지 사업의 순서를 바꾸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순서를 바꾸어야 할 근거는 확실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장 판을 뒤흔들 특장점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과감하게 진행하고 있던 사업을
후순위로 넘기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작점에서 고객에게서 나오는 근거가 아니라
사업하는 입장에서의 근거와 논리다 보니...
중간중간에 여러 번 콘셉트가 흔들리고,
하루에도 몇 번을 생각이 오락가락하더라.
우리 내부에서도
'이게 될까?'라는 의구심이 계속 새어 나왔다.
그 당시 난 자신감이 없었다.
괜히 순서를 바꾼 건 아닌지 되짚기도 여러 번!
시간은 흐르고, 사기도 떨어지고,
하면 할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업무도 걱정이었지만,
작은 실패에도 큰 대미지로 받아들여졌다.
더욱 자신감이 없어지더라.
이쯤에서 한 마디 더 하자면,
내가 이런 녀석이라서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분들을
한편으로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객으로부터의 근거가 없음에도
자신감이 있는 분들은
이전의 나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던가,
일반적인 보통사람들보다 강심장이던가,
약간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란 말에
거부감이 좀 있다.
근거 없이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기에 그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근거가 없으니까 내 정신도 피폐해지고,
함께 동행하는 동료들도 너무나 힘들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사업한다는
이야기에 동조할 수 없다.
그러다 중간에 사업을 접으면서...
핑계처럼 들리는
이런 류의 말을 나는 굉장히 싫어한다.
"뭐 창업하다 망하면, 학교로 돌아가지 뭐 아직 금전적 손해도 없는데"
"어차피 친구들과 즐기는 마음으로 잠깐 몸담은 건데"
"다니고 있는 직장이 있는데 투잡 한다고 생각하고 한 건데"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지 뭐"
주식하다가 왕창 돈 잃고 나서 비싼 수업료 지불했다는
말을 어느 정도 믿어주어야 할까?
실패든, 성공 이든 간에
깨닫고, 얻어내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왕이면 성공하면서
얻는 것이 좋다.
실패하고 얻는 것에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다는 것은
손해 보는 장사 아니겠는가.
실패하더라도 얻는 무언가가
쏟아부은 자원/시간/노력보다
더 값진 것이어야 남는 장사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해 놓고,
그래도 얻은 게 있었다고 자기 위로 하는 것!
내가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이고,
피해야 할 상황이다.
3. 근거를 만들어가는 자신감
근거 있는 자신감이 더 좋겠지만,
아마 십중팔구는 근거는 미약하거나 많이 부족한데
자신감이 넘치는 대표들이 많을 것이라 추측한다.
하다 보니까
근거가 조금씩 쌓이고,
좀 더 구체적이게 되면서
자신감을 완성해가는 건 아닐까.
린 스타트업 이론처럼
빠르게 시도하고, 수정하고,
다시 확인하고를 반복하며
고객을 통해 해답을, 근거를 찾아가는 방법이
창업자에게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건 아닐는지...
시제품/베타 서비스로는
정확한 고객의 반응을 알 수 없다.
고객이 진짜 가치를 지불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누구도 반박 못 할 근거가 완성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우리 대다수의 창업자는 어렴풋한 근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투자자든, 유통 사든 간에
이미 고객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아무런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일단 시장에서 승부를 본 스타트업이
더 잘 투자를 받고, 더 잘 인정받는다는 점은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에 우리는 달리고 있다.
시작할 때부터
자금이 후달리고,
사람이 후달리고,
제품이 후달리고,
대표가 후달리는 상황을 이겨가면서
확실한 근거를 향해 달리고 있다.
시제품/베타 서비스를 통해 어림짐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두리뭉실하게 예측한다.
다듬어가면서,
완성형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그 모습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분명 100%의 확신을 주는 근거는 아니지만,
100% 순도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모습들이 지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감하기 시작한다.
될 것 같다.
돼야 할 것 같다.
되겠다.
된다.
지금의 내가 우리 회사와 우리 제품을 바라보는
시간의 흐름들이 이랬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 두려웠고, 겁났다.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클리어해가면서
하기 싫은 일들도 할 수밖에 없었고,
작은 실패와 좌절들도 있었지만
어제보다는 더 나아지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기 시작하더라.
문득 뒤를 돌아보니까,
시작점보다 많은 변화와 지표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고객들에게 보여줄 것들이 생기더라.
투자자에게 이야기할 것들이 생기더라.
이것이 근거를 만들어가는 자신감이랄까?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코엑스 "뷰티엑스포 코리아"라는
국내에서는 첫 전시회에 나간다.
일본과 베트남에서의 반응을 기반으로
지금껏 달려왔고, 고객의 피드백에 맞추어 수정하고
완제품을 만들었다.
해외바이어들의 의견을 토대로
세트로 구성하고,
몇 가지 더 수정이 들어갔다.
국내 고객의 반응도 기대된다.
분명 문화적 차이라던가,
고객 고유의 구매성향이 다르겠지만...
직접 판매하고, 제 값을 제시하여
진짜 근거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분하고 있다.
자신감을 확신으로 변화시키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래서 떨리고, 준비하는 데 있어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달리고 있다면,
당장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손해보다 낫다.
아니, 시작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될 수 있는 이유와 가능한 방법을 충분히 고려한 가설과
미약하나마 간헐적으로 받은 피드백을 토대로
되는 근거로 만들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스타트업(창업)이다.
그러나, 아직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될 수밖에 없는 근거와
돼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달리는 사람은
진짜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창업 가고,
사업을 시작조차 못 했다.
외주로 얻은 매출이나,
겉보기에 늘어가는 회사의 성장은
다 지표 중 참고가 되는 겉모습일 뿐이다.
아직은 가능성이 더 크고,
아직은 고객의 마음을 훔쳐오지 못한 지금의 우리는
창업가일 뿐, 사업가가 아니다.
선배 사업가들에게 더 겸손해지고,
고객들에게 더 배워가면서,
자신감을 만들어가자.
확신이 꽃피울 그때,
당당하게 외치자.
우리들에게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고
갈 길이 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