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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Jan 07. 2023

루브르 미술관; 네덜란드 회화

렘브란트(Rembrandt)와 베르메르(Vermeer)



생-딴느 길을 빠져나와 오페라 대로를 걸어 히볼리 가로 접어든다. 루브르 박물관 가는 길이다

오랜만에 이 길을 걷는다. 그만큼 한국식품점에서 장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국 슈퍼마켓에 가는 날은 루브르 미술관을 방문하는 날이기도 하다. 루브르를 가까이 두고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장만 보기에 너무 노동 같아 건조하고, 외식만 하기에도 공허해서 예술이라는 달콤한 디저트가 필요한 것이다. 장도 보고, 외식도 하고, 그림도 감상하고. 


우리는 장 본 물건들을 자동차 드렁크에 실어 놓고 루브르까지 또박또박 걸었다. 루브르에 도착해서 보니 입구 맞은편 작은 광장에는 난데없이 생겨난 텐트촌으로 많은 행인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색색의 알록달록한 텐트들이 어설픈 아마추어 예술가의 설치미술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무주택 불법 이민자들의 시위였다. 문득 생각해 본다. 왜 하필 루브르 앞인가? 

그것은 파리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니까 이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마치 어떤 자책감이라도 느끼게 하려는 것처럼. 따라서 우연한 경위로 생겨난 게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 예쁘고 말끔한 텐트 때문인지 애석하게도 안타까운 마음이나 동정심이 선뜻 우려 나지 않았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마도 지나치게 조직화된 시위로 선입견이 생긴 탓이리라.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일요일인 관계로 피라미드 아래 중앙 홀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로 북적됐다. 코로나 19 방역 체계도 해제되어 예전처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행객들로 혼잡을 이루는 모습이다.

"오늘은 뭘 보고 싶어?"라는 남편의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중, 우즈베키스칸 예술품 전시 포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그쪽으로 자연히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입구에 닿자마자 먼저 불쾌감이 밀려왔다. 입구에서부터 적잖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다. 비좁고 깜깜한 공간에 사람은 많고 조명까지 어두워 작품은커녕 앞도 가리기 어려웠다. 

우리는 얼른 나와 관람객이 적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 네덜란드 회화관으로 향했다

아무리 북적되는 날이더라도 모든 전시관이 붐비지는 않는다. 루브르 박물관의 장점이기도 하다. 더구나 각 방마다 곳곳에 훌륭한 명화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관람객이 적은 방을 찾아서 얼마든지 조용히 감상할 수가 있다. 그리고 제아무리 자주 와도 어마어마한 소장품 덕분에 언제나 새롭게 느껴지며 볼게 풍성한 곳이다. 도중에 우리는 프랑스 조각관을 건성으로 한 바퀴 돌아보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네덜란드 회화 관에 닿았다.


네덜란드 회화관 역시 루벤스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의 그림들이 여러 방에 방대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중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 작품은 다름 아닌 17세기의 거장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요하네스 베르메르(또는 얀 베르메르)의 <레이스를 뜨는 소녀>다. 아쉽게도 베르메르의 두 대표작 중 하나인 <천문학자>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루브르에 가고 없었다.


베르메르(Vermeer, 1632-1675))와 렘브란트(Rembrandt, 1607-1669), 이 두 작가는 네덜란드의 경제적, 문화적, 예술적 황금시대로 알려진 17세기 대표적인 빛의 화가다.

사실인즉 베르메르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경위는 19세기 후반에 프랑스 미술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떼오필르 또레-부르제(Théophile Thoré-Burger)가 1866년 출판된 까제뜨 데 보-자르(Gazette des beaux-arts에 그에게 헌정하는 일련의 기사가 실리는 순간부터다. 이후 역사가들은 그의 작품이 오랫동안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작품수도 적을뿐더러, 생계를 위해 화가 외 다른 직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 추정이다. 그가 약 20년 동안 그린 작품은 현재 알려진 바로 고작 45점에 불과하다. 그중 대부분이 소품이며, 그러나 오늘날 모든 작품이 거의 대표작으로 통한다. 그중 루브르에 두 점이 소장되어 있다.   

베르메르는 그동안의 화가들이 작업실 안에서 인위적인 빛에 의하여 짙은 갈색톤 바탕색 위에 그렸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자연 광선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그와 같이 자연 광선으로 그린 화가는 이후 18세기 영국 화가 터너(Turner)의 그림에서 약간 나타났던 것을 제외하면, 19세기 인상파가 탄생하기까지 베르메르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베르메르는 자연광선으로 그린 최초의, 완전한, 발명가로서 화가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역사상 아주 중요한 화가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주제는 햇빛이 비스듬히 창문으로 들어와 실내를 비추고, 그 빛 아래서 일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예를 들어 <레이스를 뜨는 소녀>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 역시 아주 작지만 대형 그림에 비길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발하는 그야말로 보석처럼 빛나는 보물이다. 그림 속 사물들은 빛을 받아 매우 선명하고 세밀하다. 밝고 어둠의 명암 대비가 뚜렷이 나타난다. 실오라기 하나하나가 마치 실재 같은 느낌에 놀랍다. 광선에 비친 한 올 한 올의 실, 그 선을 따라 지나가는 붓의 세밀한 흔적을 상상하면 손이 굳어지게 숨이 막힌다.   

다시 말해서 그의 그림은 자연 광선에 따라 투시적으로 보이는 실재 모습을 그대로, 아무런 꾸밈도, 전혀 과장 없이 그린, 살아있는 그 자체다. 그러므로 이 색감은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를 내지 못한, 솔직한 그만의 독특한 표현인 것이다. 그 색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조합은 편안하며 고요하게 느껴져,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아름답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레이스를 뜨는 소녀, 1669-1670


렘브란트(1607-1669),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의 거장, 빛의 화가이자 판화 가다. 그는 약 400여 점의 회화와 300여 점 판화, 300점의 데생 작품을 남긴, 인물화의 대가이며, 많은 자화상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일컫는데 기여한 네덜란드의 위대하고 중요한 화가다. 그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 네덜란드 회화관에서도 한 방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방에 꽉 찬 작품들 가운데서 특히 자화상 한 점은 대표적으로 훌륭하다. 이 작품은 1971년에 루이 16세가 취득해서 소장했던 것으로. 여기 전시된 몇몇 자화상 중에서도 으뜸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 작품 앞에는 한 팀의 관람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떠날 때까지 잠시 옆방에서 기다렸다. 작품을 조용히 감상하기 위해서다.  

렘브란트 작품의 주요한 특징은 빛과 어둠의 강한 대조적 집합으로 기묘하게 시선을 당기는 점이다. 이것은 이탈리아 작가 카라바죠의 기법에 영감을 받은 명암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렘브란트는 네덜란드를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동시대의 매끄럽고 완성된 스타일에 반대하여 물질성과 거친 붓의 자유자재한 터치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그림의 장면들은 강렬하면서도 활기차다. 그는 17세기 대부분의 네덜란드 거장들과 달리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들을 표현했다. 

그는 말년에 개인적인 비극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지만, 그의 빈곤함은 나이가 들면서 인물들의 표현에서 연민과 인간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림은 대체로 짙고 어두운 톤이지만 우울하고 무겁게 느껴지기보다는 포근하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 약간의 주홍빛이 도는 짙은 갈색과 검은색을 자주 사용하면서 빛과 어둠의 대조를 더 확실히 나타냈다. 또한 그가 사용한 검은색은 그 어떤 색보다도 아름답고 고귀하면서 품위가 있다.

특히 말년에 그린 인물화에서는 마치 신의 경지에 이른 듯 붓의 터치가 예술의 절정을 이룬다. 앞서 사실적인 형태와 매끈하고 정밀한 표현과는 달리 다듬지 않고, 붓놀림과 터치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리고 인물과 사물, 표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일정한 부분만이 강한 명암 대조로 더욱 뚜렷한 공간감과 깊이감이 형성된다. 마치 이것은 추상화로 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나는 그동안 렘브란트 작품을, 특히 인물화를 모스크바, 뮌헨 등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인상적이게 보았지만, 그중 몇 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레이크스(Rijks) 국립 미술관에서 열렸던 렘브란트 특별전이 가장 감동적이다. 이 보기 드문 렘브란트 특별전에는 그의 작품세계 전체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전시된 작품수가 방대함은 물론, 연대별 변천하는 모습을 한눈에 쉽게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때의 감동은 수많은 관람객들의 어수선함 만큼이나 컸을 뿐 아니라, 아직도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지 기회가 닿으면, 대가들의 특별전은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화가의 예술세계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역시 작품 초기에는 붓 터치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 정교하다. 그러다가 세월이 점점 흐르면서 붓놀림은 빨라지고 색조가 깊어지면서 자기 통제와 제어도 느슨해지는 듯하다. 이것은 의도적인 기교와 계산을 뛰어넘어 자신을 제어하는 장치가 거의 필요치 않을 정도의 경지에 닿았다는 뜻이다. 오직 그의 내면의 역량과 힘으로 이루어진, 영혼의 붓놀림이었다. 

모든 화가들이 가고자 하는, 소수의 대가들이 걸었고, 닿았던 길이며, 경지다. 자유로움!

여기 루브르에 소장된 자상화도 그 예술적 경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렘브란트, 이젤이 있는 자화상,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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