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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백신 일차 접종

마침내 백신 화이자 일차 접종을 했다

by 다나 김선자



드디어, 결국은 백신을 맞았다. 한나절의 우여곡절 끝에 코로나 19 백신 화이자 1차 접종을 가뿐히 마쳤다. 이렇게 간단하고 순조롭게 끝날 일을 오전에는 왜 그토록 문이 굳게 닫혀 열리지가 않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고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간밤에 꾼 꿈 때문이었을까? 꿈은 운명의 농락이었을까 예측이었을까? 아님 이미 예견된 당연한 이치? 그도 저도 아니면 재수 없게 우연히 생긴 일? 싸 데빵(ça dépend, 그것은 형편 나름이다. 또는 때에 따라 다르다는 뜻)?


백신 접종하는 날.

꿈을 꾸었다. 기분 좋게 상쾌한 꿈은 아니다. 마치 불청객을 맞닥뜨린 듯 눈을 뜨고서도 찝찝한 기분은 한동안 이어졌다. 오로지 꿈을 믿거나 의지해서가 아니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다. 이왕이면 특별한 일상에 나쁜 꿈보다 좋은 꿈을 꾸고 싶다는 본능적인 심리이고 근본 원리일 뿐이다.

꿈이란 사람에 따라 때때로 예지 능력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아주 가끔 이런 초현실적인 예지적 세계의 꿈을 꾼다.

간밤의 꿈 내용을 잠깐 옮겨보면, 문화, 예술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좋은 오페라 공연 티켓이 있으니 원한다면 우리와 함께 보러 가자고 했던 것 같다. 무슨 오페라인지 꿈속에서 언급되지는 않았다. 꿈이란 사건마다 논리적 명확성을 띄지도 않을뿐더러 모호한 현상으로 다가오거나 해석이 필요로 할 때가 많지 않은가.

오페라 공연장에 도착하니 자리를 가득 메운 관람객들로 인해 어수선하고 부산했다. 우리가 구입한 티켓은 뒤쪽 편 기둥 앞 자투리 공간에다 억지로 만든 협소한 좌석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혼자 온 게 아니라 다섯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이 예상치 못한 추가 인원까지 앉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나머지 서로의 엉덩이를 촘촘히 붙여 겨우 앉아야만 했다. 그리고 남편은 예의상 그들에게 앞좌석마저 양보했다.

나는 꿈속에서 이 뜻하지 않은 상황에 기분이 매우 불쾌하고 언짢았다. 당초의 제안에 후회가 되기도, 동행자에 대한 언질이나 귀띔 한마디 없었던 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는 잠이 깼다. 비록 꿈이지만 깨어나서조차 목에 가시가 걸린 듯 개운하지 못한 것이 몸과 마음이 무겁고 찌뿌듯했다.

나는 속으로 '제발 무사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출발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대강 들려주었다. 남편은 웃으며 농담까지 곁들어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우리는 일찍 감치 서둘러 코로나 19 백신 화이자와 모더나 접종 센터가 있는 생-드니 프랑스 경기장으로 갔다. 내 예약 시간은 오전 11시 25분, 남편은 11시 40분이다.


센터 앞은 생각보다 붐비지도 않고 차분한 분위기다. 나는 차에서 먼저 내려 남편이 주차하는 동안 바리케이드를 따라 들어갔다. 젊은 남자 안내원이 다가와 나를 세웠다. 그는 내 예약 시간을 묻고 예약 증명서를 확인하고자 했다. 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SNS에 예약된 기록이라도 보여 달라고 했지만 나는 스마트폰 사용도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서 예약시간을 말해주고 나는 덧붙여 사이트 상에 그런 어떠한 것도 지참해라는 명시가 없어서 그냥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처해하더니 내 나이를 물었다. 내가 답하자 더욱 난감해했다. 왜냐하면 내 나이는 정부에서 정한 나이순으로 백신 화이자와 모더나 접종 날짜에는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남성 안내원은 그럼 기저질환이나 경제 활동상의 이유로 백신 접종 우선권에 대한 주치의 증명서가 있느냐고 묻었지만 그 또한 없다. 따라서 나는 이 국면을 넘길 방책으로 아래와 같이 미주알고주알 긴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남편이 접종 나이순에 속하니까 부부는 함께 따라간다고 여겼다. 친구의 경우도 예로 들었다. 더 중요한 건 예약 사이트에는 나이에 따라 저촉된다는 어떠한 규정의 표시도 없을 뿐 아니라 내 생년월일을 기입해도 아무런 방해 없이 예약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이러한 규칙이나 조건 없이 문을 활짝 열어놓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부부는 함께 백신 접종을 함으로써 더 효과가 있을 것이고, 어차피 모든 국민이 백신 접종을 서둘러 마치는 게 정부의 원칙이라 그런 줄 알았다. 아니던가? 등등등.

그렇게 나의 합리적이고 논리적 바탕의 기나 한 설명이 이어졌고, 그는 자신은 실질적 결정권이 없으니 남편분이 오면 저기 입구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여쭤보자고 친절하게 말했다.

잠시 후, 도착한 남편에게 요약된 전말을 전하고 우리는 다 함께 문에 서 있는 보안요원 남성에게로 다가갔다. 우리가 그동안의 사실 내용을 설명하자, 그는 또다시 사무요원 여성한테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 여성 사무요원은 우리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나이는 아스트라제니카 접종에 해당된다며, 입장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이트에 공지된 사항을 요목조목 따져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주장은 사이트상의 문제는 그쪽 회사의 오류이지 자신들과는 무관하며 이미 수정을 요청했으나 아직 고치지 않았을 뿐이란다.

결국 낙심한 나는 개운찮은 작야의 꿈처럼 허탈한 마음으로 불유쾌하게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 기회에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를 간단히 나열하면, 아스트라제니카 백신은 구태여 집에서 멀리까지 올 필요 없이 동네 약국에서도 접종이 가능했었다. 한 달여 전, 동네 단골약국에 갔던 남편이 다음 주 당장 맞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만족 하여 아스트라제니카 백신 접종을 예약하고 왔었다. 그는 백신에 대한 신뢰성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맞고 백신 여권을 소지해서 오는 6월 자유롭게 바캉스를 떠나려는 강한 충동 때문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여행하기 좋고 한철 모여드는 바캉스객들을 피할 수 있는 적기의 6월은 우리가 선호하는 달이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유럽의약품청(EMA)이 아스트라제니카의 특이 혈전증 부작용에 대한 안정성 검토가 실시된 즈음이기도 했지만, 백신 위험성에는 무감각한 남편과 달리 나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항상 혈액 부분에서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안정성을 고려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스트라제니카 접종을 취소하고 이곳에 신청을 했던 것이다.

여기 생-드니 시 프랑스 경기장에 차려진 백신 접종 센터는 크와 후즈(coix rouge, 국제 적십자사)가 주 조직 구성원으로서 백신 화이자와 모더나를 취급한다. 접수는 독도리브(docdolib)에서 담당하고, 보안팀과 백신 주입하는 소방대원들을 포함하여 생-드니 시와 보안팀이 체계적 협력하에 운영되는 따라서 일반적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여성은 크와 후즈 직원이고, 처음 내가 만난 젊은 남성은 지원 나온 생-드니 시청 직원이다.


나는 밖에 나와 어정거리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멀찌감치 나타난 그가 긴박한 시늉으로 나를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어떤 변수가 생겼다는 직감으로 힘껏 달려갔더니 소방 직원 남성과 국제 적십자사 사무 여성 요원 간의 토론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남편이 내게 그간의 일을 간추려 전한다.

남편은 백신 주사 맞을 당시에 소방직원들과 센터 조직의 구성과 현황에 따른 이모저모를 얘기하다 자연스레 조금 전 내 상황을 예로 들게 되었단다. 남편 이야기를 듣던 소방직원들은 그 정황이 이해할 수 없고 의아스럽다며 자신과 함께 올라가 알아보자 해서 왔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여성 사무요원의 비타협적이고 굳은 주장을 꺾을 수도 없었으며 그녀의 작은 권력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언집에 다시 한번 실망과 좌절의 순간을 맞았다.

일차 백신 접종을 순조롭게 마친 남편과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방금 전 일련의 과정들을 차근히 회상하며 분석해 보았다. 예약 신청서를 복사해서 들고 갔더라면 무난히 통과했을까? 우리가 너무 교만하게 굴었던가? 이 모든 과정을 아무리 돌이켜 새겨보아도 그녀의 언행이 의심쩍었고, 스스로 납득키 어려웠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담을 수 없다면 다시 떠 오는 방법을 택하여 재차 접수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나는 진담을 섞은 농담조로 다 지난밤 내 꿈 탓이야!라고 말했다.


백신은 일차 접종 후 적어도 6주가 지나야 2차 접종이 가능하므로 지금 당장 맞지 못하면 자칫 6월의 그리스행 바캉스를 포기해야 될 형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백신을 맞으려고 몰려들면서 기한이 무한정 늘어질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봉쇄 기간과 폐쇄된 생활이 길어지는 가운데 날씨까지 좋아지자 사람들의 마음도 다급 해지는 분위기다. 독일사는 친구도 기다림에 치쳐 아스트라제니카를 맞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남편 혼자 바캉스를 떠날 수도 없을뿐더러 내가 위험을 무릅쓰며 아스트라제니카를 맞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인터넷 사이트 독도리브에서 재 신청을 했고 오후 17시 40분에 예약 접수됐다. 아무리 뒤져봐도 어디에도 우리가 앞서 당한 나이 제한에 대한 문제점은 기록되어있지 않았다.


마침내 예약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직원들 긴장이 풀려 너그럽게 통과시켜 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더불어 위안과 용기를 삼아 긍정적인 기대와 바람을 가졌다. 오전의 그 깐깐한 여성 사무요원은 제발 퇴근하고 없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물론 복사한 예약시간 증명서도 지참했다.

나는 마치 재시험을 치러가는 사람처럼 긴장된 기분으로 센터에 도착했다.

이런, 아무도 내 나이나 생년월일을 묻지도 않는다.

나는 입구에서 다시 만난 오전의 시청 직원 남성에게 재시도함을 알렸으나 그는 복사한 예약 증명서만 확인하고 무사히 통과시켜 주었다. 오전의 크와 후즈 여성 직원도 없다.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내 긴장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오전의 상황과도 너무나 다른. 역시 우리의 예측과 직감이 맞았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차근히 경로를 밟아 나아갔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점 같은, 한 방울의 주사, 비로소 화이자 백신 일차 접종을 무난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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