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워서 떡을 먹었다.
평소보다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많았던 하루. 지치면서 시장기까지 몰려왔다. 그러나 움직이기는 귀찮고 그럴 힘도 없었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 이럴 때를 대비해 아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찹쌀 영양 모둠떡이 생각났다. 두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프라이팬의 은근한 불 위에서 데우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지만 그럴 겨를도 없었다. 남편과 하나씩 나눴다. '아껴뒀다 혼자 먹어'라 거절할 법도 한데 선뜩 받는다.
카나페 귀퉁이에 머리를 살짝 걸친 후, 기대 놓은 쿠션에다 등을 절반만 받치고 나머지 절반은 등받이에 지탱하여 비스듬히 옆으로 누웠다. 두 무릎은 나란히 앞으로 끌어당겨 왼쪽으로 눕혀 마치 태국의 와불상처럼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묶어두고 쫄깃쫄깃한 떡을 꼭꼭 야무지게 씹었다. 신경은 온통 맛을 음미하는데 자연스럽게 몰두된다. 이 은근하고 고소한 달콤함이 침샘을 자극하여 깊고 오묘한 맛으로 전해진다. 편안한 자세로 먹는 떡은 기묘하게도 그 맛이 더 살아나는 듯하다.
나는 떡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좋아했는지는 딱히 기억에 없다. 유학 오기 직전에 아침식사 대신 가끔 먹었던 기억은 난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성인이 된 이후부터 좋아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프랑스 살면서 남편과 한국을 갈 때, 가끔 밥이나 빵 대신 간단히 떡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남편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케이크보다 달지 않아 간식으로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역시도 결혼 초창기에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찹쌀떡 종류의 진득한 식감이 더욱 거슬린다고 했다. 그런 개인의 입맛도 동거인에 따라 이처럼 변하고 달라지나 보다.
나는 겨울만 되면 더 자주 떡 생각이 난다. 아마도 노스탤지어 탓이리라. 설 명절이 있고, 따뜻한 아래 목이 그리운 계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먹었던 추억과 고국의 향수 때문이리라. 그리고 추운 겨울날 체력이 떨어지면서 칼로리 보충으로 더욱 생각나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빵보다도 하필이면 손에 닿지 않는 떡이 더 먹고 싶어 진다. 참으로 유별나고도 까다로운 성격에 무서운 향수병이다.
얼마 전에는 슈퍼에서 대만산 일본 찹쌀떡을 샀다. 한입 먹어보고서는 그대로 냉장고 안에서 말라가고 있다. '모찌'라고 적힌 단어에서 유년의 추억이 떠올라 혹해서 샀지만, 팥소가 아닌 치즈 소가 들어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오래전에 한국 슈퍼에서 시판되는 한국산 떡을 샀던 적도 있다. 그건 너무 달아서 먹기가 거부했다.
또 어느 해에는 같은 동포가 운영하는 떡 공장에서 모둠 떡을 주문했던 적도 있다. 말린 대추와 여러 곡물이 들어간 영양 모둠 찹쌀떡이었던 것 같다. 오래되어 세세한 것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씹을 때 삼키기조차 불쾌한 곰팡내가 났던 것은 또렷이 기억한다. 묵은 대추에서 났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실망은 지울 수가 없다. 아마도 한국에서 바로 공수된 재료가 아니라 파리 중국 슈퍼에서 구입하지 않았을까는 추측도 했었다. 한국산 재료를 사용하기에는 경제적 문제가 따를 테니까. 그렇다고 결코 저렴하지도 않았다. 물론 우연이었을 수 있다. 내 입맛이 까다로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큰마음먹고 시킨 떡을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여기서 더 이상 떡 주문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한국 갈 때마다 실컷 먹고 오던지, 가방에 여분이 생기면 싸들고 오기도 한다. 때론 파리 한국 식품점에서 장을 볼 때, 팔다가 유효기간이 임박한 떡을 서비스로 주면 그것으로 대신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보니 요즘 들어서는 그런 일도 없었다.
어떻게 내가 이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산 맛 좋은 떡을 먹을 수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인데, 구구절절 서두가 참으로 길었다. 나는 그것을 선물로 받았다.
이 선물은 지난가을에 한국 사는 친구가 직접 들고 왔다. 내 입맛에 따라 특별 주문한 맞춤형 떡이다. 영양과 풍미는 물론이고, 시각적으로나 편리함까지 고려된 고급진 것이다. 아니, 도저히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정성이 가득 든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별미다.
그 발단은 다음과 같다. 갑자기 친구가 프랑스 여행 계획을 알려왔다. 당연히 환영했다. 몇 년 만의 만남이라 더욱 들떴다. 서로 안면을 튼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코로나로 재회가 더 어려웠다.
처음 우리가 만난 건 몇 년 전 한국행 비행기에서 서로 옆좌석에 앉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세 번째 만남을 기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얼굴을 맞댄 건 고작 두 번이지만 그 두 번의 만남은 깊었고, 이후 꾸준한 소식으로 신뢰와 정을 쌓고 있었다.
친구 말에 따르자면, 우리의 만남은 우연보다 짙은 운명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친구가 스페인에서 한국 직항 티켓을 구하지 못해 파리를 경유한 덕분이었고, 동행한 큰 딸과 나란히 앉을 좌석이 없었던 덕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약 11시간을 비행하던 동안 삶의 진솔한 대화를 길게 나눴고, 서로가 동감하며 통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니, 동생으로 발전하여 친구 사이가 된 것이다. 우연도 두 번 이상 겹치면 우연이 아니듯이.
따지고 보면 만남의 횟수보다 서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먼저다. 도량의 깊이가 중요한 것처럼. 세월만으로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본다고 해서 친구도 아니듯이, 자주 보는 친구만이 친구도 아닌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친구가 드디어 파리행을 결정하고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언니, 외국 살면서 필요한 게 고춧가루 같은 것이라고 들었는데, 언니도 필요하죠?"
"나? 나는 매운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고춧가루 사용은 아주 드물고 적어요"
"그럼 다른 거 뭘 들고 가면 좋을까요. 언니 필요한 거 말해 주세요?"
"뭘 성가시게 들고 와요. 그냥 와요. 웬만한 건 여기도 있어요"
"그래도 필요한 게 있을 텐데, 말해 주세요?"
"아휴 괜찮아요"
"언니, 내가 안 괜찮아요. 꼭 필요한 거 들고 갈게요"
"귀찮을 텐데..."
"귀찮지 않아요"
"그럼 솔직히 말할까요. 뒤늦게 후회하면 안 돼요?"
"그럼요. 당연하죠. 언니가 필요한 걸로 들고 가면 후회보다는 뜻깊죠"
"떡, 떡이요. 떡집에서 만든 모둠떡"
나는 떡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내면에 잠재되어있었던 단어였던가 보다. 아니 앞서는 조금 주저하기도 했었다. 귀찮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자주 떠나는 입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여행 준비야 둘째 치고라도, 집에 남는 사람에게 자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도록, 적어도 그 공간을 메우고 채워 놓자면, 출발 전에 할 일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럼에도 친구가 내 청을 듣던 순간 거절할 수 없는 애틋하고도 짠한 울림이 생겨났던 것이리라.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고 했던가.
친구가 말했었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었다고. 그래서 내 요청은 더 애잔하게 들렸고, 내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할 것 같았다고. 그토록 자신도 임신 중에 먹고 싶었던 음식이 있었는데, 아주 소박한 것임에도 손쉽게 닿지 않아 더 절실히 그리웠던 음식. 그때의 순간을 되살렸단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했단다. 준비하는 내내 즐거웠다고도 했다. 분명히 그것은 깊은 사랑을 할 때, 그것을 나눌 때 느끼는 행복감이었으리라.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친구의 가방 속에는 친구의 품격은 물론 따뜻한 품성이 고스란히, 그리고 나를 위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속에는 떡뿐만 아니라 먹기 좋은 일회용 김과 들개 가루, 잔멸치까지 내 몫의 짐이 가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감탄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 이후부터다.
떡을 냉동실에 넣으려고 플라스틱 박스 포장을 뜯었더니, 그 안에서 은박 보냉백이 나왔다. 그 속에 떡이 들어 있는 것이다. 다시 보냉백을 열었다. 그런데 먹기 좋게 딱 적당한 양으로 일회분씩 낱개 포장된 떡은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여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편리함까지 더해 완벽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떡 한가운데에 두 개의 아이스팩이 또 끼어 있었다. 혹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떡이 상할까 봐 신중을 기해 이중 삼중 조치를 했던 것이다. 비록 상할 정도의 거리가 아닐지언정, 떡 고유의 맛을 헤치지 않고 보다 좋은 상태로 맛보게 하려던 정성 어린 친구의 마음이었으리라. 거기에서 그녀의 진심과 더불어 깔끔하고 정갈한 성품까지 묻어났다. 어찌 그 마음 씀씀이에 탄복하지 않겠는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순간, 친구가 떡을 준비하던 일련의 과정들이 내 눈앞에 선 하게 그려졌다. 그 가벼운 몸놀림과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섬광처럼 스쳤다.
떡은 맛과 원형에도 전혀 변함없이 잘 유지되어 아주 신선하고 좋았다. 즉석에서 포장지를 뜯어 남편과 함께 맛보았다. 바로 내가 원하던 그 맛이다. 화려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달지도 짜지도 않고, 밋밋한 듯 미미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소금 간과 단맛의 조화로움, 수수하면서도 세련된 맛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맛이었다. 이 부드럽고 섬세한 맛은 씹을수록 고명들 각각의 고유함이 깊고 은은하게 우려 났다.
정사각형의 찹쌀떡, 그 위에 노란 밤을 중심으로, 땅콩 및 각종 콩들과 잣, 호박씨, 말린 호박 등이 촘촘히 조화를 이뤄 맛깔스럽게 얹혀있다. 그 고명들은 분명 고국의 맛이었고, 그리운 맛이었다. 특히 아득히 잊혔던 햇 땅콩의 맛. 이 맛을 씹어 본 지가 얼마만이던가. 그 느낌이 되살아 났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도 틀리지 않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 하나씩 꺼내 먹다가 벌써 삼분의 이가 사라졌고, 긴급한 순간을 위해 아껴 두었던 것을 오늘 꺼냈던 것이다. 올 겨울은 어느 해 보다 춥지만, 이 덕분에 부자 된 마음으로 포근하게 보낸다.
친구에게도 다시 한번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