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떠나는 여행

집안에서 떠나는 추억여행

by 다나 김선자



저녁 6시부터는 통행금지다. 아니래도 파리 근교 주택가의 밤은 고요한데, 요즘 들어서는 흡사 마법에 걸린 숲 속 같다. 집집의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마저 없었다면 가히 숨 쉬기조차 곤란 스레 을씨년스러웠을 것이다. 한국 군부 정치 시절의 통행금지를 연상케도 한다.

이런 적막한 상황이 여러 날 이어지고, 밤낮으로 사람과의 거리두기가 여러 달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들의 생활 리듬까지 바꾸어 놓았다. 나 역시 파리 시내 나간 지가 몇 달은 되었고, 전시회는 물론 미술관, 공연장을 못 간지도 벌써 일 년이 되었다.

작년 한 해는 코로나 19 때문만이 아니라 집 공사로 인하여 삶을 잃은 듯 잊어버린 시간 속에서 살았었다. 새해 들어 비로소 망가진 테이프를 감듯이 그 시간들을 천천히 되돌리며 그동안에 깨어진 공간의 조각들을 조금씩 찾아서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 파편처럼 흩어진 삶을 되찾아 붙이기도, 지나간 흔적들을 말끔히 지우거나 선명하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닦아서 칠하기도, 겹겹이 쌓인 먼지는 털어내고 박박 문질러 추한 때를 벗겨 윤기를 내어 준다. 비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쓸데없이 껴안은 것들을 미련 없이 과감하게 내친다. 삶이란 그런 것, 허잡스러운 생각들은 걷어내고 아름다운 시간을 낚아서 세월로 엮는다. 이렇게 우리는 빙빙 집안에서 과거의 시간, 추억 여행을 즐기는 중이다.


남편은 옛날 카세트 하나하나를 다시 돌려서 듣고 있다. 다락에서 잠자던 턴테이블도 꺼내서 먼지를 털어낸다. 오래되어 휘어진 핀을 바로 세우고 삭아버린 벨트와 고무판을 교체한다. 그렇게 쓰러져가던 생명을 되살려 놓았더니 과거가 그에게 달려와 묻는다 나를 기억하느냐고, 그가 내게 와서 묻는다 지금도 나를 좋아하느냐고. 솔직히 나는 그를 잘 모른다. 하지만 한 시절 내 갈망이었고 그리움이었기에 이미 알던 것보다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오래전부터 내 책장 중앙에 꽂힌 바이닐(LP)을 보고 언제쯤 저 레코드판을 들을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로 바라만 보았다. 귀찮고 용잡해 할 걸 뻔히 알면서도 오로지 그 먼 지난날 대학시절, 학교 앞 봄비 다방에서 들었던 그때의 낭만만을 생각했다.

팝송이 뭔지도 모르고 그 노랫말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마치 환상의 섬처럼 멀고도 가깝게 느껴졌던 사각 투명 공간, 그 안에서 디스크자키(DJ)가 틀어놓은 환각제 같던 노래들이다. 그것들은 레코드판 숲 속에서 돌아가던 텐테이블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 리듬이 좋아 그 속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내 젊음의 고독을 달래주던 그때의 감미로운 분위기가 좋아서 그 순간만큼은 한 끼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무작정 그곳에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좋았다. 비록 배가 고플지라도 분위기와 공상에 젖어서 삼킬 수 있는 음악과 친구들이 있으므로 굶주린 삶은 아니었다. 그것은 청춘의 열망을 실은 희망이고 낭만이었다. 그때 거기서 돌고 돌던 턴테이블이 내게는 하나의 꿈이 되었다. 인생의 크나큰 한 부분을 차지했었다.

왜 그토록 자유와 이상만을 쫒으며 나태한 삶을 살아야 했을까?라고 되묻는다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직도 그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후회 따윈 아니다. 가책도 아니다. 그 게으른 젊음의 낭만이 지금의 내 기질을 만들었고, 현재의 내가 존재할 뿐이다.

그 시절 그렇게 갖고 싶어 갈망하던 턴테이블, 그 이후로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것.

그런데 남편이 젊었을 적에 듣다가 밀쳐놓은 턴테이블이 다락 깊숙한 먼지 밑에서 곤히 잠잔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깨울 용기는 없었다. 어쩜 이십 때처럼 절실함도 간절함도 덜 했을뿐더러 그동안 대체할 편리한 다른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이가 들면 귀찮은 것도 많아진다. 번거로운 게 싫다. 그래서 감히 힘든 수고를 감행하는 모험 역시 절제한다. 그랬었는데 집 공사 덕분에 드디어 나온 것이다.

소리가 난다. 리듬이 흐른다. 다시 돌아온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그렇게 우리는 쾌쾌 묵은 듯한 물건들을 올려놓고, 가닥가닥 새로운 삶의 박자를 맞추어 본다.

이처럼 느릿느릿 과거를 여행하던 즈음에 우리가 다시 찾은 시간, 그것은 인도 전통 음악의 대가 키쇼리 아몬카르(Kishori Amonkar, 1932-2017)의 목소리다.


지난날, 나는 남편을 따라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러 파리의 떼아트르 들 라 빌(Théâtre de la ville, 공연장 이름) 공연장 한가운데 앉았었다. 고고한 기품의 가느다란 자태에서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정교하면서도 강렬한 예술혼을 담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에는 유수한 세월 동안 잘 가꾸어져 발성된 애연한 음색과 아름다운 선율, 거침없이 흘러나온 내면의 힘이 있었다. 구슬프게 긴 여운이 남는 멜랑꼴리 한 리듬의 북인도 음악이었다. 그녀의 음악은 또한 나에게 인도 영화감독의 사티야지트 레이(Satyajit Ray 1921-1992)의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나를 눈물 젖게 했던 그 영화 <아푸> 3부작이다.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가슴속을 파고드는 애절한 소리, 울림, 여음... 음악이 흐른다.


지금 내 남편은 그녀의 목소리를 쫒아서 추억 속 인도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그 옛날 처음으로 그가 도착한 인도에서 느꼈던 그때의 인상과 분위기를 내게 들려준다. 집안에서의 추억 여행. 나도 덩달아 그 여정에 끼어들었다.


1989년 여름의 어느 날 밤, 그는 인도 마드하스(Madras, 지금의 첸나이 Chennai) 공항에 내려서 기차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역 플랫폼을 빠져나와 그가 바라본 도시는 현대 문명으로부터 비껴 나 있었다. 잔잔한 어둠에 쌓여 나지막이 펼쳐진 모습은 묘연했지만 신비롭고 아름다웠단다.

가로등도 없이 어슴프레 드러난 형체의 거리에서 꼽추 등에 난쟁이 운전사가 몰던 릭샤를 타고 사방이 온통 깜깜한 낯선 거리를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유일하게 길을 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만귀잠잠한 주변을 오직 그 빛만이 이 도시를, 이 세상의 길을 알고 있다는 듯이. 어둠 속을 내달리는 가운데 건물 쪽에서 드문드문 새어 나와 흐릿하게 일렁이던 전등불, 그로 인해 릭샤에 지붕을 씌운 휘장이 그의 눈앞에서 휘청거리며 어른거리던 모습. 이것이 그에게 깊이 새겨진 인도의 첫인상이란다.


그리고 몇 년을 걸쳐 인도를 찾아갔지만 근래 들어서는 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과거의 아름다운 인상이 깨어질 두려움은 더 크단다. 인도 또한 빠른 현대화 물결의 흐름을 막지는 못할 테니까.


우리는 내년 이맘때, 남인도 음악 축제를 보러 가자고 들뜬 마음으로 벌써부터 열심히 계획을 세운다. 몇 년 전부터 이미 구상했던 생각이었으나 아직 이루지 못했다. 내년, 설마 그때까지도 바이러스가 우리의 발목을 잡아 두지야 않겠지 하는 다소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느새 다 감겨버린 테이프를 재생한다. 또다시 인도의 전통음악을 들으면서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은 추억을 떠올리며 앞날을 기약한다. 순전히 현재를 잘 버티기 위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흥미롭고 생기 차다. 누구나 그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면, 현재의 삶도 여요하지 않을까? 풍요로운 삶의 줄기는 추억의 여운이니까. 그것은 미래의 즐거운 삶을 희망할 수 있는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끈끈히 효연 하게 이어주는 결국은 현재를 더 견고히 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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