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 광장과 천문 시계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라하, 여기에는 유수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답고도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조화롭게 공존한다. 그 큰 이유로 세계 2차 대전 당시 프라하는 독일 나치에게 항쟁하기를 포기하고 일찍 감치 손을 들어 도시의 피해가 최소화되었던 것이다. 이율배반적이지만, 그로 인해 오늘날 이처럼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가 되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프라하로 모여들고 있다.
프라하에서 대표적인 명소를 꼽자면, 단연코 천문 시계탑이 있는 구시가지 광장을 비롯해 까를교와 프라하 성이다. 이 세 군데로 말할 것 같으면 짧은 일정의 여행객들에게 방점을 찍는 장소로써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이 가운데 오늘은 그 유명한 구시가지 광장과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 성으로 연결되는 까를교와 접해 있으며, 블타바 강 오른쪽에 위치하여, 신 시가지와도 멀지 않은 프라하의 중심지다.
이 넓은 광장 가장자리로 고딕 양식을 비롯한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바로크, 로코코 등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서 있다. 그 가운데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디즈니랜드 마법의 성을 떠 올리게 하는 틴 성당의 두 뾰족탑이다.
이 검은색 아르도와즈 지붕의 고딕식 첨탑은 위로 높이 솟아 마치 파란 하늘에 걸린듯한 실루엣을 만든다. 거기에는 황금색 방울 같은 둥근 장식들이 허공에서 별처럼 반짝이며 첨탑에 걸려 마치 실로폰을 두드리듯 생기 발랄하다. 이 별들은 천상과 연결 짓는 소중한 것으로 여기에 꼭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조화를 이루는 화룡정점 같았다.
광장 중앙에는 종교 개혁자 얀 후스(Jan Hus,1372? ~ 1415)의 동상이 있고, 그 왼쪽 귀퉁이에 18세기 중, 말엽에 건축된 로코코 양식의 팔레 킨스키(Kinsky) 건물이 있다. 이곳은 1914년까지 독일 국립 고등학교였으며, 1893~1901년 사이 프란츠 카프카가 학업을 했던 곳이다.
그리고 틴 성당 맞은편에는 14세기의 건축물인 시청과 남쪽 외벽 맨 앞부분에 그 유명한 천문시계와 탑이 있다. 이 건물은 마치 구시가지에서 또 하나의 그림엽서를 연상케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청 건물은 여러 번 넓히고 변형되어, 현재 시계가 있는 외벽 부분만이 그리고 불타는듯한 고딕식 대문만이 오리지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계탑 앞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 정각을 알리기를 기다린다. 왜냐하면 아름다워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각 시간마다 두 창문에서 인형들이 춤을 추듯 지나간다. 이 모습을 보려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포진하여 사실 가까이서 사진 한 장 찍기도 쉽지 않았다.
이 천문시계는 1410년 니콜라 드 까두(Nicolas de Kadau)에 의하여 왕의 시계를 실행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시계공 하누스 드 루즈 (Hanus de Ruze)가 완성했다. 시계탑 가장 위 부분에는 나무로 조각된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시간이 정각을 알릴 때마다 12 사도가 이 창문에 모습을 드러내며 지나간단다. 그리고 창문 위에 있는 황금 닭이 각각의 시간마다 날개를 움직이면서 노래한다.
또한 그 아래로 화려한 천문 숫자판이 있고, 가장 아랫부분에 천문 달력이 있다. 이 천문 달력에는 일 년을 각 달들로 삽입한 12 메달리온이 농부들의 장면으로 둘려 쳐져 있고, 다시 그 둘레로 황도 십이궁이 표시되어 있다. 그 위 천문 숫자판에는 해와 달의 움직임에 따라서 시, 날, 달, 기온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믿기지 않은 기구가 무려 500년 전부터 그 기능을 수행하여 현재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천문시계로써, 여전히 작동하는 것으로서는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 놀랄만한 아름다움에 덧붙여, 관광객들의 감성마저 은근히 자극하며 유혹하는 환상적인 전설 또한 전해져 내려온다. 그 설화를 옮겨보면, 당시 이 아름다운 천문시계를 만든 장인 하누스에게 이보다 더 이상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불에 지져 멀게 했단다. 이에 분노한 하누스는 시계가 있던 곳까지 아들의 안내를 받아 복수를 위하여 자신이 만든 기구를 맹렬히 부수어 버렸다. 그리하여 다른 장인이 복구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고장 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앞을 수차례나 지나다녔지만, 그때마다 시간이 꼭 나를 비껴 나서 결국은 12 사도가 지나가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한 번은 사람들이 물결처럼 몰려들기에 싫어하는 남편을 굳이 이끌고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가로질렀으나 도착하자 이미 때가 늦었다. 이후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을 보자고 서 있기에는 다른 볼 것이 많았을뿐더러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 천문시계가 있는 왼쪽의 멋진 르네상스식 건물이 여행 안내소이며, 그 옆으로 프란츠 카프카가 살았다는 집이 있다. 이 고딕식 아케이드로 된 건물은 그때와 달리 현재 외벽에 흑백으로 인물 장식 그림이 그려져 그때와는 모습이 다르다.
카프카의 가족들은 여러 번 이사를 다녀 중심가 여러 곳에서 그의 흔적들과 조각상도 볼 수 있다. 그중 그가 태어난 집 건물 벽 귀퉁이 표면에 카프카의 두상 조각이 걸려 있으며, 말라 스트라나 지역에 그의 박물관도 있다. 우리는 짬짬이 일정을 틈 타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구시가지 광장은 처음 며칠 동안 수많은 상인들이 이동 살레(창고 같은 작은 나무집)를 설치하여 광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매우 실망스러웠다. 거기다 바비큐 연기와 냄새까지, 그리고 맥주를 비롯한 음식을 사 들고 곳곳에 서서 먹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장터가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대한 이 광장을 피하여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고, 우연찮게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 와 있다는 기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멋스러운 광장을 보다니 마치 행운이 찾아든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진 치고 있던 상인들이 모두 철수하여 광장은 그야말로 본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로 돌아와 마음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렇게 멋진 광장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면, 땅콩 없는 오징어 땅콩 과자를 먹은 격이 아니었을까? 이 우아하고 황홀한, 조화로운 건축미의 맵시에 우리는 한동안 넋을 놓고 오래 음미하며 고이고이 눈에 담았다.
짐작하건대, 부활절을 맞아 여행객들을 위해 임시 장이 섰던 것이리라. 이후에는 관광객들 수도 훨씬 줄어들어 도시가 더욱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드디어 제대로 된 프라하의 분위기에 취할 수가 있었다.
이처럼 프라하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하는 도시다. 11~18세기에 이르는 고 건축물뿐 아니라, 세계적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Gehry)의 "춤추는 집"이라는 현대식 건물도 볼거리 중 하나다.
따라서 숨어있는 보석을 발견하듯 각종 아름다운 건물들을 골목골목 걸으면서 보는 것 또한 여행의 진미다. 여기에 국립 극장 및 크고 작은 성당들, 특히 블타바 강가 까를교 일대에는 환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한 구시가지에는 유대인 구역이 하나의 도시처럼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옛날의 게토(ghetto, 유대인은 비유대인과 분리되어 살도록 나라로부터 강요된 지역)와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Parizska(파리 길)의 명품거리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세기에 걸쳐진 유대인의 공동체를 두드려 가며 볼 수 있다.
현재 유럽에서 활동하는 가장 오래된 "오래된-새로운 시나고그", 네오 고딕식 건축물 메젤 시나고그(Synagogue Maisel), 16, 17세기에 지어진 오뜨 시나고그(Haute Synagogue), 15세기 핀까스 시나고그(Synagogue Pinkas), 스페인 시나고그, 또한 게토에서 가장 큰, 17세기 말 바로크식 건축물 클로센 시나고그(Synagogue Klausen) 등 그리고 오래된 묘지가 있다. 이 모두 역사적인 장소로 누구나 입장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굳이 들어가려는 마음은 접고 외향만 대충 보고 지나쳤다. 아마도 유대인 친구와 함께 왔더라면 달리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