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4

노토

by 다나 김선자



시라쿠사에 지내는 동안 하루를 이웃의 아름다운 도시 노토에서 보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반 가량 달려 노토에 도착했다. 거리상으로는 80km 남짓하나 버스가 자주 정차를 했고, 덕분에 평범한 소도시의 삶도 살피게 되었다. 정체된 삭막한 분위기였다.

노토는 시라쿠사 현에 위치한 약 24,000명의 인구가 사는 작은 도시다. 1693년 지진으로 파괴된 이후 18세기 들어 시칠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완전히 재건되었다. 현재 건축학적 통일성을 높게 평가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노토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수직과 수평의 도로를 만들어 경사지 가운데 중심 도로에는 주요 교회 및 중요한 수도원과 명망 있는 귀족들의 저택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노란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화려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었고, 외관은 물론 건물 발코니에 단철로 만든 난간의 우아한 곡선과 조각 장식들을 보면서 당시 이 도시에 살았던 귀족들의 풍요로운 취향을 한껏 엿볼 수 있다. 이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18세기 귀족의 일원이 된 황홀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 아름다운 거리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은 듯 조용하고 방문객의 내왕도 드문드문하다. 그래서인지 흡사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아니나 다를까 좋아하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정사, 1960>의 배경이 된 곳이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피자 가게만 보인다. 피자는 지겹고, 이렇게 날씨가 우중충한 날은 피자보다 좀 더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서둘지 않으면 끼니때마저 놓칠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의 소도시, 특히 관광 비수기에점심때가 지나면 식당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는 수 없이 적당한 곳에 들어가 피자 두 조각과 음료수를 시켰다. 그런데 맛이 너무 없다. 주말에 팔고 남은 것인지 신선도가 떨어진 데다 충분히 데우지도 않아 미적지근하다. 가격도 나쁘다. 주인이 친절하지도 않다. 손님이 적어서일까? 식당 선정이 잘못된 것일까?

시칠리아에서(물론 이탈리아에서) 피자는 언제 어디서든지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지극히 서민 음식이다. 파리에서 바케트(빵)로 만든 샌드위치 격이랄까. 대체로 맛도 좋다. 그런데 오늘, 노토에서만은 아니다. 하물며 팔레르모의 슈퍼마켓에서 산 피자도 이보다는 더 맛있었다.

그저께 먹었던 시라쿠사 중심지인 두오모 광장의 대성당 맞은편에 있는 입지 좋은 고급레스토랑에서도 피자 한판이 겨우 10유로였다. 좋은 위치임에도 그 겸손한 가격에 솔직히 놀랐었다. 사실 그 정도의 가격은 하얀 식탁보가 곱게 깔린 테이블 값으로도 또는 입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던 것이다. 게다가 피자 한판의 크기와 량이 굉장해서 절반도 못 먹고 싸 들고 왔었다. 포장까지 정성스러워 황송하고 미안할 정도였다. 아무렴 관광지일지언정 노토는 소도시에 불과하지 않은가?

시칠리아의 생활물가는 대체적으로 매우 싼 편에 속한다. 이탈리아에서 나폴리 다음으로 저렴하지 않을까 추정한다. (나폴리가 이탈리아 도시 중 가장 저렴하다 함)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삼키고 나왔다. 맛보다 시장기를 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걸었다. 계속해서 입 안이 깔끄럽다. 아쉽고 찝찝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후식으로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씩을 시켰다. 또 실망. 결코 위안의 맛은 아니다. 날씨 탓인가? 내 마음 탓인가?

걷다가 우연찮게 옆 건물과는 좀 색다른 창문을 보았다. 감옥이었다. 이런 용도의 건물이 도심 주택가에 있다는 게 경아스럽다. 더군다나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의 관광도시가 아니던가. 호기심이 발동한다. 처음에는 건물 외곽 귀퉁이마다 서 있는 초소가 폐쇄되어 사용이 중단된 것인가 했다. 그런데 아니다. 감시용 카메라로 대체되었을 뿐 소리가 들린다. 안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아직 운용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설마 하는 마음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본다.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선별되었을 거라고...

도시를 돌아보다가 남편이 문득 어느 프랑스 부자가 팔라초(궁전) 건물을 사서 개조했다는 정보를 알려주어 찾아보기로 했다. 로렌조 칼텔루치오 궁전이다. 겨우 건물은 찾았지만 문이 꽉 닫혀 있다. 겉으로 보아 특별한 점도 없다. 그만큼 튀지 않게 자연스러운 개조가 마음에 와닿는다. 그리고 중심가를 벗어나 위쪽으로 올라 갈수록 종종 빈집이 목격된다. 혹여나 이 아름다운 곳이 진열장 도시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생긴다. 안타까운 현실이 되지 않기만을 내심 바라본다.

잔뜩이나 흐리고 어둡던 하늘이 새까맣게 먹구름으로 뒤덮인다. 서둘러 내딛는 발걸음 앞에 뚝뚝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하나 둘... 순식간에 우두두둑하고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 한 끗 차에 건물 처마밑으로 피신했다. 우르릉 쾅쾅 도시를 삼킬 것 같은 요란한 천둥, 불꽃 튀는 번갯불. 거리에 인기척 하나 없다. 우두커니 맞은편 이 층집 덧창문 닫는 모습을 바라본다. 미묘한 감정에 젖는다. 온몸이 오그라든다.

으스스 춥다. 꽤나 긴 시간 서 있었던 것 같다. 바닥을 때리며 튕겨 오르는 물방울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 그렇게...

다시 잠잠해지는 도시, 비의 기세도 한풀 꺾인다. 후드로 머리를 감싼 채 약해진 빗방울을 맞으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IMG_6770.jpg 중심도로의 광장
IMG_6795.jpg 중심 거리
IMG_6776.jpg 중심 거리
IMG_6771.jpg 대성당
IMG_6772.jpg 대성당
IMG_6775.jpg 산 카를로 보로메오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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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780.jpg 감금의 집 (감옥) 정문
IMG_6778.jpg 감옥
IMG_6779.jpg 폐쇄된 초소가 보이는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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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o_-_Palazzo_Nicolaci_di_Villadorata_-_1.jpg 발코니의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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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797.jpg 로렌조 칼텔루치오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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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o_2008_IMG_1442.jpg 시립 극장
NotoSR-Porta_Reale.jpg 로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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