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적힌 하얀 선물 봉투
"띠띠뜨, 정말 안 갈래?"
"응, 너무나 피곤해서 못 갈 것 같아, 당신도 알잖아, 내가 어제 너무 무리했다는 거"
"쉐크(chèque, 현금 수표), 쉐크는, 쉐크 싫어?"
"무슨 쉐크?"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뜻밖의 단어에 어이없다는 듯 되받아 묻는다. 남편은 내가 모른다는 점이 믿기지 않은지 의미심장하게 엷은 미소를 띤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언뜻 '아, 그거!' 하고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스치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아닐 수도 있는지라 하지만 내 생각이 확고 불발이라는 충동까지 포함하여, 내 속물적 근성을 미리 드려내거나 들키지 않으려고 태연히 의뭉을 떨었다.
"쉐크, 무슨 쉐크?"
남편은 내가 정말 모르는지 여전히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내 눈치를 살피며 아주 짧고 간략하게 슬쩍 내뱉는다. "새해 선물..."
나는 비로소 생각났다는 듯이 "아, 그거, 그런데 설마 기억하고 계실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새해 선물을 남편이 주는 것도 아닌데, 행여나 내 말에 영향을 받아, 그의 생각과 기대가 바뀔까 봐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얼른 덧붙였다.
"만약에 당신 어머니께서 잊지 않고 주신다면 당신이 내 몫까지 챙겨 오면 되지..." 하고 어설프게 말꼬리를 쭉 빼면서 강제성은 없으나 가능성을 내포해서 말했다.
그는 아무 말이 없다.
일요일은 남편이 시어른들 뵈러 가는 날이다. 해가 바뀌자마자 전화상으로 새해인사를 드렸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직접 찾아뵙자는 뜻이다. 사실 나는 어제 친구들 초대한 후 육체적으로도 적잖이 지쳐 꼼짝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확실한 변명으로 그 이유를 정당화시키고도 싶었다. 그렇기는 하나 괜스레 그와 같이 못 가는 게 미안해서 분위기도 바꿀 겸 에둘러쳐 말했다.
"어차피 에피파니(Epiphanie, 가톨릭 축일) 날 갈 텐데, 난 갈레뜨 데 호와(galette des rois) 사들고 다음 주 일요일 갈래" (나는 에피파니가 다음 주 일요일이라 생각했었다.)
"알았어, 쉬어, 나만 다녀올게"
"당신 잊지 말고 내 선물도 챙겨 와 줘, 부탁해"
시부모님께서는 새해를 포함하여 일 년에 두세 번 우리에게 쉐크(현금 수표)가 든 하얀 봉투를 선물로 주신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새해와 여름 바캉스 때만 주시던걸, 연로하여 생일선물을 직접 사러 갈 수 없는 해부터는 우리들의 생일날까지 수표가 든 봉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평소 초롱초롱하시던 시어머니 정신이 쇠약해진 이삼 년 전부터는 일 년에 세 번 주시던 선물이 한두 번으로 들쑥날쑥 예전처럼 잘 지켜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해가 되었어도 선물을 받겠다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남편은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여자인 나보다 상황판단이 느린 건지, 통찰력이 둔한 건지, 단순한 탓인지, 아님, 또 다른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그동안 시어른이 때마다 주신 하얀 봉투 선물 덕분에 망설이던 겨울 장만을 톡톡히 하거나,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 아주 큰 액수는 아니지만 웬만한 나라를 갈 수 있는 왕복 이코노미석 항공권 구입이 가능할 적지도 않은 금액이라 우리의 여행길에 넉넉한 보탬이 되었다.
봉투 선물이란 우리의 짜인 생활계획표에 없었던 것이 덤으로 생긴 것이다 보니 받을 때마다 그 금액을 떠나, 설레던 마음에서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으로, 새로운 계획을 풍성하게 세우는데도 큰 윤활유가 되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 즉 내 시부모님이 주시는 선물에 감사함은 당연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의 현명하고 지혜로움에 더 큰 감흥과 교훈에 방점을 찍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선물의 목적과 방식, 그리고 시기의 적절함이다.
선물이란 주는 사람 마음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 역시 유쾌하고 쓸모 있어야 그 가치가 발휘되고, 증폭되기도 한다. 때와 목적은 물론 그것을 최대한 잘 활용했을 때 마침내 그 빛이 발하여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절로 생긴다.
현금선물 또한 적절한 시기에 꼭 필요할 때 마찬가지 그 의미는 더 값지게 된다.
우리가 선물을 받기 시작할 즈음, 남편과 나는 작업량이 늘어나 재료구입도 많아졌고, 자주 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의 쓰임새가 많아졌던 시기에 이 하얀 봉투가 주는 느낌은 저녁녘 LED 전등불을 밝힌 것처럼 환하고, 겨울철 벽난로같이 따끈따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옹색했던 여행에서도 조금은 벗어나 편안한 숙소에서 짐을 풀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선물을 주는 시어른들 역시 당신들의 육체적 근력이 떨어지는 만큼 뒤편으로 결코 물러서지 않으면서 정신적 기력은 여전히 강함을 스스로에게 과시, 만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이것은 지혜로움의 간접적 수단이었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의 능력이나 권력이 여전히 건재하여 행사할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을 현명한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있다는 암묵적 표현이다. 숨만 쉬는 정도를 넘어서 진정 살아있음에!
우리 또한 선물이라는 물질적 효험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것들까지 해석하여 무상한 세월에도 그들의 강건함에 감사하며, 사랑과 존중으로 당신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해마다 찾아오는 하얀 봉투의 깜짝 선물에서 생겨난 기쁨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다녀온 여행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와 메마르지 않은 대화의 물줄기를 이어가기도, 당신들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기쁨은 선물을 받는 우리만이 아니라 주시는 시어른들과도 나누며 다 같이 즐기는 것이 되었다.
십수 년 전 새해를 맞은 어느 날, 예년과 마찬가지로 시댁에서 가족 정찬을 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우리는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각자 자기 자리에 앉으려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을 때, 테이블 위, 잘 차려진 접시 안에는 볼펜으로 이름이 적힌 하얀 봉투가 다소곳이 놓여 있는 게 눈에 쑥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목소리로 작은 의문을 덧붙여 "이게 뭐죠?" 하며 봉투를 들었을 때, 시어머니께서 조용히 웃으시며 설명하셨다.
"이제 우리는 너무 늙었다. 그래서 먼 여행은 떠날 수가 없단다. 우리 대신 너희들이 즐겨주길 바란다. 이것은 너희들에게 주는 우리의 작은 선물이다"
시어머니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의외의 아름다움 앞에서 밀려오는 감동, 이어 연고 하신 그들에 대한 애잔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데 문득 동시다발적으로 내 명치끝에 와 닿는 서운함이 생겨나지 않은가! 아주 찰나에 나는 "어, 내 몫은? 내 접시에는 봉투가 없는데? 왜 내것은 없어요?" 삽시간 나온 말이었다.
한순간 시어머니의 당황한 모습 "그러게나 말이야, 내가 봉투를 따로 만들자고 했는데, 피에로가..." 시아버지를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내시며 하신 말씀이다.
나는 어디서 이런 용기가 솟아났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내가 그동안 며느리라는 사실을 까마득 잊고 있은 듯하다. 시어머니께서 가끔 내게 하셨던 말처럼, 내가 며느리 이기전에 가족의 일원으로써 그분들의 딸처럼 여기며 살았던 것이다. 또한 그들 아들, 누구의 아내이기 전에 개인이라는 평소에 내 독립적인 사고가 여기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왔던 것이리라.
남편이 봉투를 내게 건네면서 "여기에 당신 이름도 함께 적혀있어. 자, 이거 당신이 가져?"
"이리 다오, 네 봉투를 별도로 만들어 줄게" 시어머니께서 '내 실수 다'는 난감한 표정이 되어 말하신다.
"아뇨, 괜찮아요. 이미 내 몫까지 넣어 만드셨는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편에게 종속된 나로 생각한다는 섭섭함과 동시에 '아차 나는 며느리지'하고 보편적 유순함을 따르지 않았던 내 억지스러움에 겸연쩍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며느리? 하지만 결국 며느리잖아?라는 속마음을 영 떨구지 못하고 이 교차된 복합적 심정을 그냥 고이 접어서 삼켰다.
그 이후부터 시부모님께서는 해마다 내 이름이 적힌 봉투를 똑같이 각자의 접시에 놓아두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꾸준히 일 년에 두세 번의 하얀 봉투 선물을 받아왔었다.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 그는 소파에 여전히 누워있는 나를 보고서 "아직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니?" 나는 그가 나갈 때 누워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화장실은 다녀왔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솔직한 농담에 그도 나도 어이없어 함께 웃었다.
"그래서, 선물은 받았어?" 내가 먼저 물었다.
"아니"
"그것 봐, 시어머니 기억도 예전 같지 않다니까"
"맞아, 너무 노쇠하셨어"
"난, 벌써 느꼈는걸, 작년 내 생일선물도 잊고 계시다 늦게 주셨잖아"
"맞아"
남편이 힘없이 말한다. 그의 속된 기대에 대한 쑥스러움인지, 부모님에 대한 애틋하고 애처로운 마음에서 인지 그 깊은 속을 난들 알 길 없지만, 물어보는 것 또한 예의는 아닌 듯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속으로 한편 쾌재를 불렀다. '하하, 나만이 속물은 아니었구나, 그도 나처럼 속물적 근성이 있구나' 그동안 자주 선비 같은 그에게 비해 내 미천하고 이기적인 마음에 죄책감 같은 회한이 들기도 했었다. 혹여 내가 시어른들의 선물에 현혹된 내 가식적 친절함은 아닌가 하고?
아니다. 어쩜 나도 그도 이 나이까지 부모님 선물을 받는 속물 일지는 모르나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람이기에 지극히 기대할 수도 들 수도 있는 그야말로 인간적 근성, 마음이지 않을까? 이렇게 긍정적 생각도 스스로 놓치지 않고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