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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화이자 접종 그리고

앞 장에 이어서...

by 다나 김선자



코로나 19 백신 화이자 일차 접종 날인 찍힌 한 장의 증빙서류를 들고 나오면서 그가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내 양 입꼬리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왔다. 다름 아닌 성취감에서 나온 미소였다.

오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간단히 그리고 쉽게 획득한 것 같아 차라리 어이가 없어 헛웃음까지 나왔다. 허탈하나 만족한 웃음이었다.

입구 바깥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증명서를 치켜들어 보이며 환희의 미소를 보냈다.

"잘 됐다"라고 밝게 말하는 그의 낯빛에서 안도감이 깃든다. 드디어 6월에는 아름다운 그리스 에게해의 작은 섬에서 한적히 바캉스를 보낼 수 있다는,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다.

내가 더 원하는 건 그리운 한국땅을 밟는 것이지만, 유럽과 달리 백신 여권을 소지하더라도 도착해서 자가격리 2주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장애물이라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고국이 이렇게 멀게 느껴지기도 처음이다. 이산가족이 따로 없는 암울한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백신을 맞고 돌아오는 길은 세상 모든 것이 오전과 다르게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반사된 저녁 광선에도 눈부시고 떨어지는 꽃잎마저 웃음꽃으로 되살아난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간단한 축배를 들었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부푼 기대감으로.


결국에는 간밤의 내 불길한 꿈보다 더 큰 장애물은 크와 후즈(croix rouge, 국제 적십자사)의 여성 사무요원으로서, 나는 좋은 의미로 액땜 한셈 쳤다. 그리고 종합적인 분석 결과 우리가 간과한 소홀함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사이트상에는 지참물 명시가 없더라도 예약 신청서를 복사해서 들고 갔더라면 오전의 상황도 달라졌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프랑스는 싸 데빵(ça dépend,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 통용되는 관용적인 나라다. 지금은 그 색이 바래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보다 유연성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와 형형색색 성격을 띤 각양 각종의 인간이 존재하다 보니 때때로 아침나절 그 여성 직원 같은 사람도 만난다. 그녀 또한 고유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다소간 융통성이 결여된, 적어도 나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그래서 내게 재수 없는 사람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싸 데빵이 오늘 내게서는 반대 방향으로 문을 열렸던 것이다.

내가 검열대를 포함하여 세 번의 안전요원을 통과해서, 두 번의 서류 절차를 거친 후, 소방대원들이 백신을 주입하고 접종 증명서를 받아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무도 내 나이, 인종, 성별에 관해 문제 삼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그녀만이 나의 유일한 장벽이었고, 액운이었다.


내가 친지들에게 일차 백신 접종 소식을 전하고 브런치에 글을 남겼더니 아직 백신을 맞지 못한 지인들로부터 접종 이후 증상 및 안전에 대한 염려와 더불어 궁금한 이모저모를 물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백신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백신 접종 속도가 느림은 물론 부족한 물량에 대한 불만도 함께 토로한다. 총체적 난국에서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 대부분은 더 이상 버텨나가기가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반증이었다. 팬데믹 상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고 어느 누가 감히 예상했겠는가.

그리고 코로나 19 백신에 대한 효력이나 안정성 검증을 위한 임상실험 또한 짧은 기간 급하게 이루어진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위험성에 흑백 논쟁이 엇갈리는 것도 어쩌면 뻔한 사실이었다. 백신 접종 후에 나타나는 이상 증상과 부작용에 따른 피해 역시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나 같은 일반인 대다수가 느끼는 불안과 염려도 당연할뿐더러 그러한 소식 또한 매일같이 쏟아져 보도되고 있으니 오히려 사람들의 두려움을 가중시키게도 한다.

사실,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보도될 당시에는 세상이 금방이라도 제 위치로 되돌아갈 것 같은 기대감으로 환호를 했었다. 분위기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변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많은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백신에 대한 불신과 반감으로 접종 거부 유머가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후의 지금 상황은 어떤가? 나라마다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리고 세계가 '백신 전쟁'이란 비화로까지 일컫는 양상이다. 국민들은 백신의 수급 문제와 접종률, 속도에 또다시 난색을 표하며, 비난과 부정적 반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본의 아니게 억눌린 삶으로 인해 모두가 난세를 만난 꼴이다.

더구나 포근하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름 바캉스철도 다가오자 봉쇄기간 억지로 문을 닫아 경제적 곤경에 빠진 자영업자들을 포함하여 힘들고 갑갑한 생활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들의 각자도생 같은 발버둥이며, 현재로선 백신을 맞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의 진행상태가 학수고대만큼 순조로워 보이지 않으니 또 다른 난관에 봉착되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세상 인간사. 오직 자신이 처해진 형편에서 마치 세상 모두를 바라본 듯 여기는 인간들의 미진하고 미약한 모습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에서 고스란히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나는 천만다행으로 일차 접종을 했고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6월 첫날 2차 백신을 맞을 것이다. 일차 접종 후 심한 이상 현상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자칫 모르고 지나칠 정도의 경미한 반응이었다. 솔직이 화이자 백신의 부작용이나 이상 징후에 대한 정보도 소문도 들은 바가 거의 없어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고 중점을 두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리보다 연배인 친구 부부가 화이자 백신 일차 접종을 먼저 했으나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고 했으며, 오히려 아무런 반응이 없어 이상했다고까지 말했다. 나만큼 허약하고 더 예민한 마뉴엘은 예전에 독감 백신을 맞고서 며칠간 고생했던 경험으로 미루어 코로나 백신에도 당연히 선입견을 가졌었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나는 오후 5시 40분에 일차 접종하고서 그 당일 저녁까지도 아무런 증상은 없었다. 그냥 주사 한 대 맞은 것이니 당연하게도 여겼다. 그런데 한밤중 잠결에 백신을 맞은 왼쪽 팔에서 아주 미미한 통증으로 인해 잠을 설친 것도 같다. 돌아누울 때마다 팔이 약간 뻐근하게 느껴져 불편하기도 했지만 자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팔을 눌러 일어난 징후라고 예사로이 생각했다. 백신 때문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다음날 일어나서도 평소와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다. 작업하는데 집중이 안될 정도의 피곤함은 느꼈지만, 이런 경우를 종종 겪다 보니 내 허약한 체질 때문이라 여겼다. 어제 하루 작은 난리통에 긴장해서 설친 탓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정오쯤 되어서도 피곤함이 풀리지 않은 채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축 늘어졌다. 비로소 이 현상을 백신 후유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닿아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때, 백신 맞은 후, 이상 증상이나 부작용은 없나요?" 그리고 내 상태를 말했다. 남편이 걱정을 앞세운다. 그러더니 "음, 그러고 보니 나도 왼쪽 팔 근육이 약간 뻐근한 것도 같아,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정도야"

그는 나보다는 훨씬 미미한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또한 증상도 부작용도 사람에 따라 다름을 알았다. 그리고서 나는 일찍 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잠이 깨면서부터 너무나 가뿐한 몸으로 흡사 비상하는듯한 기분이었다. 날씨 또한 화창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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