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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Aug 09. 2018

창업자의 일기장(0)-아무것도 없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였기에 불안한 미래, 그리고 다짐들

뒤늦게 이 메모를 발견하였다.


직장을 다니기 전에 

학창 시절 사용하던 다이어리에 기록했던 메시지들!

첫 직장 생활하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약간 냉소적이면서도,

비판적이었던 메모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렸구나, 철없었구나, 생각이 짧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때, 나름 진지한 고민들과

앞날에 대한 고뇌들이 가득했던 나의 리즈 시절을

다시 떠올리며 흐뭇하기도 했다.


그래서 순서상 앞으로 갔어야 할 글을 남긴다.

(굵은 글은 팩트고, 줄 친 글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의 대학생 시절은 나름 진하게 보냈다.



친구들과 수업 빠지고 

경주로 1박 2일을 놀러 가기도 했고,


펌프와 DDR이라는 오락실 최신 기계에

오백 원을 투입하며 몸치인걸 새삼 깨닫기도 하고,


만화방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가끔 주인아주머니/아저씨가 급한 일 있으면,

대신 가게 봐주기도 할 정도로 단골이었고,


시험시간에 누가 가장 먼저 나가나 내기하면서

백지 시험지 내고 나와 "금메달~" 외치던 철없는 새내기

(덕분에 성적은 선동렬 선수의 전성기 때, 방어율을 기록하였고,

내가 빨리 군입대를 하게 된 결정타를 만들어 주었다. )



군대 전역하고 1년이라는 휴학기간 동안 

나름 장사를 해 보면서 돈도 벌어보고,

(사업자등록 내고 남들 2002년 월드컵이라고 응원전 한창일 때,

푸른 만 원짜리 돈 냄새 맡아보며 매일 은행에 저축하러 가는 재미를 알았다)


복학해서 맘 잡고 공부한다고 

공부 잘하는 애들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속성으로 배우면서, 공부 안 했던 거 후회도 하고,

(무언가를 잘 하려면, 잘하는 그룹에 끼어야 하고,

희생과 포기가 있을 때, 쟁취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 가서 첫 장학금 소식에 

나도 할 수 있구나란 자신감과

울 아버지 어머니께 전화드리고

울면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밤잠 설레기도 하고

(그때, 이후로 쭈욱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성취의 맛, 승리의 맛을 알아버리면,

더 큰 동기가 생기고, 더 갈망하게 되고,

더 강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에 공부하고, 늦은 오후에는 물류센터에서

지게차 몰면서 알바하다가 항상 12시쯤에 퇴근하고

(명절 때는 밤샘도 정말 많이 했지..;;

단순노동보다 고급 노동이 시간의 가치가 다름을 알았다.

특히, 그때 방문했던 상무님/부회장님의 1시간과 우리 알바생들의 

1시간이라는 가치 간격에 대한 수다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굳어버린 혀를 꼬부랑 혀 만들어보겠다고

어학원 전전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1년 넘게 지내면서, 영어보다는 친구 만들고,

여행 다니고, 남의 대학교 들어가서 잘 들리지도 않는

영어 강의 도강하다가 동양인이라 눈에 쉽게 띄어서

그곳 학생 아닌 거 단번에 들켜서 튀기도 하고,

(어학실력이 늘어가는 속도보다

고마운 사람들, 감사한 경험과 넓은 세상에 대한

시각이 성장하는 속도가 더 빠른 건 본말전도? ㅎㅎㅎ)


다시 만난 휴학기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면서

잦은 프로모션과 매일 웃어야 하는 고객응대가

나를 번아웃 시키기도 하고,

(노동과 수익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직시하게 되었으며,

대기업의 시스템이 위대 하다는 걸 느꼈다)


남들 다 하는 공무원 준비, 토익 공부보다

맨날 아이디어 노트 꺼내서 

공상과 망상을 정리하며,

되지도 않는 사업 타령만 주구장창 떠버리고,

그렇게 별일 없이 졸업을 하게 된다.

(다들 제발 현실 좀 직시하라고,

그러다 고령화 백수의 길을 걷는다고

왜들 그리 걱정을 많이 해주던지...

눈물 나게 고.마.웠.다.

덕분에 진짜 많이 서글프게 울었으니까)




취업준비생(취준생)으로 보낸 9개월은 참 다사다난했다.

지금은 그 정도면 준수한 편이라고,

지금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다고 하겠지만,

나름 나 역시 불안함과 절망감의 하루하루는

힘들고, 두렵고, 고민이 가득 찼다.



졸업하고 집에 올라온 뒤

서류 광탈은 일상이고, 

매일 아침 도서관에 자리 잡아놓고

하루에도 두세 개의 이력서 보내면서

스케쥴러에 하나씩 줄을 그을 때마다

'내가 이렇게 무능력했나',

'졸업하기 전에 취업 스펙에 신경 쓸걸 그랬나'하는

자괴감에 빠져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졸업 전까지는 그래도 자신 있었던 게

학점과 토익 점수가 꽤 준수했다.

(그러나 지방대라는 벽은 크더라.

어른들 말대로 대학입시 때, 좀 만 더 공부하면

인생이 더 나아진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더라.

괜스레 편입해서 인서울의 명문대로 갔던 친구가

현명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간혹 서류와 인적성을 통과해서

몇몇 대기업 면접을 보게 되고,

최종 면접까지 오르게 되면서 부푼 기대와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어마 무시한 스펙과 경력의 경쟁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들러리 인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그렇게 떨어지고 나니 들러리였더라)


현실은 매우 냉혹해서,

거듭되는 취업 실패에 동정하는 사람은

오직 가족뿐이더라.

(아버지, 어머니의 새벽기도 모습을 보고

도서관에 갈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서 최종면접 보았던

외국계 기업에서 합격소식이 들어왔다.

사실 또 떨어졌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날 놀리나 싶었다.

(그런데... 결국은 포기했다.

내가 생각하던 외국계 회사의 자유로움과 여유가 아닌

한국 현지화된 외국기업이 얼마나 빡씬지 깨달았다)


그때 마침,

친구 놈이 나를 불렀다.

'너 전공 살려서 일하고 싶댔잖아'

그 말 한마디에 부산에서 첫 직장을 다녔고,

한 때는 열정과 충성을 다한 생활과

실망과 좌절의 시간들도 경험하며,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하였다.

근데 그곳도 같은 경험을 반복하게 되더라.

(또라이질량보존의 법칙은 어느 회사나 동일하다.

혹시 우리 회사에는 또라이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주변에 또라이가 없다면, 

네가 바로 그 또라이다.남들 다 아는데... 너만 몰라!

그리고 내가 창업하여 회사 문화를 만들어가는 기준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전 직장 생활에서 느낀

불편함과 비합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한편으로 직장 생활은 내게 전문지식과 시스템, 기획,

운영 등에 대한 전반적인 능력을 얻게 하였고,

적어도 대표자들의 순수한 모습들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다.

대표자가 아무리 뜻이 좋아도

중간관리자가 어중이떠중이로 오면,

대화가 단절되고, 사람들 마음이 떠나간다.)


이전 두 직장 모두 고속 성장하였고,

한 곳은 공장 사고, 다른 지역에도 공장 만들고,

또 다른 지역에 연구소 짓고, 참 잘 나갔다.

다른 한 곳은 투자도 받고, M&A 되어 지금도 가끔 언급되는 회사다.

(두 곳 다 초창기부터 합류해서 

함께 키웠던 회사들이다 보니 

나름 나 자신을 co-founder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게끔 경영진이 기회와 자리를 주었다.

덕분에 일반적인 회사에서 

경험하기 힘든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맡아서 할 수 있었고,  

지금의 사업전략과 비지니스 모델을 검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전 직장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




기록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면, 

나를 부끄럽게도 하고,

아쉽게도 하고, 웃게도 한다.


지금 남기는 글들도

훗날 내게 또 많은 생각과 추억 돋게 하겠지.


그래도 기록이라는 것은

이전의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에게 자문하고,

이후의 나에게 당부하게 만든다.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하고,

더 잘해가자.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그래서 너는 지금 얼마나 성장했지?'

라고 묻는다.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의 바통을 전달하도록

이 말을 전한다.

'그래서 너는 지금 얼마나 이루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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