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루이 뷔통 미술관
재단 루이 뷔통(Fondation Louis Vuitton) 미술관에서 5월 18일부터 8월 29일까지 시몬 한타이(Simon Hantaï) 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2013년 파리 퐁피듀 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회고전 이후 10여 년 만이다. 그 당시 우리는 저 멀리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있어 안타깝게도 전시를 보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친구 부부와 일찍 감치 날짜를 맞추어 전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미술관 가는 길, 화창한 평일 오전 파리 거리는 한산했다. 언제나 이 길을 걸을 때는 신발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지그재그로, 또한 고인 물을 피하여 껑충껑충 뛰어넘던 기억만 있는데, 젖은 땅 대신 이처럼 먼지가 풀풀한 마른 흙을 밟아보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의 그림을 본다는 생각에 설렌다. 재단 루이 뷔통 미술관은 지하철 레 사블롱(Les Sablons) 역에 내려 걸어서 15분가량 거리에 있다.
시몬 한타이 전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재단 루이 뷔통 미술관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미술관은 2006년 10월에 파리 불로뉴 숲 속 아클리마타시옹 정원(Jardin d'acclimatation)에 개관한, 명칭 그대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파리 루이 뷔통, LVMH 그룹 재단이다. 이 재단 미술관은 1990년부터 그룹이 수행했던 후원 조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설립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Gehry)에 의해, 파리 그랑 팔레의 유리 건축물에 영향을 받아 유리로 건축되었다. 이 미술관은 서풍에 부풀려진 돛을 단 범선처럼 보이기도, 그것은 이같이 움직이는 착각을 주기도, 또한 불투명한 베일 12개가 빙산을 감싸고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건물 외곽에는 바다의 파도를 연상시키는 물줄기가 층층이 경사진 바닥으로 얕게 흘러내린다.
미술관 내부는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에 총 11개의 갤러리가 있다.
시몬 한타이 작품은 각 시대별 주제에 따라 미술관 7개 갤러리에서 총합적으로 펼쳐 전시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1960년대 접기 방법으로 특징짓는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이 전시회는 작가가 1960년에서 2004년 사이에 실행한 급진적인 방식을 증명하는 역사적 중요성과 예술적 가치와 질, 독창적 특성, 그리고 기념비적인 형식을 대표하는 것이다.
시몬 한타이(Simon Hantaï), 그는 20세기 후반 추상화의 훌륭한 대가 중 한 명이다. 1922년 12월 7일 헝가리의 Bia(오늘날 Biatorbagy)라는 부다페스트 가까운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2008년 9월 12일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조상은 17세기 때 독일에서 헝가리로 이민을 왔다.
그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1941년 부다페스트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학생 협회 회장이 된다. 1944년 공개적으로 친나치 정권에 반대하면서 투옥되었다가 이후 탈출하여 몇 달 동안 부모님 댁에서 숨어 지낸다. 1945년 초 아카데미에 입단했으나 헝가리 공화국이 실패함으로써, 그는 1947년에 결혼한 미술학도 수자(Zsuzsa)와 함께 마지막 기차를 타고 고국을 떠난다. 철의 장막은 그들의 뒤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1948년 5월 이탈리아를 거쳐 그해 9월 파리에 도착, 정착하여 그의 삶과 예술세계가 펼쳐진다.
1952년, 그는 안드레 브레통(André Breton, 초현실주의를 이끈 작가)을 만나 초현실주의 그룹의 일원이 되지만 1955년에 탈퇴한다. 왜냐하면 그는 잭슨 폴록의 추상적이고 제스처적인 올-오브(all-over)에 매료되어 자동 주의적 개념을 옹호하기 위해서다. 이후 그는 접기 방식의 독창적인 작업을 연구하며 펼쳐나간다.
전시는 주제와 연대별로 지하 1층 제2 갤러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변천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여기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그의 작품과 함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Number 26 A, Black and White>(1948)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보시다시피, 그는 잭슨 폴록의 자동 주의적 기법, 올-오브(all-over)에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중심적이지 않으며, 계층적이지도 않은, 균등하게 표면 전체를 채우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감상자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그림 표면 전체를 산책하도록 한다.
지하 일층의 갤러리 2 전시장에는 1949-64년에 제작한 <르 그랑 리브르 데 쁘띠 판뜌르, Le Grande Livre des Petites Peintures>란 주제다. 이것은 모던 페인팅의 목적에 대한 이론적 불일치 때문에 초현실주의 그룹과 헤어진 후, 큰 제스처의 기법으로 실행된 추상적 방법의 작업이다.
그리고 1958-1963년 작품으로 <레 뚜쉬 에 에크리뜌르, Les Touches et Ecritures>, 이것은 캔버스의 전 바탕 표면에 깨알 같은 펜글씨가 빽빽이 적혀있다. 그중에서 아래 가운데 1959년에 제작한 <Ecriture rose, 분홍 글씨>는 유일한 작품으로, 성경, 철학, 신화적인 테스트를 그가 이틀간 밤을 새워 캔버스 위에 옮겨 적어 미학적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잘 나타나듯이 그는 이때부터 잭슨 폴록의 <올-오브, all-over>에 매우 근접하는 작업을 한다. 또 이와 같이 접기 방법을 찾기까지 여러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고 연구, 실행하였다는 것도 잘 알 수 있다.
1960-1962년도 <마리알, Mariales>, 이 그림 제목은 마리아의 망토 주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이 시기부터 새로운 그림, <르 쁠리아쥬(Le pliage, 접기, 주름)> 방식을 찾아 본격적으로 실행된다.
그의 이 독창적인 최초의 방식은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미술에 있어서 예술적인 질과 가치, 그 특성과 함께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르 쁠리아쥬 Le pliage(접기, 주름), 이것은 <쁠리아쥬 꼼 메또드(pliage comme méthode, 접는 방식)>의 시적인 놀이처럼 허용된다. 이 방법은 그가 무엇을 그릴지에 대해 미리 알 가능성을 최대한 제거하면서, 그러므로 맹목적이고도, 우연적인 효과가 극대화된다.
흰색 바탕이 칠해진 캔버스(때론 원단)를 실로 촘촘히 묶어 매듭을 만든다. 그리고 원하는 색깔의 물감을 칠하고 마르면 캔버스 천을 펼친다. 작품에 따라 그 작용은 반복되기도 한다. 이렇게 직물에 끈으로 매듭을 이루어 물감을 규칙적으로 부착시키는 방식은 천이 구겨지고, 접히고, 주름이 잡히면서 따라서 접힘은 구겨짐에 의해서 비로소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후, 묶었던 매듭이 풀리면서 캔버스 천 표면은 마법처럼 눈부신 빛으로 드러난다. 거기에는 흡사 빛나는 별처럼, 실이 터져나가면서 부풀어 오른 파열음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 접기 방식의 작업은 시몬 한타이의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 더불어 기념비적인 엄청난 크기, 모노크롬 톤, 그리고 색깔로 노래하는, 명상적인, 이 모든 것들이 거기서 완전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갤러리 1에는 Catamurons(1963-65), Panses(1964-67), Meuns(1967-68), Etudes(1968-71), Blancs(1973-75)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까따무홍(Catamurons), 이 제목은 바캉스를 위해 빌린 집 이름에서 빌려 왔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파란색, 검은색, 갈색으로 표면의 중앙 부분만을 접고, 펴고, 그리고 다시 칠하는, 긴밀하게 매우 밀착된 접기 방식이다. 이것은 작업을 하는 동안 천 가장자리가 뒤쪽으로 접히면서 흰색 직사각형의 넓은 가장자리가 형성되고, 이 가장자리의 작용은 시각적으로 데생 액자처럼 형태를 만든다.
팡스(Panses) 또한 같은 방식의 시리즈로, 불규칙하게 모호한 난형 모양을 생성하며, 그림의 각도는 표면을 침범하여 가장자리의 공백과 함께 다이내믹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작품 먼(Meun)은, 그의 가족이 파리 근교 퐁텐블로 숲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촌락 Meun(먼)에 정착한 이후 작품으로, 제목 역시 그 촌락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때부터 그의 작업은 새로운 접기 시리즈로 나타난다. 복합적인 색에서 자주 모노크롬으로, 캔버스 중앙에서 사각으로, 그리고 복잡한 접기에서 더 단순한 형태를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 헨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종이 자른(1947-1952) 작품과 함께 대면하게 된다.
이것은 한타이의 작업 연구에 근본적인 역할을 한 대가들의 작품을 여기 함께 배치시킴으로써, 그의 접기 방식 작품은 역사와 더불어 20세기 예술의 파노라마 안에 놓기 위한 것임으로 인식된다.
한타이는 마티스의 작품에서 여백이 주는 흰색의 우월성을 적극 도입하여 강조하였다. 거기서 우리는 마티스의 작품 채움과 여백, 부정과 긍정, 음과 양, 위와 아래 등에서 한타이의 접기 작업 먼과 에뛰드, 그리고 블랑 등을 상기시키게 된다.
1968-71년도에 제작한 Etudes(에뛰드, 연구들)는 이처럼 규칙적이고 시스테마티크적으로 실현된, 주로 모노크롬 톤의, 기념비적인 엄청난 크기는 몇십 미터에 도달하기도 한다. 더욱 짓눌린 접기로 날카롭게 강조된 데생은 마티스의 종이 자른 데생 작품에서, 또 표면 전체를 주름지게 함으로써 잭슨 폴록의 올-오브(all-over)로 부터 직접적인 영향의 결과로 나타난다.
갤러리 4 전시장의 <타블라, Tabulas (1972-82)>, 라틴어로 "테이블, tables"을 뜻한다. 이 수직, 수평의 직교 프레임으로 짜인 정사각형 접기 방식 작품은 타일을 연상시킨다. 모노크롬과 여러 색채로 실행된 이 시리즈는 작가에게서 1960년 초부터 시작한 접기 방식 연구의 집약체이며, 정점을 이루는 작업이다. 또한 그의 회화적인 프로젝트에 비추어 이론적이거나 시각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로도 나타난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그의 어머니 앞치마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일층의 큰 전시장 갤러리 5에는 에뛰드, Etudes(1968-71), 레쎄, Laissées(1994-95) 그리고 세리그라픽, Sérigraphies(1984-2004) 작품이 있다.
한타이는 1980년에 이르러 사회적인 명성과 함께 맹목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에 대한 과도기적 에너지 고갈을 느끼면서, 거의 공적인 활동을 중단한다. 그리고는 한동안 작업에만 임하여 또 다른 연구의 새로운 결과를 낳는다. 그것은 엄청난 크기의 Etudes(에뛰드, 연구들) 작품을 부분적으로 자른 <Laissées, 레쎄(1994-95)>와 <Sérigraphies, 쎄리크라피(1984-2004)>다.
세리그라픽(Sérigraphies)와 레쎄(Laissées), 그의 마지막 시기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이것들은 한타이의 작품 중에서 남편과 내가 서로 일치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에뛰드(Etudes) 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게 팽창된 긴장감이 주어진다. 그리하여 장식적이지도 않고, 더 그림 같으며, 따라서 회화적인 힘과 다이내믹한 율동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 작품들을 몇 년 전 부르쥬 공항의 가고시안 미술관에서 이미 보았지만, 다시 봐도 역시 훌륭한 작품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좋은 작품은 아무리 보아도 낡아 식상하다거나 지겹지 않으며 언제든지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는 이 작품에 더없이 찬사를 보내면서, 작업에 대한 충동과 힘찬 욕구가 마구마구 솟아오름을 느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가 자주 전시장을 찾게 되는 것이리라.
갤러리 6의 르 데르니에 아뜰리에(Le Dernier Atelier) 1, 2 그리고 갤러리 7에 타블라 릴라(Tabulas Lilas, 1982) 등이 전시되어 있다.
끝으로, 시몬 한타이를 말할 때 우리는 그의 탁월한 예술성을 발견했던, 작고한, 쟝 푸르니에(Jean Fournier, 1922-2006)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54년 파리에 설립한 "갤러리 쟝 푸르니에" 대표이자 설립자다. 파리에서 뛰어난 작가들 못지않게 그가 현대미술을 알리는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많은 작가들을 발굴하여 훌륭한 작가로 발돋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 작가들 가운데 시몬 한타이가 있다.
시몬 한타이, 그는 현대미술에 있어서 20세기 중반의 역사적이고 중요한, 그리고 훌륭한 대가다. 그러나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다. 따라서 나는 한국에서 미술학도로써 또는 작가로 활동하면서도 그를 알지 못했다. 이후 프랑스에 와서야 비로소 그의 작품을 보았고, 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게도 되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며 동경과 찬사를 보내기도, 좋은 영향을 받고도 있다. 앞으로도 분명 그럴 것이다. 한타이 그 또한 마티스, 잭슨 폴록에게서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