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 댁에서 부당과 포-토-푸를 알다

프랑스 전통음식

by 다나 김선자



비의 계절 파리에서 첫눈이 내린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소복소복 쌓인다. 세상에서 가장 흰색으로 온 세상을 덮는다. 이 고즈넉한 풍경, 아름답다는 말보다도 더 순결하게 아름답다.

눈 오는 날, 남편이 준비한 점심 요리는 부당에 삶은 감자와 수 드 브뤼셀(choux de Bruxelles, 채소 이름) 그리고 한잔의 포도주와 콩데(Comté, 치즈 종류), 우리는 성긴 눈발을 바라보며 별미처럼 먹는다.


내가 부당을 처음으로 먹었던 곳은 아주 오래전 노르망디 르 떼흐트르(le Tertre)에서였다. 나와는 밀접한 관계가 없었던 그곳이 우연찮은 계기로 내가 프랑스 요리에 꽤나 인연을 만든 곳이 되었다. 바로 부당(boudin )과 포-토-푸(pot-au-feu).

이 두 프랑스 음식은 재료상 한국 요리와 유사점이 있어서인지 별로 낯설지도 않으면서 한국사람 입맛에 그다지 거슬리지 않게 아무튼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내가 이 음식들과 연계성을 맺은 곳, 즉 떼흐트르를 가게 된 동기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어느 날, 프랑스 노벨문학상 작가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생전에 살았던 노르망디의 르 떼흐트르(le Tertre) 성에서 프랑스 및 이웃나라 강연 인사들이 참석하여 마르탱 뒤 가르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와 그에 관련된 강연이 있었다. 초청강연자 가운데 남편의 철학 스승이신 프랑소와께서 우리를 그 강연에 초대했다. 또한 노벨문학상 작가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랭스(Reims, 파리 동북쪽 도시)에 사는 우리의 친구 세실의 증조할아버지다. 그리하여 우리는 겸사겸사 그곳을 가게 되었다.

떼흐트르 성은 세실의 숙모님께서 물려받아 관리하며 거주하고 있었다.

오후 강연이 끝나고 초청강사들은 다 같이 떼흐트르 성 별채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는데, 세실의 권유로 우리도 그 자리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때 나온 메뉴가 부당이었다. 부당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순대 같은 것이지만, 프랑스 부당에는 돼지 피에 당면 대신 사과를 섞어서 만든다. 그리고 탱탱하고 달콤한 검정 부당에 뿌헤 드 뽐 드 떼흐(purée de pommes de terre, 으깬 감자)를 곁들여서 칼로리는 물론 영양가 높은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때 내가 처음 먹었던 부당에는 으깬 감자가 아닌 특유의 노르망드식으로 사과를 입체적으로 잘게 썰어 갈색으로 기름에 살짝 익혀서 나왔다. 그 지역 특산물에 따라 덧붙이는 종류가 약간씩 다르기도 하다.

그때 나는 사과향의 달달한 부당을 먹으면서도 우리네 순대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먹는 것도 비슷하다는 점과 지역적 환경에 따라 요리법의 차이를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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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곁들인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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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푸


또한 내가 포-토-푸 요리를 알게 된 계기 역시 <로제 마르탱 뒤 가르(Roger Martin du Gard)>의 대하소설 <티보가의 사람들(Les Thibault)>을 읽으면서였고, 그 동기를 제공한 곳이 바로 이날, 이 떼흐트르였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프랑소와께서는 친히 세실의 숙모님을 우리에게 소개하였고, 우리는 두 분의 안내를 받아 생전 마르탱 뒤 가르가 기거했던 방들과 서재를 탐방했다.

작가가 생전에 글을 썼다는 서재를 천천히 둘러보던 중, 벽 쪽을 향해 배치된 의자와 책상 앞에서 그만 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왜 하필 전방 좋은 창밖을 두고 답답한 벽을 바라보며 놓여있는지 잠시 호기심이 발동했었다.

프랑소와와 세실 숙모님의 설명에 따르면 마르탱 뒤 가르 작가가 글을 쓸 때에는 몰입하기 위하여 벽 쪽을 쳐다보았단다. 창 너머 눈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멋진 공원이 있지만 이렇게 벽을 향해 앉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조차 제거해서 잡념을 떨쳐버리고자 했던 그의 글쓰기에 대한 정열과 집념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문학에 대한 철학과 열정이 젖어있는 곳. 나는 그곳에서 시간을 거슬러올라 글에 열중했던 그의 모습을 잠잠히 상상해 보았다.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다.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마르탱 뒤 가르의 절친이었던 <앙드레 지드>와 <알베르 까뮈>의 흑백사진을 눈에 막 담아 돌아서는데, <티보가의 사람들>이란 커다란 한글체가 내 시선을 잡아 확 끌어당겼다. 나는 느닷없는 곳에서 한글로 된 책을 발견한 나머지 너무 반가워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는데, 세실의 숙모님께서 내게 선뜻 그 한글 번역본 전집을 빌려 주셨다. 그리고 또 다른 한글 번역 단편집 <모뻬루 마을 사람들>을 선물로 주셨다.

집에 돌아와 내가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는 동안에 이 긴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나오는 장면이 주인공 자크와 그의 연인 제니가 춥고 어두운 겨울밤 파리의 어느 식당에서 포-토-푸를 먹던 대목이었다. 내가 그 소설을 읽을 때가 한겨울이라 그랬던지 더욱 그 음식에 대한 인상이 깊고 진하게 와 닿았었다.


포-토-푸는 소고기의 질긴 부위를 야채와 함께 오랜 시간 끓인 음식으로 주로 습한 겨울철에 즐겨 먹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탕처럼 국물 위주로 먹는 게 아니라 고기와 야채를 주로 먹는다고 하는 게 더 옳겠다. 나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한국요리와 비슷한 걸 찾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주저 없이 포-토-푸라고 말하겠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과 푹 고아서 먹는다는 점이 흡사 한국의 곰탕, 도가니탕, 사골탕과 가장 닮았다.


요리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소고기의 육질이 질긴 부분을 큰 덩어리로 토막 내어 살이 풀어지지 않도록 실을 칭칭 감아서 양파와 마늘, 통후추, 월계수 잎, 뻬실(persil, 파슬리), 떵(thym, 백리향) 종류의 허브를 함께 넣어 재료가 푹 잠길 정도 물을 붓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처음 센 불에서 한번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여 고기가 연해질 때까지 두 시간가량 더 끓인다. 고기가 삶기면 불순물을 걷어내고 양파, 나베, 대파, 감자, 당근, 샐러리 등을 큼직하게 또는 통째로 넣고 야채가 흠신 익을 때까지 다시 센 불에서 약한 불로 삼, 사십 분간 더 끓인다. 고기와 야채가 잘 익으면 국물이 자작하게 졸아든 포-토-푸가 완성된다.

우선 부드럽게 연해진 고기와 야채 건더기를 접시에 담아 노란 서양 겨자에 찍어서 먹는다. 그리고 남은 국물은 빵을 적셔 먹거나 수프로 베르미셀(vermicelles, 가느다란 서양 국수의 일종)을 넣고 또다시 끓여서 먹기도 하는 일종의 서민적 요리다.


오늘날에는 파리의 식당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리가 되었지만, 이 소설이 쓰일 당시는 물론, 80년대까지만 해도 파리 레스토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메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프랑스 가정에서는 겨울철 자주 만들어 먹는 전통요리다.

나 역시도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던 그 계절부터는 겨울철마다 포-포-푸를 즐겨 먹는다. 무엇보다 요리법이 간단하다.

포-토-푸는 풍부한 야채를 포함하여 소화가 원활하고 단백질, 비타민 섭취와 더불어 춥고 습한 겨울철에 뜨뜻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 식사는 말할 것도 없으며 한 번에 양껏 끓이면 많은 수의 가족끼리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남은 국물까지 버리지 않고 해결하는 경제적이면서 겨울철 좋은 보양식이라 금상첨화다.

프랑스 요리의 대부분은 퓨(four, 오븐) 안에서 익히는데 반해, 포-토-푸는 명칭이 뜻한 바 그대로 불 위에서 익힌다. 따라서 전기나 가스불 위에서 끓이기 때문에 오븐이 없던 지난날 서민의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기나 가스불이 귀하던 옛날에는 집집마다 부엌 쉬미네(cheminée, 벽난로)의 장작불 위에 걸려있는 냄비에서 포-토-푸가 보글보글 끓어서 넘치던 모습이 비일비재한 겨울철 부엌 풍경이었단다.


이처럼 소설은 지식과 도량을 넓히게도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낯선 문화를 만나게도, 새로운 삶으로 안내하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특히 나에게서 소설은 다른 세상을 손쉽게 맛보며 자신의 새로운 문화로 만들어 가질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

떼아트르를 방문한 즐거운 추억과 더불어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는 동안 포-토-푸를 눈으로 음미하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소설가를 통해서 프랑스 전통음식은 물론이고, 문화를 이해하고 더 친밀하게 다가가는 좋은 기회를 마련했으며, 내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든 계기가 되었다.

오늘의 메뉴 검정 부당에 이어서 다음에는 걸쭉한 포-토-푸를 끓여 보아야겠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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