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나와서

친구 M과 R와 함께 걸었다

by 다나 김선자


미술관을 나와 우리는 다 같이 총총이 걸었다. 부유층 동네다운 정취가 곳곳에 묻어나는 거리에서 어느 상포에 진열된 부엌 조리대나 욕조마저도 디자인 잡지 속에서나 봄 직한, 내 일반적 상식으로는 불편해서 사용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저 큰 물건을 오직 장식용으로 집안에 들어놓지도 않을 테고, 그럼에도 누군가 찾는 이가 있다는 점이 놀랍고, 분명 실용보다 시각적 외면치레 취향의 사치스러운 제품들임에는 틀림없다.

여러 상점의 전면 진열장 강압 유리창들이 노란 조끼 부수기 시위대에 잔인하게 금이 났다. 주로 호화스러운 가게를 겨냥하여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의 불만으로 나타난 그들의 뿔난 행위였다.

이 길에는 아직 퇴근 전인지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환하게 불 밝힌 사무실들로 낮보다 더 생기가 넘쳐나고, M 말에 따르면 보험회사들이 많다고 한다.

M이 들려주는 이 가게 저 상점들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우리들의 수다가 길어졌는지 어느새 어둠이 찾아와 낮동안 부풀었던 도심의 쓰고 모난 긴박한 것들을 까맣게 지워버리고 오로지 환희에 찬 온화하고 화려한 불빛들로 아름다운 동화 속 나라에서 반짝인다.

M은 그야말로 재미거리로 잡지에서나 읽을듯한 사소한 정보에 밝아서 다양한 그녀의 관심거리만큼이나 입찬말에 들어가는 양념도 달콤하니 걷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M과 R은 부부이며, 그들에게는 흔들흔들 걷는 걸음이 꼭 닮아버린, 맑고 깊은 총명한 눈을 가져 그 뚫어져라 주의 깊게 바라보는 눈길은 물 부리처럼 사람 마음을 쏙 빨아들이는, 프랑스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그의 아파트에 여자 친구의 짐이 하나 둘 늘어난다고, 인터넷 조리법을 신봉해 요리하는 무녀독남 아들이 있고, 그들의 이름 끝 글자에 el, elle로 끝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유대인이다.

또한 내 남편 A가 그들의 결혼식 증인이었고, R와 A는 고등학교 동창생 소싯적 친구다.

M의 키는 족히 나보다 두 뼘은 크고, R 역시 A에 비하여 한 뼘은 위로 솟아있다 보니, 우리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서 공동으로 집을 빌릴 경우에 그들은 늘 큰 침대를 차지하고, 도로상에서 확 트인 전망을 좋아했던 나는 언제나 자동차 앞좌석에서 밀려나야 하는 불평등에 내 소원함이 천장까지 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예사롭지 않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우리는 남남 여여 앞뒤로 짝을 지어 촉촉이 말라가는 인도 위에서 빠른 걸음으로 흘러간다. 내 짧은 발걸음이 그들의 큰 걸음을 따라 부지런히 그러나 굴렁쇠처럼 가볍고도 활기차다.


앞선 두 남성이 몰라르(Mollard)라는 카페 브라세리 겸 레스토랑 앞에 섰다. 어느덧 생-라쟈르(Saint-Lazare) 역 가까이 왔나 보다. 몰라르 카페 앞에는 A가 좋아하는 생굴을 비롯한 신선한 해물들이 이 찬 겨울날 젖은 몸으로 얼음 위에 속절없이 누워있다. 생굴이 유명한 레스토랑이란다. 우리는 의견 일치로 목을 축이자고 몰라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용한 가운데 깔끔하게 펭귄 옷을 입은 가르숑(garçon)*이 친절하게 맞이한다.

* 카페나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남성을 일컫는 말.

몰라르는 150년의 역사 깊은 카페다. 내부 장식은 19세기 특유의 아르누보식에 모자이크와 돋을새김 조각이 잘 어울려져 그야말로 풍요로운 화려함과 운치 있게 낭만을 풍기는, 오늘날 점점 사라져 가는 파리의 서정이 담뿍한 전형적인 카페다. 나를 제외한 일행은 이 카페에서의 정겨웠던 분위기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며 옛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세가 파리에서 3위 안에 들어간다는 최상위급 학생들로, M과 R의 아들 S가 졸업한, 꽁독세 고등학교(Lycée Condorcet)가 있다.

오래전 작고한, 철학가 쟝 보프레(Jean Beaufret)는 이 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그랑제꼴 준비반 학생들의 철학을 가르쳤었다.

1972년 A와 R가 대학 시절, 그들은 쟝 보프레의 철학 강의를 듣기 위해 이 학교에 들렸다가 그의 강의가 끝난 뒤 뒤풀이를 위하여 모두가 이 카페로 우르르 몰려오면서 A는 비로소 몰라르에 처음 발을 딛게 되었다고 한다.


철학가 쟝 보프레(Jean Beaufret)는 독일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적 동지로써, 그가 하이데거 철학을 최초로 프랑스에 전파시킨 인물이다.

그와 하이데거는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서로의 돈독한 우정과 많은 철학적 사유와 사상을 논하였으며, 강의나 세미나를 주최해 그 시대의 문학 예술인들과의 교류를 가지기도 했다.

쟝 보프레 <마로니에 아래서의 회담, L'entretien sous le marronnier> 글에는, 파리 20구 그의 아파트 테라스로 우거진 마로니에 아래서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René Char)와 하이데거가 만나 함께 식사하면서 대담을 가졌던 이야기를 적기도 했다.

철학과 학생이었던 A 역시, 그 당시에는 노년으로 접어들어 프랑스 방문이 뜸해진 하이데거를 만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는 없었지만, 쟝 보프레씨 아파트에서 두세 번 식사를 가졌었고, A 철학과 석사 논문 작성 계획서를 짜는데 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쟝 보프레는 A와 R의 철학 스승인 철학가 B와, 현 프랑스에서 하이데거 철학의 일인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F의 스승이기도 하다. 따라서 A와 R를 포함한 그들 모두는 하이데게리안(하이데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르와르산(Loire) 쇼무르 적포도주 3잔에 따끈한 쵸코렛 한잔을 주문했다. 역시 고급 브라세리답게 그 맛도 훌륭하다. 붉고 낭랑한 것이 입안에서 뱅그르르 잘 숙성된 포도주와 쵸콜라 쇼(Chocolat chaud:쵸코렛에 따뜻한 우유를 넣은 거)에 곁들어 나오는 샹띠이 크림(crème chantilly)도 지나치게 달지 않은 것이 신선하여 가볍고 그 부드러움이 가히 일품이다.

이렇게 크지 않는 비용으로 최고조 좋은 기분을 누릴 수 있다면, 어찌 마다 하겠는가?

사실인즉 그 맛도 있지만, 훌륭한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의 정신적 충만함과 가벼운 걸음으로 친구들과의 우정에 느슨해진 긴장도 톡톡히 한몫하여, 풍취와 추억을 회상케 하는 멋진 분위기가 있어 금상첨화를 얻었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A는 이 맛 좋은 포도주에 감탄과 칭찬을 거듭 아끼지 않는다.

그러자 R은 말한다. "A는 고급스러운 걸 좋아해"

내가 되받아 답한다. "고급스러운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는 세련되고 엘레강스(élégance)한 걸 좋아하거든"

"음, 맞아 그거야 네 말이 옳아" R 다시 말한다.


빈 테이블 위로 빳빳하게 부서질 듯 다림질 잘 된, 새하얀 두꺼운 면 천에 중앙에는 몰라드 머리글자가 흰색 자수로 품위 있게 새겨진 식탁보들이 우아하게 깔린다. 그 티끌 없는 식탁보가 생략된 카페 영업은 끝나고 레스토랑으로 바뀌는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아름다웠던 A와 R의 추억도, 그 속에서 묻혀가는 내 낭만과 서정에 포근함도 잘 접어서, 다음번 점심식사를 하러 와야겠다며 남은 아쉬움을 가르숑과 한바탕 농담 속에 던지고서 주섬주섬 외투를 챙겨 일어선다.

오늘 저녁식사는 지난번에 봐 두었던 한국식당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예전에는 담배연기만큼이나 자욱했던 파리 정서를 담은, 거리 어디에서든 흔하게, 누구나 쉽게 찾아가는 서민적 정취가 깃든 브라세리였지만, 오늘날 카페들은 거의 현대화로 탈바꿈되어 그나마 남아있는 프랑스 전통이 깃든 브라세리는 이처럼 고급화되어 예약 식사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 되었다.

카페를 나오자, 나는 갑자기 시장기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한국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 좌석의 절반이 찬 S식당은 활기찬 분위기로 우리를 뜨겁게 맞이한다. 세 사람은 돌솥 비빔밥을 시키고 나는 내 일행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러나 심하게 맵지 않게 육개장을 시켰다.

A가 막걸리 한 병을 추가로 시키자, 주인장은 가던 걸음을 멈추어 크지 않는 눈과 입을 멍멍하게 벌린 채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아니면 손님이 잘못 선택했나 의아스럽게 어줍은 태도로 되묻는다. "막걸리? 막걸리 잘 아세요?"

"예, 알아요" A의 단호한 말투에, 포도주 맥주 사키도 아닌 막걸리라는 뜻밖의 주문에 주인장의 표정은 새삼스레 가까운 친지라도 만난 듯 반가움과 친근함으로 바뀐다. 이 주인장은 일찍이 동행인 내가 한국 여성임을 알려 차렸어야 함에도, 그의 눈치가 개코같아 어느 나라 사람인지 통 모르는 기색이다. 아니면 그에게 내 존재가 안중에 없었는지?

M은 긴 손가락을 비틀어대며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젓가락을 놓치지 않았고, R은 여러 가지 반찬을 맛보는 흥 바람에 포크가 사방으로 춤추며, 젓가락 문화에서 태어나 자란 나보다도 고차원적 젓가락질하는 A 음식 맛이 나쁘지 않다고 연신 흡족해하는 모습, 내가 주문한 육개장은 고사리가 들어가야 제맛인데, 그 좋아하는 고사리 없이 썰렁하고 밋밋한 건더기와 겨우 건져 올리는 고기지만, 어떻게 끓었는지 맛만큼은 진득하니 얼큰한 파리식 육개장이다.

그럼에도 춤은 내가 췄는지 뻘뻘 아주 오래간만에 땀 흘리며 음식을 먹었다. 우리는 반찬 종기들까지 말끔히 비우고 산뜻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오는데, 다음에 점심 식사하러 또 오자고 A가 한마디 던진다.

사실 A와 나는 아침은 왕의 식단, 점심에 평민, 저녁에는 거지 식사라는 건강식단을 실천하는 중이라 식당에서 제 값을 하려면 흔히들 편하게 즐기는 저녁보다 점심식사가 우리 구미에도 잘 맞는다.


어둠 속을 휘저어며 파리 8구 거리를 힘차게 누빈다. 나는 여기가 어디쯤 인지도 모르고 낯섦에 흥미진진 무작정 따라 걷었지만, A와 R은 47여 년 전으로 회귀한 듯, 그동안 흐른 세월로 보아 깜깜하게 잊어버렸음 직도 하건만 서로가 가진 추억담을 모두 끄집어내려는지 기억 짜 맞추기에 한창이다.

"아, 이 건물은 아직 그대로네"

"여기 있던 대형서점이 사라지고 건너편에 작은 서점이 다시 생겼구나"

"여기 카페 아직 있네, 그때 우리 자주 갔었잖아, 참 수수했는데, 지금은 그때의 모습이 아니구나, 변했군"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 저기잖아"

......

그사이 철학자 F 집 근처에 다다라서 때마침 Fe 근황도 주고받으며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해서 발길을 옮겼다.

드디어 생-라자르 역에 닿았다.

"또 보자"라고 서로 볼인사를 나누는데, 두 볼이 맞닿는 곳에서 생기발랄 감촉이 느껴진다. 두 사람은 이어지는 걸음으로, 우리는 기차를 타러 오늘의 여정 끝에서, 내 활성화된 위장도 '꾸르륵' 가벼운 낱소리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가뿐가뿐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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