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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Dec 10. 2022

미술 탐방 : 모네와 미첼

(Monet - Mitchell) 전을 보러 미술관에 갔다.



‘Monet - Mitchell' (모네 - 미첼) 전시가 파리의 재단 루이 뷔통 미술관에서 지난 10월 5일부터 다음 해 2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이 두 작가들 작품이 한자리에서 대화를 이루는 건 처음 본다. 사뭇 이례적이긴 하나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미첼 작품을 볼 때마다 자연스레 모네 작품이 떠 올랐고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전시를 보러 갔다.


끌로드 모네(Claud Monet, 1840-1926),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여기서 내가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미술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19세기 인상파의 대가이지 않은가. 그러나 조안 미첼은 모네만큼 널리 알려진 작가가 아니므로 약간 생소할 수도 있을 것이라. 그리하여 모네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생략하고 미첼의 삶과 작품 위주로 얘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전시회를 보고 난 후기도 소신껏 펼쳐 보겠다.


Monet 모네; 수련


내가 조안 미첼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게 20년이 훨씬 넘는 파리 유학시절이다. 그 당시에 자주 드나들었던 퐁피듀 미술관 건물 내 도서관 계단에서다. 도서관을 나와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항상 마주치던 것이 바로 조안 미첼의 그림이었다. 그것은 계단과 계단이 꺾이는 지점의 높은 벽 위에 우아하게 걸려 있었다. 현대 추상 미술. 당시에는 누가 그린 그림인지도 몰랐다. 그냥 좋다고만 여겼다. 공부를 끝내고 돌아갈 때마다 계단 위에 걸린 이 대형 작품을 보면서 잠시나마 기쁨과 위안을 얻었다. 산소 같은 느낌이랄까. 답답한 유학생활에 환기가 되어 주었고, 자주 드나든 도서관의 지겨움도 씻어 주었다. 또 멋진 화가가 되겠다던 내 꿈의 희망적인 동기 유발에 씨앗이 되었다. 한 번은 그림에 시선을 두다가 계단에서 자못 발을 헛디딜뻔한 적도 있다. 그것이 조안 미첼의 그림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후 조안 미첼 작품을 한눈에 제대로 들어다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 계기가 오지 않았다. 가끔 이런저런 미술관에서 한, 두 점 걸린 걸 보거나, 간혹 쟝 푸흐니에(Jean Fournier) 갤러리에서 몇몇 작품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대적인 규모의 작품이 전시된 적은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 프랑스 지방도시 캉에서 조안 미첼 특별전이 열린 적도 있다지만, 그때는 내가 프랑스에 오기 전의 일이다.


조안 미첼(Joan Mitchell)은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2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192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1992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유명한 의사였던 부친 덕분에 부유한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1950년 시카고 인스티튜드 미술대학에서 석사를 졸업한 후, 뉴욕으로 건너와 한스 호프만(독일인 미국 화가)의 학교에서 수학을 했다. 같은 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여행한다. 그리고 당시에 위대한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이 구성된, 여덟 번째 거리 클럽이라고도 하는 뉴욕의 학교에 중요한 회원으로 등록된다. 이 클럽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월리엄 드 쿠닝(Wilhem de Kooning) 등이 그 멤버였으며, 여덟 번째 거리 갤러리로 전환되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그룹이었다.


1955년 조안 미첼은 그의 동반자인 캐나다의 퀘벡 화가 쟝-폴 리오뻴(Jean-Paul Riopelle)과 함께 프랑스에 상주한다. 그녀는 그와의 떠들썩하고도 풍요로운 긴 관계 속에서 각각 예술적인 영감을 나눈다. 이 두 예술가의 풍부한 협력과 그들 사이의 단계는 그녀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첼은 그들 관계의 험한 끝을 자주 대표작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예로 들어 1979년에 그린 장밋빛 인생과 이별 후 2년.

미첼은 파리를 떠나 서쪽 근교 베테유(Vétheuil)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모네가 지베르니(Giverny)로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미첼은 작업에 있어 초기에는 반 고흐, 세잔, 칸딘스키로부터, 그리고 프란츠 클라인과 윌리엄 드 쿠닝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녀의 작품은 미묘함과 섬세함, 그리고 용기와 열정이 풍부하게 잘 결합된 것으로 묘사되며, 붓의 기운찬 터치와 대담성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도착한 후 작품에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그녀의 말대로 "파리지앙적"이라는, 이를테면 붓의 거친 획 대신 정제된 자유로운 선과 넓은 붓의 유연한 터치 그리고 세련된 색상 등이다.


60년대 작품에서는 휘갈긴 듯 날카로운 선과 자유로운 제스처, 강한 터치와 색조가 윌리엄 드 쿠닝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때때로 색의 명도와 채도 대비가 샌 프란시스(Sam Francis) 작품을 떠올리게도 했다. 이후, 작업의 모티브와 표현 방식은 점점 모네 말년의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는 인상을 남겼다. 특히 수련과 버들나무 풍경화를 보면서는 여백과 더불어 여러 겹 중복된 붓의 터치를 몇 겹만 벗겨내면 미첼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또는 마지막 한 겹의 터치를 다른 캔버스에 옮겨 놓아도 그녀의 작품이 될 것 같았다. 이처럼 미첼은 모네가 그렸던 풍경과 종종 직면하여 복합적이고 몰입된 형태를 가진다.



Joan Mitchell 미첼; Mud Time, 1960 / Bonhomme de bois, 1961-1962
미첼; Russian Easter, 1967  / My Landscape ll, 1967
 미첼; 베테유Vétheuil, 1967-1968 / 무제, 1970
미첼
미첼; Bonjour Julie, 1971
미첼; Quatuor ll for Betsy Joals, 1976
미첼; No Room at the End, 1977
미첼; Untitled, 1979
미첼; Two Sunflowers, 1980
미첼; Row Row, 1982
미첼; 베테유 Vétheuil, 1967-1968 / 보리수나무, 1978
미첼; No Birds, 1987-1988
미첼; River, 1989
미첼; Sunflowers, 1990-1991
미첼; Sans titre, 1992


이번 "모네-미첼" 전시를 본 소감은 한마디로 감탄과 더불어 실망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조안 미첼의 작품이 한눈에 펼쳐져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이 만족했다. 그녀의 작품은 대체로 캔버스가 두 개 접한 이부작, 또는 세 폭짜리 삼부작으로 된 대형 작품들이었다. 이 엄청난 크기의 대담성과 열정적인 에너지에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모네의 작품에 있어서는 그의 응당하고 올바른 가치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과 작품 선정에도 무척 아쉬음을 주었다. 훌륭한 작품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들은 하필 전시장에 보이지 않았다.

"모네가 1이라면 미첼은 10을 얻었다"라고 했던 남편의 말처럼, 거의 미첼에게로 기울어진 전시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복합적인 테마를 함께 묶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겠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아 미첼에게 보다 중점을 둔 미첼을 위한 전시 같았다. 일단 작품 수량에서도 우세했다.

다시 말해 인상주의 대가이며 거장 끌로드 모네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를 함으로써 마치 그 대열에 끌어올려놓고서는, 그럼에도 조안 미첼을 오히려 두드러지게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편파적이고 파격적인 기획인가?  


먼저 모네 그림은 미첼에 비교하면 아주 신중하면서 섬세함과 깊이감이 있다. 그러므로 주의 깊게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미첼 그림 옆에서는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당기기에 다소 불충분한 환경이었다. 왜냐면, 미첼의 작품은 즉흥적이며 신경질적이고 갈겨놓은 듯 활기찬 터치와 밝고 자극적인 화려한 색상 대비가 강하다. 그 규모와 크기도 압도적이다.

우리의 눈을 쉽게 현혹하는 것은 은근함이나 섬세함과 깊이감보다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이 우선한다. 양적 크기도 시선을 먼저 끌게 한다. 그렇다고 조안 미첼의 그림이 질적으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모네 그림이 미첼에 못 미쳐서는 더더욱 아니다. 작품에 있어 서로 간의 결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록 음악 옆에서 심포니를 연주하는 격이랄까? 할리우드의 액션 영화와 심오한 예술영화 차이라고 할까?


미첼의 작품은 "단순히 크고 거대한 캔버스"로 특징짓는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현대미술이다. 추상 표현주의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뉴욕을 거점으로 시작된, 이른바 화가의 제스처를 강화했던 액션 페인팅과 색상의 표면 효과를 중시했던, 이 두 흐름을 대표하는 미술 양식이다.

모네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과 사물의 색조나 색채가 시시각각 변하는 그 순간의 모습을 질감과 함께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효과 있게 표현한 19세기 인상주의다.

그러므로 시대적으로나 미술사조로 보아도 그 범위와 해석은 물론 두 작가가 추구하며 실현했던 표현과 방식이 다를 뿐 아니라 시대적 배경도 다르다. 두 작품에서 전해지는 느낌이나 감성도 달랐다.

따라서 이 테마의 콘셉트가 애당초 무리한 성립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전시장을 처음 둘러볼 때만 해도, 나 역시 미첼 작품에 현혹되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현란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터치, 거대한 크기에 내심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원한 터치가 광대한 캔버스 위에서 춤 추 듯한 모습에 가슴이 펑 뚫리는 것도 같았다. 또한 같은 여성 작가로서 그녀의 정열적 기세에 탐복되기도 했다.

반면 모네 작품에는 쉽게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했다. 이미 아는 작품보다 새로운 것에 당기는 호감이었으리라.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래서 확인차 다시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런데 미첼 그림에서 벌써 식상함이 들기 시작했다. 반복된 터치와 제스처, 강한 색상 대비, 이 단순한, 똑같은 패턴에서 이미, 너무 쉽게 지겨움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몇몇 좋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것이 분리되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네의 그림은 그 반대였다. 한 번쯤 눈길이 닿아 머물다 보면 발길을 쉬이 옮길 수 없도록 한다. 아무리 여러 번 보아온 그림이라도 신기하게도 볼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준다.

그 오묘한 색상과 깊이감, 정확하면서도 확고한 그러나 부드러운 선과 터치, 사물에 따라 다양하게 느껴지는 은은한 색감과 질감, 잘 짜인 공간감. 거기에서 평온함과 더불어 박동하는 내적 에너지가 풍겨온다. 강한 집념이 느껴진다.

특히 지베르니 정원에서 그린 말년 작품들은 붓의 놀림이 마치 신들린 것처럼 자유자재롭다. 마구 휘갈긴 듯 보이지만 붓 터치 하나하나가 아주 정확한 곳에서 머문다. 또 그 질감면에서는 사물이 손에 잡힐 것처럼 빠져들게 하여 하마터면 그림에 손을 댈 뻔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서정적인 감성으로만 보였으나 은밀히 명확한 소리를 신중하게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모네구나'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모네; 수련, 연습, 1907 / 수련과 아가판투스, 1914-17 1921-22
모네; 수련과 버들나무 가지, 1916-19
모네; 수련과 반사된 버들나무, 1916-19


모네;  연못의 수련들, 1917-19
모네; 일본 다리, 1918-24
모네; 수양버들, 1921-22
모네; 수양버들, 1921-22
 지베르니의 정원 1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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